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꼭 필요한 세 가지로 의, 식, 주를 꼽고는 합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중에서도 없으면 절대 안 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식’이죠! 인간의 생존에 직결되기도 하는 요리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기쁨과 재미, 행복감을 제공해왔습니다. 아일랜드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는 ‘음식에 대한 사랑처럼 진실된 사랑은 없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죠! 그래서일까요? 우리나라에서도 몇 년 전부터 예능 프로그램에 요리사가 출연하며 전국적으로 요리 열풍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혹시 알고 계셨나요? 실험대 앞에서 하얀 가운을 입고 현미경을 유심히 들여 보는 것만 할 것 같은 과학자들이 사실 그 어떤 셰프보다도 요리를 발전시켜 왔다는 사실!
네? 불이라고요?
사실 과학은 우리가 그 사실을 인지해내기도 한참 전부터 요리에 기여해 왔습니다. 142만 년 전, 한 호모 에렉투스 종의 원시인은 우연히 밝으며 넘실거리고 뜨거운 기운이 느껴지는 뭔가를 활용할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인류가 불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실 불의 발견은 요리뿐 아니라 인류 활동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가히 혁명적인 사건이라고 일컬어집니다. 하지만 요리에서 그 기여는 남달랐죠. 불을 쓰기 시작하며, 지구의 역사가 시작된 뒤 처음으로 우리의 아득히 먼 조상님들은 익힌 고기의 맛을 보게 됩니다.

생고기는 상당히 질기고 비린 맛이 나며, 위생 상태가 나쁘다면 기생충 감염의 위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생고기와 익힌 고기 사이에는 훨씬 더 중요한 차이점이 존재합니다. 같은 양의 생고기와 익힌 고기를 먹었을 때, 우리 몸이 얻을 수 있는 칼로리 차이는 상당히 큰데요, 바로 불을 이용해 고기를 익히는 과정에서 단백질 성분이 변성되며 성질이 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음식을 소화해 세포가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는 과정을 계속해서 유지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고기의 콜라겐 성분이 젤라틴화되며 생고기의 빈틈없는 구조가 무너지는 등의 구조적 변화가 소화에 사용되는 에너지를 줄여 음식의 소화를 더 쉽게 해주는 것이죠! 실제로 비단뱀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갈고 익혀 요리한 고기를 섭취한 비단뱀 집단의 SDA(Specific Dynamic Action, 음식물 섭취 후 증가한 대사량으로 이 값이 높을수록 음식물 소화에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는 생고기를 섭취한 대조군에 비해 무려 23.4%나 감소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 얻어진 20% 가량의 추가 칼로리는 어디에 사용되었을까요? 원시 수렵채집 사회에서 칼로리는 곧 생존을 의미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유의미한 수준의 추가 칼로리를 얻음으로써 불을 이용한 요리를 하는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생존에 더 유리했기에 자연스레 요리 문화가 퍼지게 된 것이죠. 게다가, 이 추가 칼로리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가지 더 하게 됩니다. 몸무게의 고작 2퍼센트에 불과한 인간의 뇌는 사실 전체 소모 칼로리의 20% 가량을 쓸 정도로, 굉장히 칼로리 소모가 많은 기관입니다. 그런데 요리를 시작하며 얻어진 추가 칼로리와 더 흡수하기 쉬워진 영양소 덕에, 인류의 뇌용량은 급속히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뇌의 발달이 인류가 문명을 꾸릴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라는 학설도 존재한다고 하니, 어쩌면 인류가 요리를 만든 게 아니라 요리가 인류를 만들었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건강을 담보로 맛을 빌리다
불의 발견으로 인한 익힌 음식의 등장 이후로, 인류의 식단에는 무서운 변화가 일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눈에 아주 잘 띄는 변화가 한 가지 있습니다.
1860년대, 프랑스는 당시 러시아·프로이센 등과의 전쟁을 겪었기에 서민들도 먹여살릴 수 있고, 군수물자로도 활용할 수 있는 기름지고 값싼 음식이 필요했습니다. 이에 당시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는 버터의 값싼 대용품을 발명하는 자에게 큰 상을 내리겠다고 했고, 결국 1869년 화학자 이폴리트 메주 무리에(Hippolyte Mège-Mouriès)가 버터와 아주 닮았지만 저렴하게 생산할 수 있는 마가린을 발명해냈고, 이후 마가린은 1871년부터 인공 버터라는 이름으로 생산되기 시작했습니다. 한편 독일에서도 1902년 화학자 빌헬름 노르만이 액체 상태의 식물성 지방을 고체 상태로 만드는 기술을 개발하는데요. 이를 지켜보던 미국의 한 기업이 곧바로 이 기술을 활용해 쇼트닝 제품을 내놓았고, 제품은 출시되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됩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새로 개발된 제품이 훨씬 더 사람들의 입맛에 잘 맞았거든요! 그렇게 쇼트닝은 과자와 빵 등 온갖 음식에 전부 사용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1980년대 말엽에 상당히 충격적인 주장이 제기됩니다. 바로 백여 년 동안 잘 사용해 왔던 쇼트닝과 마가린 제품들에 함유된 성분이 심장병, 뇌졸중, 암, 치매, 당뇨병 등 온갖 질병들을 유발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제는 너무나도 유명해진, 트랜스 지방이 그 물질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많은 식품 회사들이 바삭한 식감과 탁월한 맛을 가져다주는 이 트랜스 지방을 포기하기 어려웠기에 트랜스 지방의 유해성 문제를 무시했었습니다. 하지만 연구 결과가 축적되고 급기야 2000년대 초에 소송까지 제기되자 거대 기업들까지도 움직이기 시작했고, 이제 한때 시대를 풍미했던 트랜스 지방은 FDA에 의해 식품 첨가물로 분류되며 퇴출 수순을 밟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트랜스 지방이라는 물질은 정확하게 무엇이길래 이렇게 무시무시한 걸까요?

한때 트랜스 지방의 대명사였던 마가린. 이제는 제조 공정에서 트랜스 지방을 제거하기에 오히려 버터보다도 트랜스 지방 함량이 약간 낮다고 합니다. 휴, 아주 조금은 안심해도 되겠어요!
우리가 흔히 지방이라고 말하는 분자는 크게 지방산과 글리세롤이라는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 중에서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바로 지방산 부분인데요, 자연에 일반적으로 존재하는 두 가지 지방인 불포화 지방과 포화 지방은 각각 불포화 지방산과 포화 지방산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런 지방산들은 탄소로 된 ‘뼈대’에 수소가 마치 생선살처럼 붙어 있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뼈대를 구성하는 탄소는 원자 1개당 4개의 결합을 가질 수 있습니다. 즉, 뼈대의 앞뒤 탄소 원자와의 결합을 빼면 탄소 원자 1개마다 최대 2개의 결합을 더 만들 수 있는 것이지요.

포화 지방산에서는 모든 ‘사용 가능한 탄소 결합’이 전부 수소와 결합해 있습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모든 결합은 전부 단일 결합이 되며, 전체적인 구조도 굉장히 곧은 1자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반면 불포화 지방산의 경우, 뼈대를 이루는 탄소 원자 중 최소 한 개 이상이 이웃한 탄소 원자와 다중 결합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러한 다중 결합 때문에, 불포화 지방산은 포화 지방산에 비해 더 굴곡진 구조를 가집니다.
트랜스 지방의 경우, 두 가지 지방산의 특성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위 그림에서도 볼 수 있듯, 분명히 트랜스 지방산에도 최소 한 개 이상의 다중 결합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트랜스 지방은 불포화 지방산과는 달리 마치 포화 지방산처럼 뻣뻣한 1자형의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트랜스 지방의 이름이 붙여진 이유이기도 한, 시스(cis)와 트랜스(trans) 구조의 차이 때문인데요, 위 그림을 자세히 보면 불포화 지방산의 경우 이중 결합 주위에서 수소가 전부 한 방향에만 달려 있지만, 트랜스 지방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치환기 등(지방산의 경우 수소 원자)가 같은 방향에 있는 것을 시스, 다른 방향에 있는 것을 트랜스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작아 보이는 차이는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지닙니다. 그 대표적인 그 예시로는 한 형태의 경우 입덧 진정 작용을 하지만 다른 형태의 경우 혈관 생성을 억제해 엄청난 부작용을 불러왔었던 탈리도마이드가 있는데요, 트랜스 지방산과 불포화 지방산도 이렇게 놀랍도록 닮았지만 치환기가 있는 방향에 따라 성질이 급격하게 달라지는 광학 이성질체의 한 종류였다는 사실, 놀랍지 않나요?
과학은 우리 모두 안에
과학이 촉발한 요리 혁명은 선사 시대, 처음으로 익힌 고기를 요리한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이어져 왔습니다. 최근에는 프랑스의 화학자 몇 명이 만든 학문인 분자 요리학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분자 요리라니, 이름만 들어도 신선하지 않나요?

오랜 시간 동안 과학은 책 속에 갇힌 딱딱한 학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수십 년 전부터 갑자기 책 속에서 과학이 튀어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경제 발전과 함께 전국에 수많은 과학관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비약적인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실생활에 과학과 공학이 녹아들었음을 비로소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외우는 과학이 아닌 보고 느끼는 과학의 시대가 온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많은 사람들에게 과학은 그저 시험을 위한 귀찮은 암기 과목에 불과합니다. 저 멀리 수억 광년 떨어진 곳의 은하를 관측하고, 원자핵 속 쿼크들의 특징을 설명하는 기나긴 식들을 써내려가는 것도 물론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과학이 꼭 그런 웅장하고 심오한 것이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손 안에 들려진 사과 한 알도, 접시 위에 올려진 따끈한 불고기도 얼마든지 과학적 탐구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한 번 냉장고를 열고 냉장고 속 음식에 어떤 과학이 또 숨어 있는지 찾아 보는 건 어떨까요?
참고자료
[1] https://www.forbes.com/
[2] https://news.harvard.edu/
[3] Scott M Boback, Christian L. Cox, et. al. Cooking and grinding reduces the cost of meat digestion
[4] https://3dmusclejourney.com/
[5] https://www.nutritionvalue.org/
첨부 이미지 출처
[1] Pixabay
KOSMOS CHEMISTRY 지식더하기
작성자│김정호
발행호│2020년 봄호
키워드│#화학 #요리 #과학사 #음식 #생활 #불 #마가린 #불포화_지방 #분자요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