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지구과학

바다가 삼킨 열

지구 온난화로 발생한 막대한 열에너지를 바다가 흡수하는 물리학적 원리와, 끓어오르는 바다가 초래할 기상 이변을 경고한다.

편집부 · 2022년 6월 27일 · 읽는 데 4분

비정상적인 붉은 열광으로 빛나는 짙고 푸른 바다의 항공 뷰, 기후 변화 개념 이미지
비정상적인 붉은 열광으로 빛나는 짙고 푸른 바다의 항공 뷰, 기후 변화 개념 이미지

여름철 뉴스에서는 연일 '관측 사상 최악의 폭염', '펄펄 끓는 아스팔트' 같은 자극적인 제목과 함께 지구 온난화의 심각성을 경고한다. 우리는 에어컨을 틀며 달아오른 대기의 온도를 탓하지만, 사실 인간이 뿜어낸 온실가스가 만들어낸 어마어마한 열에너지의 진짜 행방은 대기가 아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지구에 축적된 잉여 열에너지의 무려 93% 이상은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땅이나 숨을 쉬는 공기가 아니라, 거대하고 깊은 '바다' 속으로 조용히 스며들었다. 만약 바다가 이 엄청난 열을 삼켜주지 않았다면, 지구 표면의 평균 기온은 지금보다 50도 이상 치솟아 인류는 진작에 타죽거나 멸종했을 것이다. 바다는 묵묵히 지구의 온도 조절기 역할을 하며 인류를 재앙으로부터 유예시켜 주었지만, 이제 그 거대한 스펀지도 한계 용량에 다다르고 있다. 열역학적 끈기를 지닌 물의 성질과, 수십 년간 억눌려 있던 뜨거운 바다가 토해내는 끔찍한 기상 이변의 청구서에 대해 알아볼 때다. 지구 온난화의 진짜 무서운 얼굴은 끓어오르는 대기가 아니라, 서서히 데워지고 있는 깊고 푸른 심연 속에 숨어 있다.

물의 엄청난 비열, 지구의 열 완충지대

바다가 대기보다 1,000배가 넘는 엄청난 열을 끄떡없이 흡수할 수 있는 비밀은 물이라는 물질이 가진 독특한 물리적 성질, 바로 '비열(Specific Heat)'에 있다. 비열은 어떤 물질 1g의 온도를 1도 올리는 데 필요한 열량이다. 냄비에 물을 끓여보면 금방 뜨거워지는 냄비(철)와 달리 물이 끓기까지 한참의 시간이 걸리듯, 물은 모래나 공기에 비해 비열이 압도적으로 높다. 이는 물 분자들(H2O)을 강력하게 이어주고 있는 수소 결합(Hydrogen bond) 때문이다. 외부에서 열에너지가 가해져도 이 단단한 수소 결합을 끊어내는 데 에너지가 대거 소모되기 때문에 정작 물 자체의 온도는 쉽게 올라가지 않는다. 게다가 바다는 지구 표면의 70%를 덮고 있으며 수심이 평균 3.8km에 달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부피를 자랑한다. 막대한 비열과 압도적인 질량이 결합된 바다는, 온실가스가 대기 중에 가둬둔 엄청난 양의 적외선 열에너지를 마치 블랙홀처럼 빨아들여도 수온은 단 0.1~0.5도 오르는 데 그친다. 바다라는 이 거대한 냉각수 덕분에 지구는 끓는점을 향한 급행열차의 브레이크를 간신히 밟고 있었던 셈이다.

해수 열팽창과 가라앉는 해안 도시

하지만 바다의 온도가 아무리 천천히 오른다 해도 그 안에 축적된 에너지의 총량은 상상을 초월한다. 과학자들은 1990년대 이후 바다가 흡수한 열에너지가 1초마다 히로시마 원자폭탄 5개가 터지는 에너지와 맞먹는다고 분석한다. 바다가 뜨거워지면서 인류가 직면한 가장 직관적인 재앙은 바로 해수면 상승이다. 많은 사람들이 해수면 상승의 원인을 북극의 빙하나 남극의 얼음이 녹아 물이 불어난 탓으로만 돌리지만, 실제로 상승분의 절반 이상은 유체역학적인 '열팽창(Thermal Expansion)' 현상 때문이다. 물 분자들은 온도가 올라가면 에너지를 얻어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분자 사이의 간격이 넓어져 전체적인 부피가 팽창한다. 목욕탕의 뜨거운 물이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과 같다. 이 거대한 바다 전체의 부피가 미세하게 팽창하면서 전 세계의 평균 해수면을 밀어 올리고 있는 것이다. 투발루나 몰디브 같은 남태평양의 섬나라들이 물에 잠기고, 방글라데시와 마이애미 같은 해안 저지대 도시들이 만성적인 침수 피해에 시달리는 것은 빙하가 녹기 전부터 바다가 삼킨 열이 부피를 키우며 조용히 반격을 시작한 결과다. 심해로 가라앉으며 열파를 흡수하는 온도계의 과학적 그래픽

슈퍼 태풍과 블로킹 현상의 배후

수온 상승은 지구의 기상 시스템을 극단적으로 뒤틀어 놓는 거대한 나비 효과의 진원지다. 태풍(허리케인)은 따뜻한 바다 표면에서 증발하는 수증기의 잠열(Latent Heat)을 엔진 삼아 돌아가는 거대한 열기관이다. 바다 표면의 수온이 과거보다 단 1도만 높아져도 대기 중으로 뿜어져 나가는 수증기와 열에너지의 양은 기하급수적으로 폭발한다. 그 결과 한 번 발생한 태풍은 과거보다 훨씬 더 거대하고 강력한 슈퍼 태풍으로 성장하며, 육지에 상륙해서도 엄청난 양의 물폭탄을 쏟아붓는다. 한편, 적도와 북극의 온도 차이가 줄어들면서 북반구 상공을 도는 제트 기류(Jet Stream)의 흐름이 느려지고 뱀처럼 굽이치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바다가 머금은 열이 대기 순환의 균형을 깨버린 것이다. 이로 인해 거대한 고기압이나 저기압이 한자리에 꼼짝 않고 머무르는 '블로킹(Blocking)' 현상이 발생한다. 어느 지역은 한 달 내내 비가 오지 않는 극심한 열돔(가뭄)에 시달리고, 반대편 지역은 쉴 새 없이 폭우가 쏟아지는 기상 극단화의 원흉이 바로 끓어오르는 바다다.

해양 생태계의 붕괴와 산성화

바다가 열을 흡수하는 동안,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까지 함께 빨아들이며 발생하는 '해양 산성화(Ocean Acidification)' 현상은 해양 생태계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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