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생명

지식더하기 약물 전달에 이용되는 나노 기술

독한 항암제를 비눗방울 같은 나노 캡슐(리포좀)에 가두어 암세포에게만 정확하게 배달하는 표적 치료의 화학적 운송 기술을 분석한다.

편집부 · 2021년 8월 31일 · 읽는 데 4분

나노 기술, 치명적인 밝은 빨간색 약을 싣고 사악한 녹색 암세포를 향해 혈류를 따라 떠다니는 빛나는 나노 리포솜 거품의 시각적으로 놀라운 의학 일러스트레이션
나노 기술, 치명적인 밝은 빨간색 약을 싣고 사악한 녹색 암세포를 향해 혈류를 따라 떠다니는 빛나는 나노 리포솜 거품의 시각적으로 놀라운 의학 일러스트레이션

감기약을 먹으면 약 기운은 목구멍으로만 가는 것이 아니라 피를 타고 온몸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싹 다 퍼진다. 감기약 정도야 졸음이 오는 부작용으로 끝나지만, 독한 화학 폭탄인 항암제를 혈관에 부어버리면 약이 암세포뿐만 아니라 멀쩡한 위장과 머리카락 세포까지 다 죽여버리는 끔찍한 대학살이 벌어진다(탈모와 구토). 약학자들은 생각했다. "피자 배달부처럼 정확한 주소(암세포)를 찾아가서, 그 집 문 앞에서만 약을 쏟아놓는 마법의 캡슐을 만들 수는 없을까?" 이 미친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낸 것이 바로 머리카락 10만 분의 1 굵기의 분자 운반선, 나노 기술을 이용한 '약물 전달 시스템(DDS)'이다. 암세포의 불량 혈관을 파고드는 기막힌 나노 폭탄의 화학적 속임수를 엿보자.

비눗방울 속에 독약을 가두다, 리포좀(Liposome)

혈관을 돌아다니는 약물을 안전하게 포장하기 위해 과학자들이 찾아낸 완벽한 택배 상자는 '리포좀'이다. 우리 몸의 세포막을 이루는 끈적한 지방(지질) 성분을 물속에서 막 흔들면, 자기들끼리 뭉쳐서 안이 텅 빈 아주 미세한 비눗방울(구형 이중막)을 형성한다. 이 리포좀 비눗방울 안에 독한 항암제를 콸콸 채워 넣고 혈관에 주사하는 것이다. 겉보기에는 우리 몸의 세포막과 완벽하게 똑같이 생겼기 때문에, 백혈구 같은 면역 세포들이 이 택배 상자를 적군으로 오해하지 않고 무사 통과시켜 준다. 피 속에서 독약이 샐 염려가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엉성한 틈새를 파고들어라, EPR 효과

안전하게 포장한 나노 캡슐이 어떻게 암세포만 족집게처럼 찾아가는 걸까? 암세포는 덩치를 키우기 위해 미친 듯이 주변 혈관을 끌어당겨 급하게 새로운 피를 수혈받는다. 급하게 날림 공사로 지은 암세포 주변의 혈관 벽은, 촘촘한 정상 혈관과 달리 벽돌 사이사이가 숭숭 뚫려있는 불량 혈관이다. 혈관을 타고 순찰하던 100나노미터짜리 거대한 리포좀 택배 상자는 촘촘한 정상 세포의 혈관은 통과하지 못하지만, 암세포 주변의 숭숭 뚫린 혈관 구멍으로는 쏙쏙 빠져나가게 된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암세포 주변에만 나노 캡슐들이 잔뜩 쌓이게 되는 물리적 마법(EPR 효과)이 일어난다. 왼쪽에는 원시적인 독성 화학 요법이 건강한 몸 전체를 폭격하는 모습을, 오른쪽에는 종양에 닿을 때만 열리는 스마트 표적 나노 알약을 보여주는 분할 화면

열려라 참깨, 표적 인지 표면(Targeting)

암세포 주변에 택배 상자가 쏟아졌어도 아무 때나 터지면 안 된다. 암세포 겉면에만 유독 많이 돋아나 있는 특정 안테나(수용체 단백질)가 있다. 과학자들은 나노 캡슐 겉면에 이 안테나와 열쇠-자물쇠처럼 완벽하게 들어맞는 화학적 '열쇠(리간드, 항체)'를 덕지덕지 발라놓는다. 캡슐이 떠돌다가 우연히 암세포와 쾅 부딪혀 열쇠가 철컥 맞는 순간, 암세포는 캡슐을 자기 편인 줄 알고 몸속으로 꿀꺽 삼켜버린다. 암세포 안으로 무사히 침투한 캡슐은 산성 환경에서 스르르 녹으며 숨겨둔 맹독성 항암제를 뿜어내어 암세포의 배를 터뜨려 죽여버린다.

빛과 열로 스위치를 켜는 스마트 폭탄

최근에는 캡슐 표면에 금속 나노 입자(금 나노쉘)를 씌워 환자의 몸에 주입하기도 한다. 캡슐이 암 덩어리에 모여있을 때, 몸 밖에서 캡슐을 향해 인체에 무해한 '근적외선 레이저'를 쏘면, 금 입자가 레이저 빛을 쫙 빨아들여 순식간에 40~50도의 뜨거운 열을 뿜어낸다. 이 열기가 캡슐을 녹여 약을 방출함과 동시에, 암세포 자체를 계란 프라이처럼 뜨겁게 익혀 죽이는(광열 치료) 일석이조의 스마트 폭탄이 터지는 것이다. 고농축 의료 화학 물질 풀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보호 지질 층이 외부에 있는 '리포솜'의 미세한 횡단면

남은 과제

나노 입자는 우리 몸의 쓰레기 처리장인 간이나 비장에서 외부 이물질로 인식되어 약이 도착하기도 전에 모조리 청소되어 버리는 경우가 많다. 백혈구의 눈을 완벽하게 피하는 스텔스 코팅막(PEG)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 나노 의학의 가장 큰 장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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