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전도체와 BCS 이론
전기 저항이 0이 되는 초전도 현상의 비밀을 양자역학적으로 풀어낸 궁극의 열쇠, 전자들이 커플(쿠퍼 쌍)을 맺어 장애물을 통과하는 'BCS 이론'을 해부한다.
편집부 · 2025년 5월 9일 · 읽는 데 4분
1911년, 액체 헬륨으로 온도를 영하 269도까지 얼려버렸을 때 금속의 전기 저항이 기적처럼 '완벽한 0(Zero)'이 되어버리는 초전도 현상이 처음 발견되었다. 천재 물리학자들은 환호했지만, 기쁨도 잠시 끔찍한 절망에 빠졌다. "도대체 왜 저항이 0이 되는 거지?" 아인슈타인부터 파인만까지 당대의 모든 천재가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덤벼들었지만 장장 46년 동안 아무도 그 원리를 증명하지 못했다. 상식적으로 전자는 서로 밀어내기 때문에 금속 안에서 쾅쾅 부딪히며 저항을 만들어야 정상이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1957년, 바딘, 쿠퍼, 슈리퍼 세 명의 과학자가 전자들이 커플(짝)을 맺어 유령처럼 금속을 통과한다는 소름 돋는 양자역학적 해석(BCS 이론)을 발표하며 46년의 미스터리를 끝장냈다. 저항 제로의 마법을 푼 'BCS 이론'의 커플 댄스를 감상해 보자.
저항의 원인, 핀볼 게임
평소에 구리선에 전기를 흘려보내면, 전자(-)들은 금속 원자(+)들이 빽빽하게 박혀있는 숲을 뚫고 억지로 달려가야 한다. 전자가 달리다가 튀어나온 금속 원자들과 꽝꽝 부딪히면 속도가 줄어들고, 깎여 나간 에너지가 '열(뜨거움)'로 방출된다. 이것이 우리가 아는 전기 '저항'이다. 전자는 혼자서는 절대 이 핀볼 게임 같은 장애물을 부딪히지 않고 무사히 통과할 수 없다.
서로 밀어내는 전자가 커플을 맺다 (쿠퍼 쌍)
온도가 미치도록 차가워지면(영하 269도) 금속 원자들의 떨림이 멈추고 꽁꽁 얼어붙는다. 이때 첫 번째 전자(-)가 쓩 하고 지나가면, 멈춰있던 주변의 금속 원자(+)들이 전자의 마이너스에 끌려 미세하게 오므라들며(격자 변형) 뒤쪽에 '플러스 웅덩이'를 만든다. 첫 번째 전자가 지나간 직후, 뒤따라오던 두 번째 전자(-)가 이 플러스 웅덩이의 강력한 인력에 훅 빨려 들어가며 마치 고무줄로 묶인 것처럼 첫 번째 전자의 꽁무니를 바짝 따라가게 된다! 원래 전자(-)끼리는 서로 튕겨내야 정상인데, 금속 원자가 만든 웅덩이(포논) 덕분에 두 전자가 완벽한 짝꿍(쿠퍼 쌍, Cooper Pair)이 되어버린 것이다.
유령처럼 금속을 관통하는 스케이트 댄스
이렇게 커플(쿠퍼 쌍)이 된 전자들은 더 이상 낱개의 불완전한 입자(페르미온)가 아니라, 수만 쌍이 한 몸처럼 똑같이 움직이는 끈적한 유령 덩어리(보손 상태)로 각성하게 된다. 한 전자가 장애물(금속 원자)에 부딪힐 위기에 처하면, 뒤에서 묶여있던 짝꿍 전자가 에너지를 보태주어 부딪히지 않고 부드럽게 미끄러지듯 지나가게 만들어준다. 수억 개의 쿠퍼 쌍 커플들이 금속의 장애물을 피해 군무를 추듯 완벽하게 스케이트를 타고 지나가니, 부딪히는 녀석이 단 하나도 없어서 전기 '저항'이 기적처럼 0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온도가 올라가면 깨지는 유리 구두
이 기막힌 커플(쿠퍼 쌍)을 묶고 있는 힘은 너무나 가냘프다. 온도가 영하 269도에서 조금만 올라가서 금속 원자들이 열받아서 부들부들 떨기 시작하면, 원자들이 만들어주던 플러스 웅덩이가 박살 나버린다. 결국 고무줄이 끊어지며 전자들은 다시 서로 밀어내는 솔로(낱개)로 찢어지게 되고, 사방팔방으로 부딪히며 저항이 폭발해 버린다. 이것이 초전도체가 극저온에서만 작동하는 결정적 이유다.
남은 과제
바딘, 쿠퍼, 슈리퍼는 이 BCS 이론으로 1972년 노벨상을 휩쓸었다(바딘은 무려 노벨 물리학상 2회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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