꺾기 전에는 형광을 띠지 않다가 몇 번 꺾어주면 화려한 색의 형광을 내는 야광 팔찌를 써본 적이 있으신가요? 사실 정확히 말하면 이 팔찌는 야광 팔찌가 아니라 ‘형광’ 팔찌입니다. 흔히 스스로 빛을 내면 형광, 빛을 받았다가 어두워졌을 때 빛을 내는 것을 야광이라고 부르는데, 야광 팔찌가 어떤 상황에서 빛을 내는지 생각해보면 이 이름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야광을 적용한 생활 속 가장 많이 쓰이는 물건인 야광 스티커를 떠올려봅시다. 밝을 때는 특별한 색을 띠지 않다가 어두워지면 은은한 빛을 내어 색을 드러냅니다. 반면 야광 팔찌는 어두운 곳이라고 해서 빛을 내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자극(꺾어주는 동작) 때문에 빛이 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꺾어준 이후에는 밝은 곳에서도 특유의 색을 나타냅니다. 야광의 특징을 가지는 것이 아닌데 ‘야광’이라는 이름을 가지는 이 팔찌처럼, 많은 사람은 형광과 야광을 자주 혼동합니다. 이번 기사에서는 분광학적 접근을 통해 형광과 야광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보려고 합니다.
단일항, 삼중항 상태
형광과 야광에 대해 본격적으로 알아보기 전, 이후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내용인 단일항(singlet), 삼중항(triplet) 상태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두 전자로 이루어진 계의 전체 스핀 각운동량은 다음과 같이 계산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S_z는 전체 스핀 각운동량의 z축 성분이고, s_z(1), s_z(2)는 각 전자의 개별적 스핀 각운동량의 z축 성분입니다. s_z(1), s_z(2)는 +-1/2의 값을 가집니다.
먼저 단일항 상태는 에너지 준위에 따라 오비탈에 전자를 배치했을 때 홀전자가 하나도 없는 경우입니다. 두 전자로 이루어진 계에서 생각하면 홀전자가 없기에 두 전자의 스핀이 반대가 되고 다음 식에 따라 전체 스핀 각운동량도 0이 되게 됩니다.

이들이 S=1을 가진 삼중항 상태의 세 성분입니다. 삼중항 상태는 2개의 홀전자가 존재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훈트의 규칙에 따르면 한 오비탈 내의 두 전자는 서로 다른 스핀 양자수를 가져야 하지만 삼중항 상태를 다루는 상황은 들뜬 상태이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가능합니다.
단일항, 삼중항 사이에 홀전자가 1개인 이중항 상태도 존재하지만, 이 기사에서는 딱히 중요하지 않은 내용이므로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증가하는 에너지 순서로 번호가 매겨진 단일항 상태를 S₀, S₁, S₂……, 삼중항 상태를 T₁, T₂, T₃…….로 표현하도록 하겠습니다.

형광 vs 야광, 그리고 인광
우리가 흔히 야광이라고 말하는 현상은 인광의 한 종류입니다. 야광은 밝을 때 빛을 받았다가 어두워지면 그 빛을 다시 내는 현상인데, 인광은 그보다 좀 더 넓은 범위로, 빛을 받았다가 바로 방출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 시간이 지난 후에 그 빛을 내는 현상입니다. 정확한 설명을 위해 야광 대신 인광에 대해 설명할 것인데, 인광과 같은 원리로 야광이 일어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형광과 인광 모두 빛을 흡수했다가 다시 방출하면서 생기는 현상인데, 가장 일반적으로 알 수 있는 차이는 방출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 차이입니다. 아래 영상을 보면 차이를 알 수 있는데, 형광은 빛을 비출 때만 나타나는 반면 인광은 빛을 비추고 얼마 있어야 나타나기 시작하고 빛이 더 이상 오지 않아도 일정 시간 동안 색을 나타냅니다.
형광과 인광의 차이를 실제로 보여주는 영상
형광과 인광을 구분하는 기준은 흡수, 방출될 때의 전자의 스핀입니다. 같은 스핀을 가진 상태들 사이의 전이에 의한 방출은 형광이라고 부르고, 서로 다른 스핀을 가진 상태들 사이의 전이에 의한 방출은 인광이라고 부릅니다. 앞서 살펴봤던 단일항, 삼중항 상태를 통해 나타내면 다음과 같습니다.
형광:


인광:

위 식에서 ν가 방출하는 빛의 진동수가 됩니다. 이렇게만 설명하면 잘 와 닿지 않을 것 같아 이해를 돕기 위해 아래 그림을 보며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림을 보면 세 개의 큰 곡선이 보일 텐데 가장 아래 제일 큰 곡선이 바닥 상태를 나타내는 곡선이고, 위의 두 곡선은 왼쪽이 단일항 상태, 오른쪽이 삼중항 상태를 나타내는 곡선입니다. 처음에 흡광(absorbance)가 일어나면 전자가 들뜬 상태로 전이하게 됩니다. 이 때 어떤 과정을 거쳐 빛이 방출되느냐에 따라 형광과 인광의 차이가 생깁니다.
먼저 형광(fluorescence)은 진동 이완(vibrational relaxtion) 과정을 통해 에너지가 낮아진 후 다시 바닥 상태로 전이하면서 방출됩니다. 여기에서 진동 이완 과정은 빛이 방출되지 않는 비복사성 전이로 들뜬 진동 준위가 용매 분자와의 충돌을 통해 에너지를 열로 방출하여 낮은 진동 준위들 사이의 열적 평형 분포로 돌아가게 되는 과정을 말합니다.
인광(phosphorescence)는 다른 스핀 상태 사이의 전이를 일으키는 비복사성 과정인 계간 교차(intersystem crossing)을 통해 단일항 상태에서 삼중항 상태로 전이하고, 그 다음 다시 바닥 상태로 전이하면서 방출됩니다.
형광과 인광에 대해 여러 그림을 통해 설명해주는 영상
인광이 발생하는 과정에서의 전이가 양자역학적으로 가능하긴 하지만 동역학적으로 불리하기 때문에 느려지게 되고, 앞에서 이야기했던 시간 차이가 생기게 됩니다. 형광보다 느리긴 하지만 인광을 나타내는 대부분의 물질은 아직 빠른 시간 내에 빛을 방출하고, 보통 밀리초 정도 빛을 유지하게 됩니다. 그러나 일부 물질은 삼중항 상태의 수명이 길어 전자가 다시 바닥 상태로 전이하는데 시간이 더 걸리게 되고, 몇 시간 이상의 수명을 가지기 때문에 우리가 흔히 아는 야광 스티커 등에 사용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번 기사에서는 자주 쓰이는 말이지만 헷갈리기 쉬운 형광과 야광에 대해 분광학적 관점에서 살펴봤습니다. 형광과 야광, 넓은 범위에서의 인광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형광등, 형광펜, 야광 스티커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습니다. 형광, 또는 야광이라는 단어를 붙이기 전에 조금 더 생각해본다면 ‘야광 팔찌’처럼 헷갈리는 이름을 가지는 경우가 줄어들 것입니다.
<참고자료>
[1] 위키피디아 - fluorescence
https://en.wikipedia.org/wiki/Fluorescence
[2] 위키피디아 – phosphorescence
https://en.wikipedia.org/wiki/Phosphorescence
[3] 위키피디아 – singlet
https://en.wikipedia.org/wiki/Singlet_state
[4] 옥스토비 일반화학 20단원
<이미지>
[1] https://en.wikipedia.org/wiki/Singlet_state
[2]https://en.wikipedia.org/wiki/Phosphorescence#/media/File:Electronic_Processes_Involving_Light.png
<동영상>
[1] https://www.youtube.com/watch?v=FaX9b1XmLQo
[2] https://www.youtube.com/watch?v=CcN8NnGGPhs

Chemistry 학생기자 최우정
2019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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