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생명

치매에 걸리는 사람은 따로 있다

뇌 속에 쌓이는 찌꺼기 단백질 '아밀로이드 베타'와 이를 제때 치우지 못하게 막는 저주의 유전자 'APOE4'가 빚어내는 알츠하이머 치매의 서늘한 생물학적 원인을 분석한다.

편집부 · 2022년 9월 7일 · 읽는 데 4분

알츠하이머병, 빛나는 인간의 뇌가 끈적끈적한 노란색 플라크(아밀로이드 베타)의 고약한 그물에 질식하여 빛나는 건강한 파란색 뉴런을 서서히 옥죄는 모습을 보여주는 시각적으로 매력적인 신경 의학 그림
알츠하이머병, 빛나는 인간의 뇌가 끈적끈적한 노란색 플라크(아밀로이드 베타)의 고약한 그물에 질식하여 빛나는 건강한 파란색 뉴런을 서서히 옥죄는 모습을 보여주는 시각적으로 매력적인 신경 의학 그림

인간이 늙어가며 가장 두려워하는 질병은 암도, 심장병도 아닌 '치매(Alzheimer's Disease)'다. 내 평생의 기억과 정체성이 서서히 녹아내리며 가장 사랑하는 가족의 얼굴조차 잊어버리는 이 잔혹한 뇌의 지우개는 도대체 왜 찾아오는 걸까? 오랫동안 의사들은 치매가 단순히 뇌세포가 늙어 죽는 노화 현상인 줄 알았다. 하지만 부검을 통해 치매 환자의 뇌를 열어본 과학자들은 경악했다. 환자의 뇌세포 사이사이에 끈적끈적하고 노란 껌 같은 '독성 찌꺼기'가 흉측하게 엉겨 붙어 뇌를 꽉 조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치매는 자연스러운 늙음이 아니라, 뇌 속에 쌓인 단백질 쓰레기가 폭주하여 신경망을 처참하게 파괴하는 생화학적 연쇄 살인 사건이다. 내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조용한 치매의 뇌과학을 들여다보자.

끈적한 쓰레기의 습격, 아밀로이드 베타

우리가 밥을 먹고 생각을 하며 뇌를 쌩쌩 돌리면, 뇌세포는 에너지를 태운 뒤 '아밀로이드 베타(Amyloid Beta)'라는 단백질 찌꺼기를 배설물처럼 뿜어낸다. 젊고 건강할 때는 뇌의 청소부 세포(미세아교세포)들이 우리가 잠을 자는 동안 이 찌꺼기들을 싹싹 쓸어 담아 뇌 밖으로 배출해 버린다(뇌의 하수도 림프관 시스템). 그런데 나이가 들거나 염증이 생기면 이 청소부들이 파업을 선언한다. 치워지지 않은 아밀로이드 베타는 서로 끈적하게 들러붙어 거대한 덩어리(플라크)를 형성하고, 뇌세포 주변에 덕지덕지 달라붙어 영양분 공급을 틀어막아 버린다.

철로가 붕괴한다, 타우(Tau) 단백질의 엉킴

아밀로이드 베타가 세포 밖에서 뇌를 조여온다면, 진짜 치명타는 세포 안에서 터진다. 뇌세포(뉴런) 안에는 영양분을 실어 나르는 기다란 철길(미세소관)이 있고, 이 철길을 고정하는 핀셋이 '타우(Tau)' 단백질이다. 그런데 세포 밖의 쓰레기(아밀로이드)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뇌세포는 타우 단백질이 미쳐 날뛰며 철길에서 떨어져 나와 자기들끼리 흉측하게 엉켜버린다(신경섬유 엉킴). 철길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니 뇌세포는 더 이상 신호를 주고받지 못하고 영양실조에 걸려 시커멓게 괴사해 버린다(기억 상실의 시작). 왼쪽에는 잠을 자는 동안 정크를 적극적으로 청소하는 빛나는 미세 아교 세포가 있는 건강한 뇌를, 오른쪽에는 'APOE4' 유전자가 청소부를 게으르게 만들어 끈적끈적한 플라크가 쌓이게 하는 질병에 걸린 뇌를 보여주는 분할 화면

치매를 부르는 저주의 유전자, APOE4

담배를 펑펑 피워도 폐암에 안 걸리는 사람이 있듯, 치매도 억울하게 유전자의 영향을 미치도록 크게 받는다. 뇌의 찌꺼기를 치우는 청소 트럭 역할을 하는 'APOE'라는 유전자가 있다. 이 유전자 중 'APOE4'라는 끔찍한 돌연변이 버전을 물려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쓰레기(아밀로이드 베타)를 청소하는 능력이 최악으로 떨어진다. 부모님 양쪽에서 APOE4 유전자를 2개 다 물려받은 사람은 남들보다 알츠하이머 치매에 걸릴 확률이 무려 15배나 폭증하는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셈이다.

수면 부족이 뇌를 썩게 만든다

뇌가 쓰레기를 청소하는 시간은 우리가 '깊은 잠(서파 수면)'에 빠졌을 때뿐이다. 잠을 잘 때 뇌세포들은 크기를 60%나 쪼그라뜨려 하수구 공간을 넓히고 뇌척수액을 쏴아아 흘려보내 아밀로이드 쓰레기를 미친 듯이 씻어낸다. 만약 코골이가 심하거나 만성 불면증으로 잠을 못 자면, 뇌는 청소할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고 쓰레기가 고스란히 쌓여 치매의 방아쇠를 당기게 된다. 뉴런의 기억 고속도로(타우 단백질)가 무너지고 엉킨 매듭으로 붕괴되어 뇌세포 사이의 빛나는 연결 고리를 끊고 기억을 희미하게 만드는 미세한 다이어그램

남은 과제

최근 뇌 속의 아밀로이드 찌꺼기를 녹여버리는 기적의 치매 신약(레카네맙, 도나네맙)이 등장하여 FDA 승인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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