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생명

질병 정복의 꿈 현실이 될까 파지테라피

항생제가 듣지 않는 끔찍한 슈퍼박테리아를 때려잡기 위해, 세균의 천적인 바이러스(박테리오파지)를 암살자로 투입하는 '파지 테라피(Phage Therapy)'를 조명한다.

편집부 · 2025년 11월 12일 · 읽는 데 4분

미생물학, 거미 다리를 가진 빛나는 외계인 같은 '박테리오파지' 바이러스가 악마 같은 빨간색 슈퍼 버그(박테리아)의 표면에 강하게 착륙하여 파괴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시각적으로 놀라운 미세한 생물학적 일러스트레이션
미생물학, 거미 다리를 가진 빛나는 외계인 같은 '박테리오파지' 바이러스가 악마 같은 빨간색 슈퍼 버그(박테리아)의 표면에 강하게 착륙하여 파괴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시각적으로 놀라운 미세한 생물학적 일러스트레이션

1928년 알렉산더 플레밍이 곰팡이에서 '페니실린(항생제)'을 발견했을 때, 인류는 드디어 세균 감염이라는 질병을 완벽하게 정복했다고 환호했다. 하지만 100년이 채 지나지 않아 인류는 끔찍한 절망에 빠졌다. 항생제를 미친 듯이 남용하자, 세균들이 진화하여 지구상의 어떤 독한 항생제를 때려 부어도 절대 죽지 않는 무적의 몬스터, '슈퍼박테리아(항생제 내성균)'가 탄생해 버린 것이다. 약이 없어서 작은 찰과상 하나로도 패혈증으로 목숨을 잃는 끔찍한 포스트 항생제 시대의 위기. 이때 과학자들이 눈을 돌린 곳은 독약(항생제)이 아니라 자연계에 존재하는 세균의 천적, '박테리오파지'라는 외계인처럼 생긴 바이러스였다. 적의 적은 나의 친구, 세균을 터뜨려 죽이는 암살자 '파지 테라피(Phage Therapy)'의 반격을 들여다보자.

세균을 먹어 치우는 거미, 박테리오파지

하수구나 바닷물 등 세균이 득실거리는 곳에는 '박테리오파지(Bacteriophage)'라는 기괴한 바이러스가 득실거린다. 이 녀석들은 마치 아폴로 달 착륙선이나 다리 6개 달린 로봇 거미처럼 생겼다. 이 로봇 거미들은 인간의 세포는 쳐다보지도 않고 오직 '세균(박테리아)'만 사냥한다. 파지는 세균의 표면에 거미 다리로 착륙한 뒤, 꼬리의 주사 바늘을 세균 껍질에 푹 꽂아 넣고 자신의 유전자(DNA)를 세균의 뱃속으로 쫙 짜 넣는다(감염).

세균의 배를 가르고 태어나는 뱀파이어

세균의 뱃속으로 침투한 파지의 DNA는 세균의 통제권을 완벽하게 빼앗아(해킹) 버린다. 불쌍한 세균은 자신의 살려고 에너지를 쓰는 대신, 뱃속에서 파지의 새끼들을 미친 듯이 조립해 내는 좀비 공장으로 전락해 버린다. 수십 분 만에 세균의 뱃속에 수백 마리의 파지 새끼들이 꽉 들어차면, 세균은 견디지 못하고 배가 터져버리며(용균 현상) 처참하게 죽게 된다. 터져 나온 수백 마리의 파지들은 다시 주변의 다른 세균들을 향해 날아가 똑같은 학살을 반복한다. 항생제가 이빨도 안 들어가는 무적의 슈퍼박테리아도 이 기괴한 바이러스의 증식 공격 앞에서는 꼼짝없이 터져 죽을 수밖에 없다. 왼쪽에는 무장한 돌연변이 슈퍼 버그에서 무해하게 튕겨져 나오는 전통적인 빛나는 하얀색 항생제 알약을, 오른쪽에는 정확히 같은 슈퍼 버그를 무자비하게 폭파시키는 매우 정밀하게 표적화된 박테리오파지 떼를 보여주는 분할 화면

완벽한 스나이퍼, 부작용이 없다

항생제는 융단 폭격기와 같다. 약을 먹으면 내 몸에 있는 나쁜 세균뿐만 아니라 유익한 장내 미생물까지 싹 다 몰살시켜 소화 불량과 면역력 저하를 일으킨다. 하지만 파지는 완벽한 '스나이퍼'다. 파지는 열쇠와 자물쇠처럼 특정 종류의 세균 '단 1종'에게만 딱 달라붙어 죽인다. A라는 세균을 죽이는 파지는 B 세균이나 인간의 세포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환자에게 파지 칵테일을 투여하면 유익균은 100% 보존되면서 목표로 한 병원균만 깔끔하게 암살해 버리는 기적의 표적 치료가 가능한 것이다.

자연의 창과 방패, 끝나지 않는 군비 경쟁

물론 세균도 바보가 아니다. 세균은 파지의 공격을 막기 위해 껍질 모양을 바꾸며 방어막을 친다. 하지만 파지 역시 살아있는 생명체(바이러스)이기 때문에 세균의 변이에 맞춰 자신도 돌연변이를 일으키며 뚫고 들어가는 진화의 군비 경쟁을 벌인다. 약국에서 파는 멈춰있는 화학 물질(항생제)과 달리, 파지는 적과 함께 스스로 진화하며 싸워주는 '살아있는 항생제'인 것이다. 바이러스가 박테리아에 DNA를 주입하여 빛나는 폭발로 박테리아가 파열될 때까지 수천 개의 새로운 바이러스를 만드는 공장처럼 행동하게 만드는 파지 테라피의 단계별 다이어그램

남은 과제

파지 테라피는 1920년대 구소련(조지아)에서 이미 활발하게 쓰였으나, 대량 생산이 쉬운 서방의 페니실린(항생제)에 밀려 잊혀졌다.

이어서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