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 너가 그렇게 중요해
지구 생명체의 에너지원인 산소의 생화학적 역할과, 동시에 노화와 질병을 유발하는 활성 산소의 역설적인 두 얼굴을 분석한다.
편집부 · 2021년 10월 31일 · 읽는 데 4분
우리는 숨을 참으면 몇 분 안에 죽는다는 사실을 상식으로 알고 있다. 심폐소생술의 가장 첫 번째 단계도 기도를 확보하고 '산소(Oxygen)'를 공급하는 일이다. 지구 대기의 21%를 차지하는 이 무색무취의 기체는 생명을 유지하는 가장 완벽하고 자비로운 생명수로 여겨진다. 그런데 이토록 친근한 산소가 사실 우주에서 가장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화학 물질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철을 시뻘겋게 녹슬어 바스러지게 만들고, 멀쩡한 사과를 갈색으로 부패시키며, 숲을 잿더미로 만드는 거대한 산불의 원동력이 바로 산소의 지독한 화학 반응(산화)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수십억 년 전 지구에 처음 나타난 원시 생명체들에게 산소는 닿기만 해도 타죽어버리는 끔찍한 '맹독' 가스에 불과했다. 어떻게 이 잔혹한 독가스가 진화의 과정을 거쳐 인류의 숨통을 쥐고 있는 생명의 열쇠로 둔갑했을까? 세포 속에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기적의 불꽃이자, 동시에 우리 몸을 늙고 병들게 만드는 저주의 불꽃인 산소의 이중적인 생화학적 실체를 파헤쳐 보자.
전자를 훔치는 우주의 강도
산소가 무서운 이유는 그 화학적 성질에 있다. 주기율표에서 8번 자리를 차지하는 산소 원자는 자신의 바깥쪽 궤도에 전자를 꽉 채워 안정해지고 싶은 탐욕이 우주에서 두 번째(1위는 불소)로 강한 물질이다. 그래서 공기 중에 떠돌던 산소가 다른 물질(철, 탄소 등)과 닿는 순간, 깡패처럼 상대방의 전자를 무자비하게 빼앗아버린다(산화 반응). 전자를 빼앗긴 물질은 화학 결합이 끊어지며 구조가 박살 나버리는데, 이것이 쇠가 녹슬고 나무가 불타오르는 과정이다. 약 24억 년 전, 지구의 바다에 살던 남세균(시아노박테리아)이라는 미생물이 태양빛을 이용해 이산화탄소를 먹고 산소를 방귀처럼 내뿜기(광합성) 시작했다. 대기 중에 독가스(산소)가 쌓이자, 당시 산소가 없어도 잘 살고 있던 혐기성 원시 미생물들은 이 무자비한 전자 강도의 공격에 세포벽이 타들어 가며 지구상에서 거의 멸종(대산화 사건)해 버리는 끔찍한 대학살을 맞이했다. 산소는 생명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지구 초기의 생명체들을 몰살시킨 최초의 대량 살상 무기였다.
미토콘드리아, 독을 에너지로 바꾼 기적
하지만 진화는 위대한 반전을 만들어냈다. 산소의 파괴적인 공격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그 강력한 화학 반응을 길들여 에너지를 뽑아내는 돌연변이 세균이 등장한 것이다. 이 세균은 훗날 우리 세포 안으로 쏙 들어와 공생을 시작했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 몸속의 발전소인 '미토콘드리아(Mitochondria)'다. 우리가 밥을 먹어 얻은 포도당(탄수화물) 덩어리를 쪼갤 때, 산소가 없으면 아주 적은 양의 에너지(ATP 2개)밖에 만들지 못한다. 하지만 미토콘드리아 안에서 산소라는 강력한 불쏘시개를 사용해 포도당을 완전히 잿더미(물과 이산화탄소)로 태워버리면, 무려 15배나 많은 어마어마한 에너지(ATP 32개)가 쏟아져 나온다. 산소를 이용한 이 폭발적인 세포 호흡(에너지 효율) 덕분에, 눈에 보이지 않던 단세포 생물들은 거대한 공룡과 인간 같은 다세포 고등 생명체로 진화할 수 있는 막대한 동력을 얻게 되었다. 독가스를 태워 생명의 엔진을 돌리는 우주에서 가장 성공적인 생화학적 도박이 성공한 셈이다.
불완전 연소의 저주, 활성 산소
그러나 산소와의 위험한 동거는 끔찍한 청구서를 내밀었다. 미토콘드리아 발전소에서 산소를 이용해 영양분을 태울 때, 공장이 100% 완벽하게 돌아가지 않아 필연적으로 매연이 발생한다. 우리가 들이마신 산소의 약 1~2%는 물로 완전히 변하지 못하고 짝을 잃은 불안정한 상태의 찌꺼기로 남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노화와 질병의 주범인 '활성 산소(Free Radical)'다. 짝을 잃고 굶주린 이 맹견(활성 산소)들은 세포 안을 미친 듯이 돌아다니며 주변에 있는 멀쩡한 세포막, 단백질, 심지어 생명의 설계도인 DNA에까지 덤벼들어 전자를 강제로 물어뜯고 파괴해 버린다. 마치 몸 안에서 매초마다 수백만 개의 미세한 산화(녹스는 현상) 폭탄이 터지는 것과 같다. 젊을 때는 세포 내의 항산화 효소(SOD 등)가 이 미친 개들을 빠르게 잡아다 치워버리지만, 나이가 들수록 방어 시스템이 고장 나며 활성 산소가 몸에 쌓이게 된다.
노화와 질병의 가장 근본적인 스위치
세포 안에 활성 산소가 쌓이면 어떻게 될까? DNA가 공격받아 암호가 훼손되면 세포가 미쳐 날뛰며 '암(Cancer)'이 발생한다. 혈관 벽이 활성 산소에 의해 녹슬면 콜레스테롤이 엉겨 붙어 동맥경화와 심근경색이 일어나고, 뇌세포가 산화되어 파괴되면 알츠하이머와 파킨슨병(치매)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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