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생명

지식 더하기 영원히 살 수 있는 생물이 있다

늙고 병들면 다시 어린 아기 상태(폴립)로 돌아가 영원한 삶의 루프를 반복하는 불멸의 해파리, '투리토프시스 도르니'의 세포 역분화 마법을 소개한다.

편집부 · 2021년 5월 19일 · 읽는 데 4분

해양 생물학, 시간을 뒤로 거슬러 헤엄치는 빛나고 반투명한 해파리의 초현실적인 시각화, 어른 촉수를 벗어 던지고 바위 위의 작고 빛나는 아기 폴립이 됩니다
해양 생물학, 시간을 뒤로 거슬러 헤엄치는 빛나고 반투명한 해파리의 초현실적인 시각화, 어른 촉수를 벗어 던지고 바위 위의 작고 빛나는 아기 폴립이 됩니다

진시황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불로초는 높은 산꼭대기 영약이 아니라, 어둡고 차가운 바닷속에 떠다니는 새끼손톱만 한 투명한 해파리 속에 숨어 있었다.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태어나서, 늙고, 병들고, 결국 죽음을 맞이하는 되돌릴 수 없는 한 방향의 시곗바늘(엔트로피)을 타고 살아간다. 그런데 1980년대 지중해에서 발견된 '투리토프시스 도르니(Turritopsis dohrnii)'라는 이 기괴한 해파리는 생물학의 가장 절대적인 원칙을 완벽하게 박살 내버렸다. 이 녀석은 늙고 병들면 죽는 대신, 스스로 세포를 분해하고 시간을 거꾸로 돌려 다시 '갓난아기' 상태로 돌아가 버린다. 인간으로 치면 80살 노인이 다시 0살짜리 갓난아기로 변해서 인생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끔찍하고도 완벽한 마법이다. 영원히 죽지 않는 이 불멸의 해파리가 부리는 생물학적 시간 여행의 비밀을 들여다보자.

늙은 성체가 다시 고치(폴립)로 돌아가다

일반적인 해파리는 알에서 태어나 바위에 붙어있는 작은 말미잘 같은 형태(폴립)로 유년기를 보낸다. 이후 폴립에서 우산 모양의 촉수가 돋아나와 우리가 아는 성체 해파리(메두사)가 되어 바다를 헤엄치고, 짝짓기가 끝나면 수명을 다해 죽는다. 그런데 '투리토프시스 도르니'는 완전히 다르다. 이 녀석이 성체가 되어 바다를 헤엄치다가 상처를 입거나 굶주리거나 너무 늙어서 죽음의 위기가 찾아오면, 스스로 촉수를 모두 떼어내고 몸을 둥글게 뭉쳐 세포 덩어리로 만들어버린다. 그리고 바닥으로 가라앉아 바위에 들러붙은 뒤, 갓 태어난 아기 해파리의 모습인 '폴립' 상태로 완벽하게 쪼그라들어 부활한다. 회춘이 아니라 아예 유아기로 리셋(초기화)을 해버리는 것이다.

세포 역분화(Transdifferentiation), 피부가 근육으로 변신하다

이 기적의 핵심은 '세포 역분화(Transdifferentiation)'라는 생물학적 치트키에 있다. 우리 몸의 세포들은 한 번 직업이 정해지면 절대 바꿀 수 없다. 신경 세포는 신경 역할만 하고 피부 세포는 피부 역할만 한다. 그런데 이 불멸의 해파리는 노인이 폴립으로 되돌아갈 때, 근육 세포였던 것을 끈적끈적한 줄기세포 상태로 확 풀어버린 다음, 전혀 엉뚱한 신경 세포나 생식 세포로 직업을 '재설정(재조립)' 해버린다. 다 지어진 집의 벽돌을 허물어 다시 시멘트 반죽으로 만든 뒤, 그 흙으로 새로운 아기집을 뚝딱 지어버리는 극강의 세포 연금술이다. 투리토프시스 도르니의 수명 주기가 죽음을 향한 직선이 아닌 완벽하고 깨지지 않는 무한 루프를 형성하는 것을 보여주는 미세하고 빛나는 타임라인

죽음이라는 개념이 삭제된 생명체

이 과정을 통해 아기(폴립)로 돌아간 해파리는 조건이 좋아지면 다시 어른(메두사)으로 자라나고, 또 늙으면 다시 아기(폴립)로 돌아가는 짓을 영원히 반복한다. 상어나 거북이에게 잡아먹히거나 바닷물이 끓어오르는 사고를 당하지 않는 이상, 녀석들의 몸속 시계에는 '자연사(노화로 인한 죽음)'라는 개념 자체가 아예 삭제되어 있다. 전 세계의 바다를 떠도는 이 녀석들의 유전자를 검사해 보면, 어쩌면 지금 내 눈앞에 있는 5밀리미터짜리 해파리가 수천 년 전 로마 시대부터 리셋을 반복하며 살아온 동일한 개체일지도 모른다는 소름 돋는 계산이 나온다.

인간의 불로장생을 향한 열쇠

현대의 유전학자들과 노화 연구자들은 이 해파리의 유전자 속에 숨겨진 시간 역행의 비밀을 인간에게 적용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만약 투리토프시스가 특정 단백질(야마나카 인자 등)을 이용해 늙은 세포의 DNA 꼬리(텔로미어)를 다시 길게 늘이고 세포의 직업을 초기화하는 스위치를 완벽하게 해독해 낸다면, 인간 역시 늙고 병든 장기(심장, 간)의 세포들을 실험실에서 다시 젊고 싱싱한 줄기세포로 돌려놓아 회춘하는 불로장생의 마법을 훔쳐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왼쪽에는 짧아지는 빛나는 DNA 텔로미어로 속수무책으로 늙어가는 인간을 보여주고, 오른쪽에는 기적처럼 빛나는 DNA를 아기 상태로 초기화하는 불멸의 해파리를 보여주는 분할 화면

남은 과제

안타깝게도 인간의 세포 구조는 해파리보다 수만 배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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