수학·컴퓨터

컴퓨터는 진짜 무작위 수를 만들 수 있는가

정해진 규칙대로만 움직이는 기계가 예측할 수 없는 수를 내놓는다는 것은 모순처럼 들린다. 게임과 암호를 떠받치는 난수가 실제로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살펴본다.

편집부 · 2026년 10월 9일 · 읽는 데 4분

회로 기판 위를 굴러가는 주사위들
회로 기판 위를 굴러가는 주사위들

컴퓨터가 흔히 쓰는 난수는 대부분 진짜 무작위가 아니다. 정해진 계산 규칙에서 나오는 유사 난수다. 시작값만 알면 다음에 나올 수를 모두 똑같이 다시 만들어 낼 수 있다. 진짜 무작위에 가까운 수가 필요하면 컴퓨터는 전기 잡음이나 사용자의 미세한 동작 같은 물리적인 우연을 끌어와 섞는다. 게임의 아이템 뽑기와 인터넷 암호의 열쇠가 서로 다른 종류의 난수를 쓰는 이유다.

규칙대로 움직이는 기계가 어떻게 무작위를 흉내 내나

컴퓨터는 같은 입력을 주면 언제나 같은 결과를 낸다. 그래서 진짜로 예측할 수 없는 수를 스스로 만들어 내지는 못한다. 대신 겉보기에 무작위처럼 보이는 수열을 만드는 계산 규칙을 쓴다. 시작값 하나를 넣으면 복잡한 계산을 거쳐 다음 수가 나오고, 그 수를 다시 넣어 그다음 수를 만든다. 이렇게 나온 수열은 고르게 퍼져 있고 뚜렷한 패턴이 보이지 않아 통계적으로는 무작위와 구별하기 어렵다.

이 시작값을 씨앗, 곧 시드라고 부른다. 같은 시드에서는 언제나 똑같은 수열이 나온다. 이것은 약점이면서 장점이다. 과학 시뮬레이션에서 같은 시드를 쓰면 실험을 정확히 되풀이할 수 있다. 게임 개발자는 같은 시드로 같은 지도를 다시 만들어 낼 수 있다. 시드를 시계의 현재 시각처럼 매번 달라지는 값으로 정하면 실행할 때마다 다른 수열을 얻는다.

숫자가 끝없이 이어지는 화면 앞의 컴퓨터 키보드

유사 난수로 충분하지 않은 때는 언제인가

게임이나 시뮬레이션에는 유사 난수로 충분하다. 문제는 누군가 다음 수를 알아내면 이득을 보는 상황이다. 암호의 열쇠를 만들 때 유사 난수의 시드나 계산 규칙이 노출되면, 공격자가 같은 열쇠를 다시 만들어 낼 수 있다. 실제로 난수를 만드는 방식의 허점 때문에 암호가 뚫린 사례들이 보고되어 왔다.

종류 만드는 방법 다시 만들 수 있나 쓰이는 곳
유사 난수 시드와 계산 규칙 시드를 알면 가능 게임, 시뮬레이션
암호용 유사 난수 예측이 매우 어렵게 설계된 규칙 사실상 불가능하게 설계 암호 열쇠, 보안 토큰
물리 난수 전기 잡음, 방사성 붕괴 같은 자연 현상 불가능 시드 공급, 복권 추첨

그래서 보안에 쓰이는 난수는 두 가지를 함께 쓴다. 예측하기 어렵게 설계된 계산 규칙에, 물리적인 우연에서 얻은 시드를 넣는 것이다. 운영체제는 키보드를 누르는 간격, 마우스의 미세한 움직임, 하드웨어의 전기적 잡음 같은 값을 계속 모아 섞어 두었다가 시드로 쓴다.

물리적인 우연은 어디서 얻나

자연에는 원리적으로 예측할 수 없는 현상들이 있다. 전자 회로의 열잡음, 방사성 원자가 언제 붕괴할지, 빛 입자가 반투명한 거울을 통과할지 반사될지 같은 양자적인 사건이 그 예다. 일부 컴퓨터 칩에는 이런 현상을 이용해 난수를 만드는 회로가 들어 있다.

독특한 방법도 있다. 한 인터넷 보안 회사는 사무실 벽에 용암 램프 수십 개를 세워 두고, 끊임없이 모양이 변하는 램프를 카메라로 찍어 그 영상을 난수의 재료로 쓴다. 램프 속 덩어리의 움직임은 너무 복잡해서 예측할 수 없다. 장난스러워 보이지만 원리는 진지하다.

벽면에 나란히 놓인 여러 색의 용암 램프

무작위인지 어떻게 확인하나

어떤 수열이 무작위인지는 하나의 시험으로 증명할 수 없다. 대신 여러 통계 검사를 통과하는지 본다. 각 숫자가 고르게 나오는지, 같은 숫자가 연속으로 나오는 길이가 자연스러운지, 앞의 수와 뒤의 수 사이에 관계가 없는지 등을 확인한다. 검사를 많이 통과할수록 무작위에 가깝다고 보지만, 통과했다는 사실이 진짜 무작위라는 보증은 아니다.

남은 질문

'진짜 무작위'가 무엇인지는 수학과 철학에서도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겉보기에 무작위인 현상도 충분한 정보가 있으면 예측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양자 세계처럼 원리적으로 예측할 수 없는 것인지에 따라 무작위의 뜻이 달라진다. 실용적으로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으면 충분하다'는 기준이 쓰이지만, 계산 능력이 커질수록 그 기준도 계속 높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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