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depressive disorders 을 만드는 원인들
마음의 감기가 아니라 명백한 뇌의 화학적 염증이자 신경전달물질의 고장인 우울증의 진짜 생물학적 원인을 파헤친다.
편집부 · 2024년 5월 12일 · 읽는 데 4분
우울증(Depression)에 걸린 사람에게 가장 상처가 되는 말은 "의지가 부족해서 그래, 긍정적으로 좀 생각해 봐"라는 충고다. 우울증은 의지가 나약하거나 마음을 잘못 먹어서 생기는 '성격의 문제'가 결코 아니다. 현대 신경과학과 정신의학이 밝혀낸 우울증의 정체는, 뇌 신경세포들 사이를 오가는 화학 물질이 바닥나고 뇌의 회로 자체가 물리적으로 쪼그라들어 망가져 버린 명백한 '뇌의 질환(Brain Disease)'이다. 췌장이 고장 나서 인슐린이 안 나오는 당뇨병 환자에게 의지로 혈당을 조절하라고 윽박지르는 것이 미친 짓이듯, 뇌의 화학 공장이 멈춰버린 우울증 환자에게 의지력을 운운하는 것은 폭력이다. 단순한 우울감을 넘어 사람의 영혼을 갉아먹는 진짜 질환, 우울증의 생물학적 원인들을 들여다보자.
행복 호르몬의 고갈, 세로토닌의 실종
가장 널리 알려진 우울증의 원인은 '모노아민 가설'이다. 우리 뇌의 신경 세포(뉴런)들은 서로 닿아 있지 않고 미세한 틈(시냅스)을 두고 떨어져 있다. 이 틈새로 '세로토닌(평온함)', '도파민(즐거움)', '노르에피네프린(활력)' 같은 화학 물질을 뿜어내어 감정을 전달한다. 그런데 우울증 환자의 뇌에서는 이 틈새에 뿌려지는 화학 물질의 양이 턱없이 부족하거나, 기껏 분비된 세로토닌을 다음 세포가 흡수하기도 전에 청소기(재흡수 펌프)가 다 빨아들여 버린다. 즉, 뇌에서 '행복과 의욕'을 전달하는 화학적 통신망이 완전히 끊어져 버린 것이다. 정신과에서 처방하는 항우울제(SSRI)는 이 청소기의 전원을 끄고 세로토닌이 틈새에 오랫동안 머물게 만들어서 끊어진 화학 통신망을 강제로 복구해 주는 약이다.
쪼그라드는 해마와 미쳐 날뛰는 편도체
화학 물질만 부족한 것이 아니다. 우울증을 오래 앓으면 뇌의 구조 자체가 물리적으로 찌그러진다. 뇌에서 공포와 분노 같은 나쁜 감정을 느끼는 알람 장치인 '편도체'는 빨갛게 부어올라 미친 듯이 과열(과활성화)된다. 반대로, 감정을 이성적으로 조절하고 기억을 담당하는 뇌의 브레이크인 '해마'와 '전두엽'은 그 크기가 10~20%나 눈에 띄게 쪼그라들어 위축되어 버린다(신경 가소성 붕괴). 즉, 자동차로 치면 가속 페달(슬픔과 공포)은 고장 나서 끝없이 밟혀 있고, 브레이크(이성적 통제)는 닳아서 아예 작동하지 않는 최악의 물리적 고장 상태에 빠지는 것이다.
염증 반응, 뇌에 불이 나다
최근 정신의학계에서 가장 주목하는 우울증의 원인은 '염증(Inflammation)'이다. 우리가 극심하고 지속적인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의 면역 체계가 이를 바이러스의 공격으로 착각하고 피 속에 독한 '염증 물질(사이토카인)'을 미친 듯이 뿜어낸다. 이 독한 염증 물질이 혈관을 타고 뇌로 올라가 뇌세포들을 사정없이 공격하면, 뇌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앞서 말한 세로토닌 생산을 중단해 버리고 뇌의 회로를 닫아버린다. 마치 심한 독감에 걸렸을 때 만사가 귀찮고 방에 틀어박히고 싶은 '병적 행동(Sickness behavior)'이 나타나는 것과 똑같은 기전이다. 우울증은 스트레스라는 보이지 않는 칼에 찔려 뇌가 피를 흘리며 곪아 터지는 만성 염증 상태인 것이다.
유전과 호르몬의 잔인한 룰렛
누구는 엄청난 불행을 겪고도 금방 털고 일어나지만, 누구는 작은 실패에도 깊은 우울증에 빠진다. 이는 태어날 때부터 뇌의 세로토닌 수용체 유전자(5-HTT)가 짧고 예민하게 설계된 유전적 차이 때문이다. 또한, 여성의 경우 임신과 출산, 폐경을 거치며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 같은 호르몬이 롤러코스터처럼 요동칠 때 뇌의 화학적 균형이 박살 나면서 산후 우울증이나 갱년기 우울증이라는 폭탄을 맞게 된다.
남은 과제
아직도 수많은 환자들이 우울증 약이 독하다는 오해 때문에 뇌가 녹아내리는 것을 방치하고 있다. 망가진 신경망(시냅스)에 비료를 뿌려 뇌세포를 다시 자라게(신경 발생) 하는 차세대 항우울제(케타민 등)의 대중화가 현대 의학의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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