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뉴스 그래핀의 magic angle
두 장의 그래핀을 1.1도 비틀어 겹쳤을 때 나타나는 초전도 현상과 '마법의 각도(Magic Angle)'가 열어갈 응집물질물리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분석한다.
편집부 · 2025년 6월 4일 · 읽는 데 4분
2018년, 전 세계 물리학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놀라운 논문 한 편이 네이처(Nature)지에 실렸다. 연필심의 재료인 흑연에서 한 층을 얇게 떼어낸 2차원 물질 '그래핀(Graphene)'은 이미 2010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며 꿈의 신소재로 불리던 참이었다. 그런데 MIT 연구팀은 이 그래핀 두 장을 겹친 뒤, 위층의 그래핀을 아주 미세하게 딱 '1.1도' 비틀었을 때 믿을 수 없는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평소에는 전기가 통하는 일반적인 도체였던 그래핀이 1.1도 비틀어지는 순간, 전기가 전혀 통하지 않는 완벽한 부도체(절연체)로 돌변했다가, 미세한 전압을 가하자마자 저항이 완전히 0이 되는 '초전도체(Superconductor)'로 다시 탈바꿈한 것이다. 물리학자들은 이 1.1도를 '마법의 각도(Magic Angle)'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불과 1.1도라는 미세한 비틀림이 어떻게 물질의 본질적인 전기적 성질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것일까? 이 발견은 '트위스트로닉스(Twistronics)'라는 완전히 새로운 물리학 분야를 탄생시키며 상온 초전도체 개발을 향한 인류의 오랜 꿈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고 있다.
벌집 구조가 겹칠 때 생기는 모아레 무늬
마법의 각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모아레 무늬(Moiré Pattern)'라는 시각적 현상을 알아야 한다. 규칙적인 그물망이나 촘촘한 줄무늬 두 장을 겹쳐 놓고 살짝 비틀면, 원래의 무늬보다 훨씬 크고 새로운 형태의 둥글거나 기하학적인 물결무늬가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얇은 커튼 두 장이 겹쳤을 때 어른거리는 무늬가 바로 그것이다. 그래핀은 탄소 원자들이 육각형의 벌집 모양으로 규칙적으로 배열된 2차원 격자 구조다. 이 얇은 벌집 그물망 두 장을 겹친 뒤 1.1도 비틀면, 탄소 원자들의 배열이 엇갈리면서 수만 개의 원자를 포함하는 아주 거대한 새로운 육각형 패턴, 즉 '모아레 초격자(Moiré Superlattice)'가 형성된다. 이 거대한 모아레 패턴 속에서는 탄소 원자들이 완벽하게 포개져 있는 구역과 엇갈려 있는 구역이 번갈아 나타나며, 전자가 이동할 수 있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주기적인 지형(에너지 밴드)을 만들어낸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시 세계의 원자 배열이 겹쳐지면서 거시적인 물질의 성질을 지배하는 새로운 물리적 캔버스가 펼쳐진 것이다.
갇혀버린 전자들, 강상관 물질의 탄생
그래핀 한 장을 통과할 때 전자들은 마치 질량이 없는 빛처럼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자유롭게 휙휙 날아다닌다. 그러나 1.1도 비틀린 모아레 초격자 안에서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다. 거대한 모아레 무늬가 전자들을 특정 구역에 강하게 묶어두는 함정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엄청난 속도로 달리던 전자들은 이 함정에 빠져 속도가 거의 '0'에 가깝게 느려진다. 물리학에서는 이를 '평탄 띠(Flat Band)' 현상이라고 부른다. 전자들이 느려지고 서로 좁은 공간에 빽빽하게 모이게 되자, 이전에는 무시할 수 있었던 전자들 사이의 전기적 반발력(밀어내는 힘)이 엄청나게 강해진다. 서로 강하게 영향을 주고받는 이 상태를 '강상관 물질(Strongly Correlated Material)'이라고 한다. 전자들은 서로 부딪히지 않기 위해 옴짝달싹 못 하게 되고, 결국 전기가 전혀 흐르지 않는 '모트 절연체(Mott Insulator)' 상태로 얼어붙어 버린다. 최고의 전기 전도도를 자랑하던 그래핀이 1.1도의 비틀림만으로 완벽한 절연체로 돌변하는 기막힌 순간이다.
전압이 깨운 초전도의 마법
마법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꽉 막혀 있던 절연체 상태의 비틀린 그래핀에 외부에서 아주 미세한 전압을 걸어 전자들을 조금 추가하거나 빼주면, 숨 막히는 정체 상태에 약간의 빈 공간이 생기게 된다. 이때 놀랍게도 서로 강하게 밀어내던 전자들이 갑자기 두 개씩 짝을 짓는 '쿠퍼 쌍(Cooper Pair)'을 형성한다. 그리고 이 짝지은 전자들은 험난한 원자 격자들의 방해를 전혀 받지 않고 춤을 추듯 완벽하게 미끄러져 나간다. 전기 저항이 0이 되는 '초전도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기존의 구리 산화물 기반 고온 초전도체들은 왜 초전도 현상을 일으키는지 그 원리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아 화학적 조성을 바꾸어가며 무작정 실험을 반복해야만 했다. 하지만 비틀린 그래핀은 탄소라는 단일 원소만으로 이루어져 있고, 두께도 원자 2개 층에 불과하여 관찰하기가 매우 쉽다. 무엇보다 외부 전압을 조절하는 것만으로 부도체와 초전도체를 자유자재로 껐다 켰다 할 수 있는 '완벽한 물리 실험실'을 제공한다. 과학자들은 이 마법의 각도를 통해 오랫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고온 초전도의 비밀을 풀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트위스트로닉스가 그리는 미래
마법의 각도는 단순히 그래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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