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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부설 한국과학영재학교 온라인 과학매거진 코스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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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폭력성

최종 수정일: 2020년 9월 29일

1978년 한 여성이 네덜란드 동부 네이메헌의 한 대학병원을 찾았습니다. 병원의 한 브루너 박사에게 털어놓은 그 여성의 고민은 자신의 남자 형제들과 아들이 너무 폭력적이라는 것이었죠. 두 명은 방화를, 한 명은 강간을 저질렀습니다. 자신의 여동생을 칼로 위협해 옷을 벗기려고 한 사람도 있었고, 직장 상사를 차로 치여 죽이려고도 했습니다. 그녀가 자체적으로 알아본 바에 따르면 가계의 남성들의 폭력성은 100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었다고 합니다. 한 브루너 박사와 병원은 이 굉장히 특이한 가계를 면밀히 분석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원인은 유전자에 있음을 알아내게 됩니다.


무엇이 폭력을 부르나
세로토닌. 폭력성을 억제한다

물론 폭력성의 발달에는 환경적인 영향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폭력에 노출된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범죄율이 높다는 사실은 이미 많은 연구에서 입증된 사실입니다. 하지만 환경적인 영향과 더불어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유전자입니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유전자는 체내의 호르몬 상태나 호르몬의 효율에 영향을 주고, 이것이 곧 폭력성과 연관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공격성에는 testosterone(테스토스테론), serotonin(세로토닌), cortisol(코티솔) 등의 호르몬이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범죄자를 대상으로 한 많은 연구에서 체내의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을수록 공격적인 성향이 강하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세로토닌의 경우는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이 공격성을 띠는 것을 제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코티솔 또한 스트레스에서 유발되는 공격성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위 가계의 100년에 가까이 이어져 온 폭력성은 어떤 유전자 때문일까요?


싸움꾼 유전자, MAOA gene

MAOA유전자. X염색체 위에 위치해 있다.

의사들이 밝혀낸 폭력성의 원인은 X염색체 위에 있는 MAOA gene이었는데, 폭력성과의 깊은 연관 때문에 싸움꾼 유전자라는 뜻의 warrior gene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위 가문의 유전자를 분석해 본 결과, 가문의 남성 14명 모두가 MAOA유전자에 결함이 있었습니다. MAOA는 monoamine oxidase A의 약자로,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MAOA유전자는 monoamine oxidase A라는 효소를 생산합니다. 이 효소는 체내의 세로토닌과 도파민 등을 분해하는 역할을 하죠. 이 세로토닌을 분해하는 역할이 공격성과 깊은 연관을 가지게 됩니다. 물론 체내에 MAOA유전자를 통해 생산된 MAOA가 적당량 있으면 문제는 없습니다. 그러나 간혹 MAOA유전자가 발현되지 못하거나 극히 미미하게 발현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경우, 체내의 MAOA가 부족해지게 되고, 이는 세로토닌의 과다한 축적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세로토닌을 분해할 MAOA가 없으니 당연한 결과겠지요.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아마 여러분들은 이렇게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세로토닌은 분명 전전두엽이 공격성을 띠는 것을 제어한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세로토닌이 축적되는 것이 오히려 공격성을 억제하는 결과를 불러오지 않을까? MAOA가 적을수록 오히려 좋은 것이 아닐까?’라고 말이죠. 하지만 세로토닌의 과다한 축적은 180도 다른 결과를 불러옵니다. 세로토닌의 존재를 인식하고 세로토닌의 효과를 유도하는 receptor가 과도한 양의 세로토닌에 의해 무뎌지게 되는 것이지요. 학문적으로는 민감도(sensitivity)가 줄어든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정상적인 사람의 경우는 세로토닌이 필요할 때만 생성되기 때문에 세로토닌 receptor가 항상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MAOA유전자에 문제가 있는 사람의 경우는 어릴 때부터 세로토닌이 과도하게 쌓이게 되고, 이는 세로토닌 receptor의 민감도를 떨어뜨려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정리해보자면 MAOA유전자의 발현도가 낮은 사람들은 체내에, 특히 뇌 내에 세로토닌이 비정상적으로 축적되게 되고, 이는 원래라면 세로토닌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할 세로토닌 receptor를 무뎌지게 만듭니다. 결국 공격성을 막기 위해 분비되는 세로토닌은 receptor가 반응을 하지 않기에 무용지물이 되고, 이는 주체할 수 없는 과도한 폭력성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MAOA유전자와 공격성의 결정적인 연결고리

이렇게 MAOA유전자에 대한 모든 작용 기작과 원리를 세세하게 밝혀냈음에도 불구하고, 과학자들은 또 다른 문제에 부딪히게 됩니다. 이론적으로는 MAOA유전자의 활성도가 낮으면 폭력적이어야 하는데, MAOA유전자 활성도가 낮은 사람들 중에 과도한 폭력성을 가지지 않은 사람도 많았기 때문이죠. 반대로 MAOA유전자의 활성도가 정상적이어도 과도한 폭력성을 가진 사람들 또한 있었습니다. 이 문제는 오랜 연구 끝에 A. Caspi 박사의 연구팀이 2002년 규명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박사의 연구 논문은 사이언스지에 실렸죠. 그 논문을 잠시 보도록 하겠습니다.

논문의 핵심이 되는 위 표는 MAOA유전자의 발현도가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을 비교해 놓은 것입니다. 빨간색 선이 MAOA유전자 발현도가 낮은 사람, 초록색 선이 MAOA유전자 발현도가 높은 사람입니다. x축은 어릴 적에 얼마나 폭력에 노출되었는지를 나타내는 것이고, y축은 과도한 공격성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의 비율을 나타낸 것입니다. 어릴 적에 폭력에 노출되지 않았던 집단의 경우는 10% 미만의 낮은 범죄율을 보였습니다. 오히려 MAOA유전자의 활성도가 낮은 사람들의 범죄율이 더 낮게 나타났죠. 하지만 어린 시절에 폭력에 노출된 아이들일수록, 폭력의 강도가 높아질수록 MAOA활성도가 낮은 그룹에서의 범죄율이 MAOA활성도가 높은 그룹에 비해 눈에 띄게 증가했습니다. 이 연구를 통해 폭력성은 유전자뿐만 아니라 환경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증명하게 되었습니다.


모태 범죄자?

지금까지 MAOA유전자와 환경, 그리고 폭력성의 관계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그런데 MAOA유전자와 같이 유전자와 범죄를 연관 짓는 것은 범죄학자들 사이에서 금기시되어 왔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유전자 정보를 이유로 인권 침해 등 각종 문제가 일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죠. 새로운 인간 차별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폭력성의 발달에는 유전자뿐만 아니라 환경 또한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연구 결과가 여럿 나타나면서 단순히 유전자만으로 잠재적 범죄자를 판별하는 경향은 많이 줄었습니다. 당장 위의 연구 결과만 보더라도 어릴 적에 폭력에 노출되지 않은 집단의 경우는 오히려 MAOA유전자의 발현도가 낮은 그룹의 범죄율이 더 낮음을 확인할 수 있죠.

또한 캐나다 맥길 대학교의 마이클 미니 교수는 환경과 유전자 중 어느 것이 우위에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쥐를 이용한 실험을 진행하였습니다. 불안증세가 심한 새끼는 느긋하고 양육에 정성을 다하는 어미에게, 온순한 새끼는 불안하고 양육에 무관심한 어미에게 입양시킨 후 경과를 지켜보았습니다. 실험 결과, 불안증세가 심했던 새끼 쥐는 온순해졌고, 온순했던 새끼 쥐는 예민해졌습니다. 양육이 천성을 이긴 것이고, 이는 결국 환경이 유전자를 이겼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단순히 MAOA유전자에 문제가 있다고 모태 범죄자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유전적인 문제는 환경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모태 범죄자는 없습니다.



 

<참고자료>

[1] Bob Garrett, Gerald Hough - Brain & Behavior_ An Introduction to Behavioral Neuroscience

[2] A. Caspi, "Role of Genotype in the Cycle of Violence in Maltreated Children", Science, 297, 851~854 (2002)

[3] 위키피디아 - 세로토닌

https://en.wikipedia.org/wiki/Serotonin

[4] 위키피디아 - MAOA

https://en.wikipedia.org/wiki/Monoamine_oxidase_A


<이미지>

[1] https://en.wikipedia.org/wiki/Serotonin

[2] http://teygen564s14.weebly.com/gene.html

[3] Bob Garrett, Gerald Hough - Brain & Behavior_ An Introduction to Behavioral Neuroscience



Bio 학생기자 서명진

2019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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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 유전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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