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 :세포생물학(cell biology)
생물체의 기본 바탕을 이루는 세포의 구조를 연구하는 생물학의 전문 연구분야입니다. 세포의 관찰과 연구는 분자 생물학적 차원에서 이루어집니다. 세포학은 세포의 구조에서 비롯하여 세포 상호간에 이루어지는 여러 가지 현상을 관찰하고 분석함으로써 생물의 생성과 발전에 보다 상세한 지식을 얻음으로써 생물학 관련 분야, 생화학, 유전학, 진화 생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제공합니다.
우리가 수정란일 때부터 죽기 직전까지 우리 몸에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세포들이 만들어집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생장하기 위해서, 다친 부위를 재생하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소모되는 각 기관의 세포들을 보충하고 기관들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서, 또 인간은 해당되지 않지만 단세포 생물들의 경우에는 자손을 만들기 위해서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은 지속적으로 세포 분열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생물체에서는 세포분열을 통해 새로운 세포들을 만들어가는 동시에 의도적으로 수많은 세포들을 제거합니다. 이러한 현상을 ‘세포 예정사’라고 하며, 세포가 갑작스럽게 피해를 입었을 때 일어나는 세포 괴사와는 다르게 생물체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방향으로 일어난다고 합니다.
세포 예정사란?
세포예정사가 예정되어 있는지의 유무와는 관계없이, 우리 몸을 구성하는 모든 세포들은 발생 초기 단계의 수정란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이러한 세포들간의 관계를 세포계보(cellular pedigree/cell lineage)이라고 합니다. 수정란에서 만들어진 세포들은 분화되고 특정한 역할을 위해 특화되어서 다양한 조직과 기관을 구성하게 되는데, 이때 세포들의 생성만으로는 이러한 과정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일부 정상 세포들이 죽게 됩니다. 세포들은 다 자란 성체에서도 계속해서 새롭게 만들어지는데, 이처럼 세포들이 계속해서 새로 만들어지더라도 각 조직들에서 대략적인 세포 수는 일정하게 유지되기 때문에 foetus와 성체 둘 다에서 세포사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게 됩니다. 이때 이와 같이 목적을 가지고 조절되는 세포사를 세포예정사라고 부릅니다.
세포 예정사에 대한 초기 연구 – 예쁜꼬마선충의 세포예정사
세포예정사의 개념은 발생생물학 분야에서 처음 사용되었으며, 인간의 발생 과정에서 손가락, 발가락 사이의 틈이 생기는 것과 올챙이가 변태 과정을 거쳐 개구리가 되는 현상, 뇌의 발달 과정 초기에 신경세포가 과잉 분포하는 현상 등을 세포예정사를 이용해 설명하였습니다. 초기에 세포 예정사에 대한 이해를 가장 크게 늘린 연구는 2002년에 노벨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Sydney Brenner, Robert Horovitz, John Sulston의 ‘생체기관의 발생과 세포예정사의 유전학적 조절 (Genetic regulation of organ development and programmed cell death)’에 대한 연구입니다. 예쁜꼬마선충 (Caenorhabditis elegans)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사람에게서 일어나는 비슷한 현상까지 확장되어 다양한 질병의 원인을 밝혀내는데에 도움이 되었으며 수정란에서 시작되는 발생 과정에서 다양한 기관의 발달을 조절하는 유전자와 세포예정사에 관여하는 유전자 및 세포예정사를 일으키는 신호 전달 경로를 밝혀내 이후 발생생리학과 세포생물학 분야의 다양한 연구의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세포예정사 연구로 노벨상을 수상한 세 과학자는 각자 조금씩 다른 방향에서 연구에 기여하였습니다. 첫 번째로 Sydney Brenner의 대표적인 업적은 선충류의 일종인 예쁜꼬마선충 (Caenorhabditis elegans)을 세포의 분화와 기관 발달의 연구 모델로 제안한 것이었습니다. 당시의 연구 수준으로는 고등한 생명체에서의 세포 분화와 기관 형성은 인위적으로 조절하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이와 같은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유전적으로 조작이 가능하고 포유류보다 단순한 다세포 생물이 필요했는데, 이때 Brenner이 제시한 것이 바로 예쁜꼬마선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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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꼬마선충이 이 연구에 적합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한 세대가 짧다는 점과 몸체가 투명해서 현미경을 이용해 내부 기관들을 쉽게 관찰할 수 있다는 점, 적은 세포수와 단순한 형태에 비해 다양한 기관들을 가지고 있다는 점, 유전적인 조작이 쉽다는 점이 예쁜꼬마선충이 연구 모델로서 가지는 대표적인 적합성입니다. 또한 1974년에 Brenner는 EMS(ethyl methane sulphonate)라는 화학 물질을 이용하면 예쁜꼬마선충의 특정 유전자에 돌연변이를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이를 이용해 특정 유전자들에 발생한 돌연변이가 기관의 발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발견하였습니다.

두 번째로 John Sulston은 Brenner의 업적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서 예쁜꼬마선충의 수정란에서 성체까지 모든 세포 분열을 관찰할 수 있는 기술을 만들었습니다. 또한 이를 이용하여 1976년에 신경계 발달의 세포계보(cell lineage)를 연구하여 모든 예쁜꼬마선충에서 세포 혈통은 고정되어 있다(invarant)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즉 모든 예쁜꼬마선충들은 정확히 같은 세포 분열과 분화 과정을 거친다는 것입니다.
Sulston의 연구 결과는 세포 혈통에서 특정 세포틀은 항상 세포예정사를 하게 되어 있으며 세포 혈통은 같은 종에서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살아있는 생물을 관찰함으로써 반드시 세포예정사를 거치게 되는 세포들을 알아낼 수 있다는 발견으로 이어졌습니다. Sulston은 세포 예정사의 과정에서 가시적인(관찰할 수 있는)단계들을 알아내었고, 이를 이용하여 nuc-1 유전자 등 세포예정사에 참여하는 유전자들에 최초로 돌연변이를 발생시켜 보였습니다. 또한 Sulston은 nuc-1유전자가 만드는 단백질이 죽은 세포의 DNA를 분해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세 번째 노벨상 수상자인 Robert Horovitz는 Brenner와 Sulsto의 연구를 이어받아서 예쁜꼬마선충에서 세포 예정사가 일어나는 구체적인 매커니즘과 이에 관여하는 유전자 및 단백질에 대해 연구하였습니다. 1970년에 시작된 다양한 실험에서 Horovitz는 예쁜꼬마선충을 이용하여 세포사를 조절하는 유전적인 프로그램이 존재하는지를 관찰하였습니다. 1986년에 출간한 연구결과에서 Horovitz는 최초로 진짜 ‘세포사 유전자’인 ced-3과 ced-4를 발견했습니다. 이 연구에서 Horovitz는 ced-3과 ced-4 유전자의 기능은 세포사가 일어나기 위한 준비 단계를 진행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이후 Horovitz는 ced-3, ced-4와 상호작용하는 ced-9라는 새로운 유전자를 발견하였습다. ced-9의 역할은 세포를 불필요한 세포사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이다. 또한 죽은 세포의 제거를 담당하는 몇 가지 유전자들을 찾아내기도 하였습니다. Horovitz는 인간의 게놈 역시 ced-3과 유사한 세포사 유전자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후 추가적인 연구가 진행되어 현재는 예쁜꼬마선충에서 세포사를 조절하는 대부분의 유전자에 대해서 유사한 유전자가 인간 게놈에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알려져 있습니다.
인간 및 포유류의 세포예정사
Sydney Brenner, H.Robert Horovitz, Jhon E. Sulston의 ‘생체기관의 발생과 세포예정사의 유전학적 조절’에 대한 연구는 세포 혈통의 고정과 이것을 유전자 검사에 응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생리, 의학 분야에서 다양한 분야의 발전에 있어 큰 기여를 하였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이 연구결과는 발생생물학의 발전과 더불어 다세포생물에서의 다양한 신호 전달 경로를 분석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또한 예쁜꼬마선충의 세포예정사 조절 유전자를 바탕으로 인간의 게놈에서 유사한 역할을 하는 유전자들에 대한 발견도 이루어졌으며 실제로 이들 중에는 예쁜꼬마선충의 ced-3, ced-4, ced-9와 유사한 분자들로 구성된 경로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이 연구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신호 전달 경로에 대한 이해는 의학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세포예정사에 관여하는 유전자들이 밝혀지 이후, 세포예정사가 활성화되는 메커니즘에 대한 연구 또한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세포예정사가 일어나는 원인은 크게 세포 내부로부터의 요인과 세포 외부에서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는 각각 내인성 경로(intrinsic pathway)와 외인성 경로(extrinsic pathway)로 이어지게 됩니다. 내인성 경로의 경우 세포가 스트레스를 받았을때 방출되는 세포 내부의 신호와, 미토콘드리아 막간공간으로부터 방출되는 단백질에 의해 활성화 됩니다. 미토콘드리아가 세포에서 매우 중요한 세포 소기관인 만큼 내인성 경로는 미토콘드리아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데, 주로 경로가 활성화됨으로써 미토콘드리아 막의 투과성을 높여 SMAC와 Cytochrome C 등 세포자살성 뮬질을 방출하여 세포가 사멸하게 됩니다. 외인성 경로는 주로 Fas와 TNF 2가지 신호 물질에 의해서 활성화됩니다. 이러한 신호들이 세포에 결합하게 되면 세포 내부에서 카스파제(caspase)들을 활성화시켜 세포 예정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림- Fas 경로(왼쪽), TNF 경로(오른쪽)]


위와 같은 요인들로 세포예정사가 일어나게 되면 세포는 다음 그림과 같은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세포예정사가 결정된 세포들은 쪼그라들면서 작은 vesicle들로 나누어지게 됩니다(blebbing). 동시에 세포 내부의 DNA가 규칙적으로 절단되며, 떨어져 나온 vesicle들을 세포 예정사에 특화된 식세포가 잡아먹으면서 세포가 소멸하게 됩니다. 이러한 소멸 방식의 장점은 세포 괴사와 비교해 보았을 때 세포 안에 남아있는 유해한 물질들이 다른 세포들에 영향을 주지 않고 안전하게 처리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포예정사에 대한 연구 결과를 통해서 우리는 일부 바이러스와 박테리아, 기타 질환들의 작용 메커니즘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HIV 바이러스로 인해 나타나는 에이즈(AIDS)와 신경변성질환, 뇌줄중과 심근경색증은 과도한 세포사를 동반하며, 다양한 자가면역 질환과 암은 세포예정사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아 사라져야 하는 세포들이 살아남았을 때 발생하게 됩니다. 현재는 비정상적인 세포예정사로 인한 질병들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참고 자료 목록
https://www.nobelprize.org/nobel_prizes/medicine/laureates/2002/press.html
http://www.wormbook.org/chapters/www_programcelldeath/programcelldeath.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