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지구과학

저온에서 찾은 기적의 유체

우주의 한계 온도(절대영도)에 가까워졌을 때 마찰력이 완벽하게 '0'이 되어 스스로 컵 벽을 기어오르는 기괴한 양자 액체, 초유동체(헬륨-4)의 비밀을 다룬다.

편집부 · 2024년 5월 3일 · 읽는 데 4분

양자 물리학, 비커의 유리벽을 따라 위로 기어올라 가장자리로 흘러넘치며 중력을 완전히 거스르는 빛나는 파란색 액체 헬륨의 초현실적인 매크로 샷
양자 물리학, 비커의 유리벽을 따라 위로 기어올라 가장자리로 흘러넘치며 중력을 완전히 거스르는 빛나는 파란색 액체 헬륨의 초현실적인 매크로 샷

물이나 꿀을 컵에 담아 휘저으면, 물과 컵 벽면 사이에 끈적거리는 마찰력(점성)이 생겨서 결국 물살이 서서히 멈추게 된다. 세상의 모든 액체는 끈적이는 점성을 가지고 있고,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는 중력의 지배를 받는다. 그런데 만약 우주에서 가장 차가운 온도인 '절대영도(-273.15℃)'에 가까운 극한의 추위 속으로 들어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 미치도록 차가운 지옥에서는 뉴턴의 물리 법칙이 와장창 깨지고,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진다. 액체가 컵 벽을 타고 스스로 기어올라 밖으로 탈출하고, 한 번 소용돌이를 치기 시작하면 영원히 멈추지 않고 빙글빙글 도는 좀비 같은 기적의 유체가 탄생한다. 끈적거림(점성)이 완벽하게 '0'이 되어버린 양자역학의 마법, '초유동체(Superfluidity)'의 차갑고도 기괴한 세계로 접속해 보자.

얼지 않는 유일한 기체, 헬륨

세상의 모든 기체는 온도를 낮추면 둔해지다가 액체가 되고, 결국엔 꽁꽁 얼어붙어 딱딱한 고체가 된다. 하지만 원소 번호 2번인 '헬륨(Helium-4)'은 우주에서 가장 지독한 예외다. 헬륨 기체를 미친 듯이 차갑게 식히면 영하 269도에서 드디어 투명한 액체(액체 헬륨)로 변한다. 하지만 여기서 온도를 우주의 한계 온도인 절대영도(-273.15도) 바로 앞인 '영하 271도(2.17K)'까지 떨어뜨려도 헬륨은 절대 고체로 얼어붙지 않는다. 원자가 너무 가벼워서 양자역학적인 미세한 떨림(영점 에너지)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절대영도 직전의 온도(람다 포인트)를 돌파하는 순간, 뽀글거리며 끓던 액체 헬륨이 갑자기 쥐죽은 듯이 고요해지며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기괴한 제4의 액체, '초유동체'로 변신한다.

마찰력 제로, 벽을 기어오르는 마법

초유동체가 된 헬륨의 가장 끔찍한 특징은 액체 분자들 사이의 끈적거림(점성)이 완벽하게 '0(Zero)'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만약 이 초유동체를 유리컵에 담아두면, 액체가 스스로 유리컵 안쪽 벽을 타고 슬금슬금 위로 기어 올라가 컵 테두리를 넘어 바닥으로 뚝뚝 떨어져 탈출해 버린다. 마치 액체가 중력을 씹어 먹고 스스로 걸어 다니는 것처럼 보인다. 일반적인 물은 컵 벽과 마찰(표면 장력)을 일으켜 멈추지만, 마찰력이 '0'인 초유동체는 원자 하나 두께의 아주 얇은 막을 형성하며 저항 없이 어디든 뱀처럼 미끄러져 스며들고 기어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얼어붙은 빛나는 원자가 진동을 완전히 멈추고 단일 유체 파동인 보스-아인슈타인 응축물로 병합되는 절대 영도(-273.15C)의 시각적 표현

영원히 멈추지 않는 회전, 양자 소용돌이

점성이 '0'이라는 것은 에너지를 깎아 먹는 브레이크가 없다는 뜻이다. 만약 커피잔에 든 초유동체를 스푼으로 한 번 빙글 휘저은 뒤 스푼을 빼면 어떻게 될까? 커피는 몇 초 뒤에 소용돌이가 멈추지만, 초유동체의 소용돌이는 내일이 되어도, 1년이 지나도, 1억 년이 지나도 절대 멈추지 않고 영원히 빙글빙글 돈다(우주의 수명이 끝날 때까지 회전한다). 브레이크 패드가 없는 자동차가 영원히 굴러가는 것과 같다. 더욱 기괴한 것은 이 소용돌이가 아무렇게나 도는 것이 아니라, 마치 계단처럼 1단, 2단, 3단(양자화)으로 정확히 끊어지는 특정한 속도로만 돈다는 사실이다. 거시 세계에서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양자역학의 유령 현상'이다.

입자들이 하나의 덩어리로 춤추다 (B-E 응축)

왜 이런 미친 현상이 일어날까? 우주가 꽁꽁 얼어붙는 절대영도에 가까워지면, 헬륨 원자들은 각자의 개성(개별적인 움직임)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파동이 합쳐지며 거대한 '하나의 슈퍼 원자(보스-아인슈타인 응축)'처럼 똑같이 행동하게 된다. 군인 수조 명이 서로 부딪치지 않고 완벽하게 똑같은 동작으로 발을 맞춰 걷기 때문에, 서로 끈적하게 달라붙거나 방해하는 마찰력(점성)이 기적처럼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왼쪽에는 마찰로 소용돌이치다 결국 멈추는 일반 물을 보여주고, 오른쪽에는 전혀 속도를 늦추지 않고 끝없이 회전하는 빛나는 초유동 헬륨을 보여주는 분할 화면

남은 과제

초유동체는 단순히 기괴한 마술 쇼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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