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더하기 슬라임 소리 없이 어린이의 건강을 위협하다
물풀과 붕사(Borax)가 만나 쫀득한 사슬을 형성하는 '액체 괴물(슬라임)'의 가교 결합 원리와, 그 속에 숨겨진 치명적인 화학적 독성을 분석한다.
편집부 · 2022년 2월 1일 · 읽는 데 4분
말캉말캉하게 늘어나고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면 기분 좋은 '바스락' 소리가 나는 장난감. 일명 '액체 괴물'이라 불리는 '슬라임(Slime)'은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최고의 힐링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유튜버들이 거대한 슬라임에 반짝이를 섞으며 주무르는 영상은 수천만 번씩 재생된다. 그런데 이 투명하고 예쁜 젤리 덩어리가 사실은 피부를 뚫고 몸속으로 스며드는 독성 물질의 칵테일이라면 믿겠는가? 뉴스와 소비자원에서는 잊을 만하면 "시판 슬라임에서 유해 물질이 기준치의 수백 배 초과 검출!"이라는 무시무시한 경고를 쏟아낸다. 도대체 문방구에서 파는 물풀에 무슨 짓을 했길래 이토록 쫀득한 젤리가 되며, 그 화학적 끈적임 속에는 어떤 무서운 대가가 숨어있는지 슬라임의 고분자 화학을 낱낱이 해부해 보자.
물풀과 붕사의 끈적한 마법, 가교 결합(Cross-linking)
슬라임을 만드는 레시피는 놀랍도록 단순하다. 투명한 '물풀(PVA, 폴리비닐알코올)'에 '붕사(Borax)'라는 가루를 섞고 저어주면 끝이다. 물풀은 현미경으로 보면 얇고 긴 국수 가닥(고분자 사슬)들이 물속에 풀어져 있는 상태다. 그런데 여기에 '붕사'를 넣으면 마법이 일어난다. 붕사가 물에 녹아 '붕산 이온'이 되는데, 이 녀석이 풀어진 국수 가닥들 사이에 끼어들어가 양쪽 국수를 꽉 움켜쥐는 '찍찍이 끈(가교 결합)' 역할을 해버린다. 물처럼 줄줄 흐르던 국수 가닥들이 붕사라는 접착제에 의해 서로 얼기설기 묶이면서 그물망을 형성하게 되고, 그 틈새에 물을 가둔 채로 쫀득쫀득하게 늘어나는 고무 같은 '슬라임'으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피부를 뚫고 들어가는 독, 붕소(Boron)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이 접착제 역할을 하는 '붕소(Boron)' 화합물이다. 슬라임을 만들려면 붕사가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데, 이 붕사는 원래 바퀴벌레나 개미를 죽이는 살충제나 독한 유리 세정제를 만들 때 쓰는 화학 물질이다. 붕소 성분이 손의 땀이나 침과 섞여 피부를 뚫고 몸속으로 들어가면(경피 흡수), 아이들의 연약한 신경계를 공격하고 구토, 설사, 피부염을 일으킨다. 특히 장기간 붕소에 노출되면 생식 기능(임신 능력)이 치명적으로 망가지고 발달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는 끔찍한 연구 결과 때문에 유럽에서는 붕사를 맹독성 물질로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다.
환경호르몬의 폭탄, 가소제와 방부제
슬라임의 비극은 붕소에서 끝나지 않는다. 젤리를 더 야들야들하고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공장에서는 '프탈레이트' 같은 가소제(플라스틱 유연제)를 엄청나게 쏟아붓는다. 프탈레이트는 우리 몸속에 들어오면 진짜 호르몬인 척 행세하며 내분비계를 완전히 박살 내는 악명 높은 '환경호르몬'이다. 게다가 끈적한 물이 가득한 슬라임은 세균과 곰팡이가 번식하기 딱 좋은 뷔페다. 썩는 것을 막기 위해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됐던 치명적인 독성 방부제(CMIT/MIT)까지 방울방울 섞여 들어간다. 슬라임은 말 그대로 유해 화학물질을 다 섞어 놓은 화학 폐기물 덩어리인 셈이다.
안전한 젤리는 없을까?
최근에는 붕사 대신 베이킹소다나 렌즈 세척액(리뉴)을 쓴다는 '안전한 슬라임' 광고가 넘쳐난다. 하지만 렌즈 세척액의 성분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도 역시 붕산염 성분이 미량 섞여 있어서 결코 100% 안전하다고 할 수 없다. 차라리 감자 전분이나 옥수수 전분에 물을 섞어 우블렉(Oobleck, 비뉴턴 유체)을 만들어 노는 것이 유일하고 완벽하게 안전한 화학적 대체재다. ![가짜 열쇠처럼 작용하여 인간의 호르몬 수용체로 몰래 들어가 자연적인 생물학적 기어를 격렬하게 방해하는 내분비 교란 분자의 클로즈업 다이어그램](https://image.pollin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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