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위치를 주문할 때 오이를 빼 달라고 하거나 짜장면을 먹을 때 오이를 빼고 먹는 등 주변을 둘러보면 오이를 못 먹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단순히 취향의 문제라기엔 잠깐 고명으로 올렸다 뺀 경우에도 민감하게 반응하여 먹지 않을 정도로 오이를 혐오하는 사람도 종종 있다. 오이 뿐만 아니라 고수 역시 호불호가 크게 갈린다. 어떤 사람들은 이를 두고 편식하지 말라고 지적하기도 하는데 과연 정말 단순히 기호도의 문제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 유타대학교 유전 과학 센터의 연구를 비롯하여 여러 연구를 통해 오이나 고수 등을 싫어하는 것에는 유전학적인 이유가 있다고 밝혀졌다. 우리는 지금부터 유전자와 음식에 대한 선호도 간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자세하게 알아보고자 한다.
‘맛’이란 무엇일까
세상에는 수많은 음식들이 있고 각각 다른 맛이 난다. 그러나 미각세포에서 감지하는 맛의 종류는 불과 5개뿐이다. 단맛, 신맛, 쓴맛, 짠맛, 감칠맛 이게 전부이다. 사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맛은 대부분 향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과일은 대부분 단맛과 신맛이 맛 성분의 전부이고, 나머지 사과 맛, 포도 맛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실제로는 사과 향, 포도 향인 것이다. 이처럼 음식을 먹을 때 느끼는 수많은 ‘맛’은 입 뒤로 코와 연결된 작은 통로를 통해 냄새 물질이 휘발해 느껴지는 ‘향’이다. 그래서 코를 막으면 맛이 희미해지고 잘 느껴지지 않는다.
오이를 싫어하는 이유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오이를 먹지 않는 이유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먼저, 가장 유력하다고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유는 쓴맛 수용체 민감도의 차이이다. 미국 유타대학교의 유전 과학 센터에 따르면 ‘TAS2R38’ 유전자가 입맛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한다. 인간의 7번 염색체에 존재하는 ‘TAS2R38’ 유전자의 차이에 따라 쓴맛에 민감한 PAV 타입과 둔감한 AVI 타입으로 나눌 수 있는데, PAV 타입인 사람은 AVI 타입인 사람보다 쓴맛을 100~1000배 더 민감하게 느낀다. 오이를 포함한 참외, 수박, 멜론, 호박 등 박과 식물은 벌레나 초식동물들에게 먹히지 않도록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큐커바이타신(cucurbitacin)이라는 스테로이드의 일종을 갖고 있는데, 이 독성 물질은 강한 쓴맛이 난다. 오이가 설익었을 때는 쓴맛이 강하게 나지만, 익을수록 쓴맛을 내는 성분이 줄어들기 때문에 쓴맛에 민감하지 않은 AVI 타입의 사람이라면 큰 문제 없이 오이를 섭취할 수 있지만, 쓴맛에 민감한 PAV 타입의 사람이라면 이 물질의 강한 쓴맛 때문에 오이를 싫어하게 될 수 있다. 때문에 오이 혐오자들은 PAV 타입의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이런 쓴맛의 민감도를 조사할 때 보통 PTC라는 물질을 사용하는데, 쓴맛을 강하게 느끼면 오이를 싫어할 가능성이 크다. ‘TAS2R38’ 유전자가 강하게 발달된 사람이라면 오이 뿐만 아니라 참외, 수박, 멜론에서도 참기 힘든 쓴맛을 느낀다고 한다. 또, 이 유전자가 활성화된 사람은 술(알코올)의 쓴맛을 강하게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크게 쓴맛을 느끼지 않더라도 향 때문에 오이를 극도로 싫어하는 경우도 많다. 오이 특유의 향이 싫다는 것인데, 그 향은 ‘오이 알코올’이라고 불리는 화학 물질이다. 주 성분은 노다니에놀, 노다니에날이고, 냄새 수용체가 400개 이상인 만큼 이 향을 처리하는 유전자나 뇌의 경로로 개인차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직 두 성분에 결합하는 냄새 수용체의 유전자 정보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 가설도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비슷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냄새 수용체 OR7D4는 수퇘지의 페로몬인 안드로스테논을 감지하는데, 수용체 단백질의 88번째 아미노산이 아르기닌(R)인지, 트립토판(W)인지에 따라 느끼는 향이 달라진다고 한다. RR형은 수퇘지 고기를 역겹다고 느끼지만 WW형은 냄새를 느끼지 못하거나 향기롭다고 느낀다. 이 문제는 대부분의 수퇘지를 거세해 사육하여 크게 나타나지는 않지만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의 경우도 유전자의 영향으로 특정 향을 민감하게 느끼는 것일 수 있다.
물론 이 두 가설이 완벽하게 들어맞다고 할 수는 없다. 개인의 입맛은 유전자, 살아온 환경, 문화, 심리적 요인 등 여러 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의 입맛에 유전자가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고수를 싫어하는 이유

고수 역시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음식 중 하나이다. 미국 화학협회에 따르면 인구의 무려 4~14%가 고수 맛이 비누 맛 같다며 싫어한다고 한다. 흥미롭게도 고수를 싫어하는 데 유전적 요인이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고수에는 알데하이드 성분이 포함되어 있는데 후각 수용체인 OR6A2가 변형된 사람들은 이 성분의 냄새를 다른 사람들보다 더 강하게 감지한다고 한다. 알데하이드는 비누, 로션, 벌레에서도 발견되는 성분이라 고수에서 비누의 쓴맛을 느끼는 것이다. 전체 인구의 약 10%가 이러한 유전적 특징을 갖고 있고, 고수를 많이 섭취하는 중동 지역에서는 그 비율이 적다고 알려져 있다.
미각과 후각의 민감도
미각과 후각의 예민함은 사람마다 다르고 이에 따라 같은 음식을 먹어도 사람마다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사실 미각과 후각은 신생아가 가장 예민하다. 신생아는 입안 전체에 맛봉오리가 있고, 입천장, 목구멍, 혀의 옆면에도 미각 수용체가 있다. 이렇게 지나치게 많은 맛봉오리는 10세 무렵 사라지기 시작하는데, 사람마다 미각의 민감도가 다르게 나타난다. 1제곱센티미터당 미뢰의 수는 보통 사람은 200개에서 민감한 사람은 400개까지 나타나기도 한다. 후각 역시 마찬가지로 민감도가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어떤 냄새를 맡기 위해서는 우리 몸 안에서 인식해 줄 수용체가 필요한데, 수용체의 개수와 종류가 굉장히 많기 때문에 사람마다 어떤 수용체가 발달해 있는지에 따라 특정 향에 민감한 사람도, 둔감한 사람도 생기는 것이다.
쓴맛을 싫어하는 이유
이전에 살펴본 오이와 고수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보통의 사람들은 강한 쓴맛을 좋아하지 않는다. 맛에 민감한 아이들의 경우 더 심하다. 아이 대부분은 쓴맛이 나는 야채나 발효식품을 잘 먹지 않는다. 왜 인간은 쓴맛을 거부하는 것일까? 원래 쓴맛은 동물에게 독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기준이었기 때문이다. 동물은 본능적으로 쓴맛이 나면 먹지 않는다. 아이들의 미각에도 이런 독을 피하려는 본능이 있기 때문에 쓴맛이 나는 음식을 잘 먹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어른이 되면서 점점 쓴맛에 둔감해지고 잘 느끼지 못하게 되어 술과 커피 등 쓴 음식도 잘 먹게 된다. 실제로 유전자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다른 영장류에 비해 쓴맛을 느끼는 유전자가 많이 퇴화했다고 한다. 뇌가 발달하면서 미각으로 독을 구분할 필요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유전자와 음식의 선호도
‘맛’은 매우 주관적이고 복잡한 영역이기도 하지만 적은 양의 냄새 물질과 맛 물질의 단순한 조합에 의한 현상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고수나 오이처럼 특정 음식에 대한 선호도 차이가 생기는 이유를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유전적인 이유에서 찾으려는 연구도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물론 유전적 차이만이 이 음식들에 대한 호불호를 나누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진행된 여러 연구들에 따르면 완전히 무관한 것도 아니다. 유전적 특성이 영향을 주어 특정 음식을 싫어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골고루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각자 맛과 향을 감지하는 유전자가 조금씩 달라 선호도도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다양한 유전적 요인에 의해서 음식을 못 먹는 것이라면 강요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김민채 학생기자 | Chemistry & Biology | 지식더하기
참고자료
[1] https://m.science.ytn.co.kr/
[2] https://m.health.chosun.com/
[3] http://realfoods.co.kr/
[4] 최낙언 『맛 이야기: 음식에 숨겨진 맛있는 과학』
첨부 이미지 출처
[1] http://realfoods.co.kr/
[2] https://pngim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