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영재학교에서의 삶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많은 학생은 그중에서도 ‘잠’과의 문제로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데요, 대다수의 학생은 늦게까지 공부하다가 이른 새벽에서야 잠을 자곤 하지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아침형’ 인간과 ‘저녁형’ 인간 중 저녁형 인간들이 더 많나 봅니다. 하지만 그 이유가 태권도던, 아침점호이던 우리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합니다. 혹시 한 번쯤은 아침 일찍 일어나는 일과를 강요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있나요? 그리고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내일 아침에는 꼭 늦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했던 적 있나요? 놀랍게도 생물학 연구들은 우리의 이러한 소심한 반항이 과학적 근거가 있을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2017년 노벨 생리의학상 – 생체시계와 피리어드 유전자
생리의학 분야의 노벨상 수상자들에 관한 잡지를 읽다가 2017년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마이클 로스배시, 마이클 영, 제프리 홀 교수의 ‘생체시계’ 관련 연구를 인상 깊게 보았습니다. 이 두 연구는 근본적으로 ‘생명체’라는 공장이 어떻게 돌아가고 유지되는지에 대한 우리의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주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먼저 2017년에 노벨상을 생체시계 관련 연구는 24시간을 주기로 하는 우리 몸의 생체리듬을 유전자의 관점에서 분석한 연구입니다.

1960년대 말, 칼텍의 시모어 벤저 교수는 특정한 유전자들이 학습, 기억, 수면 등과 같은 행동들을 조절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고, 초파리를 이용하여 이를 증명하였습니다. 시모어 교수는 여러 마리의 초파리에게 유전자 변형을 임의로 시킨 뒤, 초파리에게 일어나는 변화를 관찰하였습니다. 그 결과, 24시간 주기의 생체리듬을 가지고 있는 초파리들이 유전자 변형이 가해진 후, 24시간보다 길거나 짧은 주기의 생체시계를 갖거나 아예 그 주기성을 잃어버렸습니다. 이 유전자는 주기를 뜻하는 피리어드(period) 유전자라고 명명되었습니다.
2017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시모어 교수의 이 연구와 밀접하게 관련되는데, 바로 이 피리어드 유전자의 작동원리를 규명해낸 것입니다. 저녁이 되면 피리어드 유전자의 전사가 활성화되면서 피리어드 mRNA가 만들어집니다. 이 mRNA가 번역되면서 그 결과, 피리어드 단백질(PER)이 만들어지게 되는데 밤 동안 이 PER이 세포질에 축적되면 TIM단백질과 결합하여 세포핵 안으로 들어가고, 새벽 무렵 피리어드 유전자의 전사가 차단됩니다. 낮 동안 피리어드 mRNA와 단백질의 양이 감소하면 다시 저녁이 되었을 때 피리어드 유전자의 전사가 활성화되며 이 과정이 24시간 주기로 반복되는 것입니다.

이 연구는 연구 자체로도 무척 흥미롭지만, 분자시계 관련 연구의 활용방안 역시 무궁무진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지구는 24시간을 주기로 자전하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낮과 밤을 만들어냅니다. 즉, 지구에 생명이 탄생한 이래, 지구에 존재했던 모든 생명체는 이 24시간 주기의 생체리듬을 관장하는 유전자를 가지게 되었던 것이지요. 이 유전자에 대해서도 물론 자연 선택의 원리가 적용되었을 것입니다. 24시간을 주기로 밤과 낮을 가지는 행성에서 48시간을 생체주기로 만드는 유전자를 가진 생명체는 적합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연 선택은 인간을 포함한 지구상의 생명체를 24시간 주기에 익숙해지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저는 최근 몇 년 전 흥행했던 ‘인터스텔라’라는 영화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인류의 생존에 더이상 적합하지 않아진 지구를 떠나 다른 은하계의 행성을 탐사하는 내용이 나왔을 때, 나는 분자시계와 관련된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행성의 자전주기는 지구와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설령 다른 조건들이 맞아 인류가 그 새로운 행성에 거주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수백만 년 동안 굳혀진 생체주기가 하루아침에 새로운 주기에 적응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봅니다. 만약 2017년 노벨상 수상자들의 연구를 기반으로 한 생체시계를 조작할 수 있는 생명공학 기술이 발전한다면 먼 미래의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새로운 행성에서의 원활한 생활이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사실 24시간을 우리의 생체 주기가 되도록 만든 유전자는 지구상에서 지배적인 위치에 서기까지 수백만 년간의 자연 선택, 유전자 간의 경쟁에서 살아남아 지금의 지구상 모든 생명체를 지배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의 생명공학 기술이 발달하고 수백만 년간 지배적이었던 유전자를 한 개체 내에서 완전히 없애버리고 새로운 생체 리듬을 가지는 개체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엄청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아직 현실화된 기술은 아니지만, 우리 인간이 ‘진화’라는 엄청난 메커니즘에 조작을 가할 수 있다는 사실이 한편으로는 무섭기도 한 것 같습니다.
2016년 노벨 생리의학상 – 오토파지(Autoghagy) 현상
2016년 생리의학상은 이보다는 조금 작은 스케일이지만, 우리 인류의 건강과 의료 부분에서의 활용 가능성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연구라고 생각합니다. 수상자는 세포 내 재활용 시스템이라고도 불리는 오토파지(자가포식) 현상의 원리를 규명한 오스미 요시노리 교수의 연구로, 분해되어야 하는 세포 구성성분들이 어떻게 자가소포체 형태로 라이소좀까지 배달되는지 밝혀내었습니다.

오스미 교수는 효모에서 오토파지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오토파지가 일어나는데 중요한 유전자 15개를 발견하였습니다. 이 유전자들은 자가소포체가 만들어지는데 필요한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한다고 밝혀졌습니다. 이렇게 포장된 세포 내에서 더 필요 없는 기관과 물질들은 자가소포체와 리소좀이 결합함에 따라 리소좀의 가수분해 효소에 의해 분해됩니다. 오토파지는 우리 몸속에서 항상 일어나는데, 단순히 기능을 상실한 기관을 제거하는 기능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집니다.

오토파지는 우리 몸의 항상성 조절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면, 체내에 영양분이 부족한 환경에서는 오토파지를 활성화하여 필요한 당과 아미노산을 얻는 원리이지요. 최근 오토파지가 정상적으로 일어나지 않는 사람들의 경우 헌팅턴 무도병과 치매, 파킨슨병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합니다. 오토파지를 조절하는 이러한 유전자의 발견은 분명 가까운 미래에 오토파지를 기반으로 한 질병 치료에 활용 가능한 생명공학 기술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학을 연구한다는 것, 과학 기술과 과학의 발전
2016년과 2017년 수상자들의 연구업적을 보면서 생명 현상에 대해 경이로움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우리 몸은 분자 단위에서부터 설계되었고, 작동하는 하나의 시스템입니다. 분자 규모의 체계들로 인해 인간이라는 하나의 생명체가 작동하는 것도 놀랍지만, 더욱 신기한 것은 시스템에 문제가 생겨도 스스로 그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는 것입니다. 혈당량이 높아지면 인슐린을 분비해 혈당량을 낮추고, 항원이 우리 몸속에 들어오면 선천면역과 적응면역 등의 기작을 통해 백혈구들은 항원을 죽입니다. 상처가 나면 혈액이 응고하고, 질소 노폐물 농도가 높아지면 배설하도록 명령하는 식이지요.
아이러니하게도 실제로 자연적 노화에 의한 사망보다 각종 사건 사고나 질병, 좋지 않은 생활 습관에 의한 가속된 죽음을 우리는 더 자주 마주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죽음을 늦추기 위해 다시 우리 몸을 연구합니다. 과격한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가만히 좋은 음식을 챙겨 먹고 건강한 생활 습관을 지니면 무병장수할 수 있으나 우리 인간은 각종 이유에 의해 안타깝게도 그러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과학자들과 의사들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 몸의 여러 가지 체계들에 관한 연구를 계속 이어가고 그 결과 우리 몸의 수수께끼를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며 생명공학 기술, 의료기술을 발전시켜 나갑니다. 아마도 이 아이러니한 순환이 지금의 우리 인류의 과학기술을 발전시키지 않았나 싶은 부분입니다.
분명 과학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고 인류는 나날이 풍족해지고 있지만, 아직 우리가 발견해낸 것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합니다. 비록 현재까지 우리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들이 훨씬 더 많지만, 과학자들의 노력, 그리고 설령 과학자가 아니더라도 과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 모두의 노력을 통해 그 수수께끼들이 하나둘 풀릴 것을 기대해봅니다.
참고자료
[1] http://m.sci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69
[2] https://www.studyread.com/importance-of-lysosomes/
[3] http://dongascience.donga.com/
[4] https://biologydictionary.net/lysosome/
[5]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80-018-0003-4
[6] https://www.nsf.gov/news/news_summ.jsp?cntn_id=243275
[7] 과학동아 2017년 11월호 p.108~111,
[8] 과학동아 2016년 11월호 p.50~53,
[9] 사이언스타임즈 세포 내 재활용 시스템 ‘오토파지’[만화로 푸는 과학 궁금증] 세포 안에서 발생하는 쓰레기 처리 방법 2019.10.11.,
[10] 사이언스타임즈 노벨 생리·의학상, ’24시간 생체시계’ 비밀 연구 미 과학자 3명, 밤에 졸리고 아침에 깨는 원리 밝혀 2017.10.03
첨부 이미지 출처
[1] http://m.sci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69
[2]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80-018-0003-4
[3] https://theconversation.com/interstellar-gives-a-spectacular-view-of-hard-science
[4] http://dongascience.donga.com/
[5] https://www.thesun.co.uk/living/2002938/
[6] https://www.nsf.gov/news/news_summ.jsp?cntn_id=243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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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권이태
발행호│2020년 여름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