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체 분자 속의 소우주 관찰 cryo em으로 이루다
단백질을 살아있는 상태 그대로 급속 냉동시켜 원자 단위의 해상도로 관찰하는 초저온 전자현미경(Cryo-EM)의 기술적 혁명과 그 파급력을 소개한다.
편집부 · 2023년 8월 24일 · 읽는 데 4분
인류의 과학 문명은 결국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는' 눈의 투쟁이었다. 갈릴레오가 망원경으로 우주의 신비를 풀었듯, 생물학자들은 현미경으로 세포의 비밀을 파헤쳐 왔다. 빛을 이용하는 광학현미경은 바이러스나 단백질 분자처럼 빛의 파장보다 작은 물체를 볼 수 없어 한계에 부딪혔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전자를 쏘아 물체를 보는 강력한 '전자현미경'이 등장했다. 하지만 전자현미경은 끔찍한 치명타를 안고 있었다. 전자가 공기에 부딪히지 않도록 관찰 통로를 완벽한 진공 상태로 만들어야 했고, 표본이 타버리지 않게 금속 코팅을 씌워야 했다. 살아 숨 쉬는 단백질이나 말캉말캉한 생체 세포를 전자현미경 안에 넣으면, 물이 말라비틀어지고 전자에 타버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검은 숯덩어리 찌꺼기만 남았다. 생명의 부속품인 단백질의 진짜 3차원 모양을 생생하게 보고 싶었던 과학자들의 절망을 단숨에 희망으로 바꾼 기적의 기술이 등장했다. 노벨 화학상을 휩쓸며 구조 생물학의 판도를 완전히 뒤집어놓은 '초저온 전자현미경(Cryo-EM)'의 차가운 마법 속으로 들어가 보자.
얼음의 저주를 피하는 기술, 유리화
세포나 단백질은 대부분 물(수분)로 이루어져 있다. 전자현미경의 진공 속에서 단백질이 말라비틀어지는 것을 막으려면 단백질을 꽁꽁 얼린 채로 관찰해야 한다는 아이디어 자체는 일찍부터 있었다. 문제는 물이 어는 방식이었다. 물은 0도 이하로 떨어지면 육각형 모양의 뾰족뾰족한 얼음 결정(Crystal)을 만든다. 단백질을 품고 있는 물방울이 천천히 얼어붙으면, 이 날카로운 얼음 칼날들이 단백질의 연약한 3차원 구조를 무참히 찢어발기고 형태를 완전히 찌그러뜨려 버린다. 1980년대, 자크 뒤보셰(Jacques Dubochet)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가 막힌 기술을 발명했다. 단백질 용액을 영하 196도의 액체 에탄(Ethane) 속에 눈 깜짝할 새(초당 수십만 도의 속도)로 쳐박아 급속 냉동시켜 버린 것이다. 물 분자들이 육각형의 얼음 결정으로 뭉칠 시간적 여유조차 주지 않고, 액체 상태의 무질서한 모습 그대로 순식간에 굳어버렸다. 이른바 '유리화(Vitrification)' 기술이다. 단백질은 찌그러짐 하나 없이, 투명하고 완벽한 유리 감옥 속에 살아 움직이던 순간의 모습 그대로 영원히 정지(박제)되었다.
그림자를 모아 3D로 빚어내다
얼음 속에 얌전히 갇힌 단백질에 전자빔을 쏘면, 단백질을 통과한 전자들이 바닥에 희미한 그림자(2차원 이미지)를 남긴다. 하지만 단백질 분자 수만 개가 각기 다른 각도로 둥둥 떠서 얼어붙어 있기 때문에, 그림자들은 앞모습, 옆모습, 정수리 모습 등 뒤죽박죽으로 섞여 있는 뿌연 노이즈에 불과했다. 요아힘 프랑크(Joachim Frank)는 이 쓸모없어 보이는 수만 장의 희미한 2D 그림자들을 컴퓨터에 집어넣고 수학적 알고리즘으로 분석하는 마술을 부렸다. 인공지능과 수학이 같은 각도로 찍힌 그림자끼리 분류하여 이미지를 또렷하게(평균화) 만들고, 이를 이리저리 끼워 맞춰 완벽하게 입체적인 3D 단백질 모델로 재조립해 낸 것이다. 엑스레이(CT) 촬영을 통해 인체의 입체 구조를 파악하듯, 수만 장의 2D 그림자 조각을 꿰매어 생체 분자의 완벽한 3D 소우주를 창조해 내는 소프트웨어 혁명이었다.
X선 결정학의 몰락과 해상도 혁명
Cryo-EM이 등장하기 전, 단백질 구조를 아는 유일한 방법은 'X선 결정학'이었다. 단백질을 소금처럼 단단한 결정(규칙적인 덩어리)으로 만든 뒤 X선을 쏘아 그 반사 패턴을 분석하는 방식이다. 수십 개의 노벨상을 쏟아낸 위대한 기술이었지만, 치명적인 한계가 있었다. 우리 몸의 수많은 단백질, 특히 세포막에 붙어 있는 중요한 수용체 단백질들은 물과 기름이 섞인 형태라 억만금을 줘도 절대 결정(덩어리)으로 뭉쳐지지 않았다. 결정이 안 되니 구조를 볼 수 없고, 구조를 모르니 신약을 만들 수도 없었다. 하지만 Cryo-EM은 단백질을 억지로 뭉칠 필요 없이, 용액에 둥둥 떠 있는 '자연 상태 그대로' 얼려버리기만 하면 구조를 볼 수 있다. 2013년, 전자를 감지하는 카메라 센서(직접 전자 검출기)가 획기적으로 발전하면서, 뿌옇게만 보이던 Cryo-EM의 해상도가 마침내 원자 하나하나의 위치까지 선명하게 보이는(해상도 혁명) 기적을 이뤄냈다. 단백질 구조 연구의 헤게모니가 X선에서 Cryo-EM으로 완전히 넘어가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코로나19 백신을 2달 만에 만든 일등 공신
이 차가운 현미경이 없었다면 인류는 코로나19 팬데믹의 지옥에서 그렇게 빨리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2020년 1월, 중국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의 염기서열이 처음 공개되자마자, 미국의 제이슨 맥렐런 연구팀은 단 며칠 만에 바이러스 표면에 돌기처럼 솟아있는 '스파이크 단백질'을 추출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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