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연구실에 처박혀서 하얀 가운을 입고 실험만 하는 화학자, 물감 묻은 후줄근한 티셔츠를 입고선 그림을 그리는 미술가. 미술과 화학은 마치 ‘미녀와 야수’처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화학은 미술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미술은 화학에서 태어나 화학을 먹고 사는 예술이다.”
<미술관에 관 화학자>의 저자 전창림은 위와 같이 말했다. 그는 이 책에서 화학으로 인해 미술의 역사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서술하였다. 둘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길래, 이렇게 말 할 수 있는 것일까?
유화의 기원
유화는 기름에 갠 물감을 이용해 그리는 그림으로 유채화라고도 부른다. 이는 여러 번 덧칠할 수 있고, 물감 특유의 질감을 이용한 표현도 수월하기 때문에 현대까지도 예술가들에게 사랑받는 방식이다. 특히 유화는 그 보존성으로 우리가 수 세기 전의 그림을 즐길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것은 물감은 증발이 아니라 기름의 산화에 의해서 천천히 굳어지기 때문인데, 산화할 때의 화학반응으로 유화 물감은 매우 견고해진다.

이러한 유화의 창시자는 네덜란드의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이다. 그는 유럽 북부 르네상스 미술의 선구자로,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을 그린 화가이다. 그는 식물성 불포화지방인 ‘아마인유’를 사용해 이전과는 다른 세밀한 표현을 가능케 했는데,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마저도 대부분의 유화물감에는 아마인유가 들어 있다. 불포화지방산은 녹는점이 낮기 때문에 상온에서 액체 상태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불포화기가 가교결합을 하며 굳어져 단단한 도막을 형성한다.

그렇다면 가교결합에 대해 더 알아보자. 가교결합은 사슬 모양 고분자의 사슬 사이를 화학결합에 의하여 서로 연결하는 것을 말한다. [그림 4]는 이를 보여주며, 검은색으로 표기된 황이 바로 가교결합을 한 것이다. 가교결합의 수가 많아질수록 사슬 모양 고분자에 특유한 가용성(물질이 용매에 잘 녹는 성질)과 열가소성(열을 가하면 구조가 변하는 성질)은 줄어들지만 반면에 기계적 강도는 커진다. 이러한 것이 유화를 오랫동안 사랑받는 기법으로 만들어주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템페라 기법
이러한 유화가 발명되기 전에 화가들은 무엇으로 그림을 그렸을까? 그것은 바로 계란 노른자이다. 화가들은 계란이나 아교, 무화과 열매, 벌꿀 등의 고착제에 안료를 섞어 물감을 만드는 템페라(Tempera) 기법을 사용하였다. 이러한 템페라 기법은 기존의 프레스토화에 비해 건조가 더디고, 덧칠하는 것이 가능했으며 광택을 띄었다. 또한 유화에 비해 잘 변질되거나 갈라지지 않으며, 온도나 습도에도 거의 영향을 받지 않고, 또 빛을 거의 굴절시키지 않아 유화보다 맑고 생생한 색을 낼 수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최후의 만찬>을 그릴 때 이러한 템페라와 유화를 함께 사용하였다. 그러나 이는 굉장히 잘못된 선택으로 평가된다. 템페라는 수용성, 유화는 지용성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 그림이 그려진 지 10년도 채 되지 않아서 상 분리가 일어나 끔찍하게 손상되고 말았다.

가장 가까운 위험, 물감

화가들의 가장 가까운 도구인 물감은 그들의 생명을 앗아가기도 하였다. 물감에 사용된 위험한 성분들 때문이다.
‘화이트 홀릭’이라 불리던 미국의 화가 휘슬러는 흰색을 무척 좋아하여 자신의 그림에 흰색을 주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당시, 묘한 매력으로 많은 사랑을 받던 연백(lead white)에는 납이 다량 함유되어 있었다. 연백의 화학적 명칭은 탄산납인데, 이러한 납을 매일같이 접한 휘슬러는 납 중독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그 뿐만 아니라, 슬프게도, 그를 죽음으로 내몬 아름다운 흰색 작품은, 납과 황의 반응물인 황화납을 생성해 검게 변색되었다.

위험한 물감은 서양뿐만 아니라 우리의 옛 그림에서도 사용되었다. 서양에서만 강한 독성의 물감을 사용한 것은 아니다. 우리의 옛 그림에도 그런 흔적이 묻어 있다. 교과서에서 한 번씩 보았을 법한 신윤복의 <미인도>는 그 아름다운 색감으로도 유명하다. 그 중 선명한 붉은색의 속치마 고름은 독성이 진사라는 광물에서 추출한 황화수은인데, 이는 색깔은 강렬하고 변색도 안 되지만 강한 독성을 가지고 있다.
▶ X선으로 밝혀낸 밀레의 <만종>의 비밀
1932년, 밀레의 <만종>을 관람하던 사람이 갑자기 칼로 그림을 찢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를 복원하기 위해 미술관에서는 X선 촬영을 시도하였다. 물체에 X선을 비추면 발생하는 형광에너지는 물체 고유의 특성을 반영하는데, 분석하고 표준시료와 비교하면 물체의 특성을 구분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미술작품에 적용시켜, 물감의 화학성분을 조사하면 어떤 물감을 사용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에 그 색과 모양을 알 수 있다.

밀레의 만종의 X선 촬영한 결과, 그 그림에 대한 놀라운 새 해석을 가져다주었다. 감자바구니가 그려진 부분 아래에 관으로 보이는 나무상자가 밑그림이 있었던 것이다. 이런 결과가 나오기 전 <만종>은 경건함과 감사함을 나타내는 평화로운 그림으로 해석되었지만, 이 결과 이후 그것은 피폐한 농촌의 현실을 담은 그림으로 재해석되었다. 밀레의 첫 의도는 아기를 묻는 모습을 그리려는 것이었지만, 제작과정에서 수정한 것이라는 의견이 제시된 까닭이다. 당시 밀레는 사회주의자로 오해받으면서까지 암울한 농촌의 모습을 표현하려 했다. 그렇게 나온 추측은 밀레가 장례식 장면을 그리려 했지만, 사회적 반향을 고려해 감자바구니로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림의 다른 요소들을 보았을 때, 어색한 부분이 많아 이에 대한 논쟁은 아직도 끝을 내지 못하고 있다.

미술, 그리고 화학
과학은 차갑고 냉정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따뜻하고 감성적인 예술과는 동떨어진 학문이라고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과학은 미술을 존재하게 했고, 긴 세월이 지난 지금, 미술 작품에 대한 다양한 감상을 가능케 해주었다. 상반될 것 같아 보이는 둘이 이렇게 밀접한 연관을 가졌다는 것이 놀랍지 않은가? 과학과 예술은 어쩌면 그 무한한 미지의 세계를 탐구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질지도 모른다.
<참고자료>
[1] https://blog.lgchem.com
[2] https://ppss.kr/archives
[3] https://www.scienceall.com
[4] http://hub.zum.com
<이미지>
[1] https://pixabay.com
[2] https://steemit.com
[3] http://soft-matter.seas.harvard.edu
[4] shop.p-el.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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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http://blog.daum.net
[8] http://m.tongilnews.com
[9] https://m.blog.naver.com
[10] https://leipiel.tistory.com

Chemistry 학생기자 유호정
2019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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