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생명

섬유로 화학신호를 전달한다

전기가 아닌 화학 신호를 땀과 체액에서 직접 감지하여 건강 상태를 모니터링하는 차세대 스마트 섬유 기술의 원리를 소개한다.

편집부 · 2023년 4월 29일 · 읽는 데 4분

첨단 의류, 미세한 바이오 센서로 짜여져 사람의 땀에서 화학 신호를 감지하는 빛나는 스마트 패브릭 셔츠
첨단 의류, 미세한 바이오 센서로 짜여져 사람의 땀에서 화학 신호를 감지하는 빛나는 스마트 패브릭 셔츠

스마트워치를 손목에 차면 심장 박동수나 걸음 수를 실시간으로 알려준다. 하지만 심장이 뛰는 횟수 같은 단순한 '물리적' 신호만으로는 내 몸의 진짜 상태를 알 수 없다. 의사들이 진짜로 궁금해하는 것은 혈당이 얼마나 떨어졌는지, 근육에 피로 물질(젖산)이 얼마나 쌓였는지, 스트레스 호르몬(코르티솔)이 얼마나 분비되고 있는지 같은 은밀하고 복잡한 '화학적' 신호들이다. 이를 알기 위해 우리는 지금껏 뾰족한 바늘로 찔러 피를 뽑아내야만 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매일 입고 다니는 평범한 면 티셔츠나 양말이 피를 뽑지 않고도 내 땀방울 속에 녹아있는 이 복잡한 화학 물질들을 실시간으로 읽어내어 스마트폰으로 전송해 준다면 어떨까? 전기를 통하게 하는 은나노 코팅을 넘어, 땀 속의 분자들과 직접 반응하여 생체 신호를 가로채는 궁극의 웨어러블, '화학 감지 스마트 섬유' 기술이 어떻게 의료와 스포츠의 패러다임을 바꿀지 파헤쳐 보자.

땀, 핏방울을 대신할 정보의 바다

피부에서 흐르는 땀은 단순히 체온을 식히기 위한 소금물이 아니다. 땀방울 속에는 핏속에 녹아있는 각종 대사 물질(포도당, 젖산, 칼륨, 나트륨)이 미세하게 섞여서 함께 배출된다. 피를 1방울도 뽑지 않고 몸의 상태를 엿볼 수 있는 완벽하고 안전한 투명 혈액인 셈이다. 스마트 섬유 과학자들은 이 땀에 주목했다. 옷의 실(원사) 표면에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탄소 나노 튜브나 전도성 고분자(PEDOT:PSS)를 코팅하여 옷감 자체를 커다란 전기 회로로 만든다. 그리고 그 섬유 회로 위에 특정한 화학 물질만 찰떡같이 잡아채는 '효소(Enzyme)'를 발라둔다. 예를 들어 포도당(혈당)을 분해하는 산화 효소를 섬유에 코팅해 두면, 땀 속에 섞여 나온 포도당이 옷에 닿는 순간 효소와 반응하며 미세한 '전기(전자)'를 발생시킨다. 옷감이 스스로 땀을 분석해 전기 신호로 번역해 내는 것이다.

머리카락 굵기의 화학 공장

문제는 땀을 감지하는 이 화학 센서를 어떻게 우리가 입는 부드러운 '천'으로 만드느냐에 있다. 실리콘 칩처럼 딱딱하면 옷으로 입을 수가 없고 세탁기에 넣으면 다 망가져 버린다. 연구자들은 솜사탕을 뽑아내는 기계처럼 전기가 통하는 액체 고분자를 강한 전기장으로 쏘아 머리카락보다 100배 얇은 실을 뽑아내는 '전기 방사(Electrospinning)' 기술을 개발했다. 이 미세한 실들을 꼬아서 만든 직물 센서는 늘리거나 구겨도 끊어지지 않으며, 수만 번을 비틀어 짜도 화학적 감지 능력을 잃지 않는다. 최근에는 배터리조차 필요 없이, 땀 속에 있는 젖산 분자를 분해할 때 나오는 전력만으로 스스로 전기를 만들어 블루투스를 켜는(바이오 연료전지) 완전한 독립형 스마트 양말까지 등장했다. 분자 구조 오버레이, 땀방울에 화학적으로 반응하는 빛나는 파란색 합성 섬유의 확대 모습

스포츠에서 질병 예측까지

이 기술이 상용화되면 가장 먼저 스포츠계가 뒤집힌다. 마라톤 선수가 입고 있는 티셔츠가 땀 속의 젖산 농도를 실시간으로 측정해 "현재 근육 피로도가 90%에 달했으니 속도를 줄이세요"라고 경고음을 보낸다. 농구 선수의 양말은 나트륨 배출량을 계산해 "3분 안에 스포츠음료 200ml를 마시지 않으면 근육 경련이 일어납니다"라고 알려준다. 더 나아가 당뇨병 환자는 바늘로 손가락을 찌를 필요 없이 그저 특수 속옷을 입고 생활하기만 하면 옷이 알아서 혈당 수치를 24시간 감시하고 인슐린 패치에 투약 신호를 보낸다. 또한, 신생아나 치매 노인의 기저귀에 이 섬유를 적용하면, 소변 속의 화학 성분을 분석해 요로 감염이나 신장 이상을 초기에 잡아낼 수 있다.

위험을 경고하는 변색 섬유

전기 신호로 바꾸어 스마트폰으로 보내는 방식뿐만 아니라, 화학 물질이 닿으면 옷감 자체의 색깔이 확 변해버리는 카멜레온 섬유도 화학 신호 전달의 훌륭한 예다. 예를 들어 유해가스(암모니아, 일산화탄소)가 유출되는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작업복에 화학 반응 염료를 섞어 실을 짜면, 독성 가스가 옷에 닿는 순간 작업복 전체가 시뻘건 색으로 변하며 대피 경보를 울려준다. 화학 실험실 연구원의 실험복 역시 산성이나 염기성 용액이 튀면 즉각 색이 변하여 화상 위험을 막아준다. 복잡한 전자기기 없이 시각적인 화학 신호만으로 생명을 구하는 완벽한 직관성이다. ![수분과 피로도에 따라 다른 색상으로 빛나는 바이오 트래킹 수트를 입고 트랙을 달리는 미래형 운동선수](https://image.pollin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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