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매일매일 마시는 물, 무더운 여름에 더위를 해소하기 위해 깨물어 먹는 얼음, 하늘에 떠 있어서 기상 현상을 만들어내는 구름까지 우리 생활 주변에 서로 다른 상(phase)은 늘 존재합니다. 이렇듯 서로 다른 상으로 존재하는 물, 얼음, 수증기도 실제로는 모두 하나의 같은 물질입니다. 왜냐하면 서로 정돈 상태나, 온도, 활발한 정도만 다를 뿐 모두 같은 H2O로 구성된 하나의 물질이기 때문입니다. 얼음이 녹아 물이 되고 물이 증발해 수증기가 되는 것을 상전이라고 부릅니다. 물리의 큰 분야 중 하나인 통계물리학에서는 이러한 상의 특성을 파악하고 상전이의 조건 등을 이해하고 계산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번 기사에서는 우리가 주변에서 보는 3차원 물질들의 상전이가 아닌 2차원 평면 크리스탈과 같은 2차원 물질들의 상전이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2016년도 노벨물리학상은 위 분야에서 나왔습니다. 바로 위상수학의 개념을 적용해 상전이에 대한 기존 이론을 뒤집은 3명의 물리학자, 데이비드 사울레스 워싱턴대 교수, 홀데인 프린스턴대 교수, 마이클 코스털리츠 브라운대 교수가 그 주인공들입니다.
KTHNY 이론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KTHNY 이론은 2차원 크리스탈이 녹는 과정에 대한 이론입니다. 단단하고 완전히 정렬된 고체에서 각각의 원자들이 자유로이 돌아다닐 수 있고 서로 거의 정렬이 되지 않은 액체 상태로의 상전이에 관한 이론입니다. 세세한 설명에 앞서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면, 크리스탈 고체에서 등방성(isotropic)의 액체로 전이되는 과정 중간에 육방상(hexatic phase) 이라고 불리우는 새로운 상이 존재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이야기하는 2차원 크리스탈 물질이 무엇일까? 라는 궁금증이 남습니다. 2차원 크리스탈 물질이란 말 그대로 아래 [그림1]처럼 원자들이 2차원으로 배열된 것입니다. 완전히 격자 상태로 존재하면 고체, 아래 구조가 풀어져 정렬이 사라진다면 액체 상태가 됩니다. 이러한 2차원 구조는 박막과 같이 고체를 아주 얇은 층으로 자르거나 콜로이드를 아주 얇게 펴놓음으로서 만들 수 있습니다. 또한, 특정 화학 물질 들에서 발견되기도 하고 심지어는 ISING 모델을 2차원으로 확대한 XY 모델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교과 과정에서 고체의 온도를 높여주면 분자들의 평균 운동 에너지와 병진운동이 증가하게 되고 분자들이 많이 움직이려다 보니까 정렬이 깨지게 된다고 배웠습니다. 하지만, 미시적으로 어떠한 과정을 통해서 아주 단단한 정렬이 깨지게 되는 지는 배우지 못했습니다. 미시적인 2차원 고체의 녹는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두 가지 용어의 의미를 이해해야 합니다. 첫 번째는, 어긋나기(dislocation)이고 두 번째는, 전경(disclination)입니다.
어긋나기란 완벽한 크리스탈 격자에 반쪽자리 크리스탈 선을 삽입함으로서 나타나는 결함입니다. [그림 2]를 보면 A 점과 같이 격자가 도중에 끊겨 있는 결함을 어긋나기라고 부릅니다. 원상태로 회복하기 위해서는 그림의 빗금친 부분의 결합이 끊기고 b 벡터의 방향을 따라 끊긴 격자의 오른쪽 부분이 평행 이동되어야 합니다. 또한, 어긋나기를 둘러싸는 루프를 그렸을 때(그림에서 1,2,3,4 화살표로 표시되는 부부) 남는 스텝(그림에서 선분 SE)이 생기게 되는데 이때 이 벡터 b를 버거스 벡터(burgers vector) 라고 부릅니다.

이는 아래의 [그림3]과 같이 삼각 크리스탈에서도 나타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어긋나기가 눈에 확연하게 안 들어오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사실 어긋나기란 가까운 이웃의 수가 다른 원자들과 차이나는 원자들을 의미합니다. 즉, 5개의 이웃을 가지고 있는 삼각형 원자와 7개의 이웃을 가지고 있는 사각형 원자가 바로 결함인 것입니다. 더불어, 어긋나기 주위로 루프를 그림으로서 버거스 벡터를 찾을 수 있고 빗금 친 부분을 따라 결합을 끊은 뒤 버거스 벡터 방향으로 격자를 평행 이동 시킴으로서 결함이 없는 원래의 격자로 원상 복귀할 수 있습니다.

어긋나기의 개념에 대해 이해하셨으니 이제 어긋나기가 어떻게 발생하는지 이해해야 합니다. 위에서는 완성되어 있는 격자에 어떠한 새로운 반쪽 자리 격자 선이 들어오면서라고 이야기 했지만 이는 사실 거의 불가능합니다. 너무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할뿐더러 이미 형성되어 있는 여러 개의 결합을 끊고 재결합을 형성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위 문제에 대한 답은 어긋나기 쌍으로서 생성되는 것입니다. [그림 4]에서 볼 수 있듯이 격자의 작은 움직임만으로 두 개의 어긋나기 쌍을 제작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결합을 끊고 새로운 결합을 삽입하는 것보다 훨씬 그럴듯한 시나리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어긋나기가 생길 때에는 주변 크리스탈 격자의 변형을 유발합니다. 그래서 어긋나기는 탄성에너지를 가지게 되고 어긋나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고체에 열을 주어 온도를 높여 액체로 만드는 것처럼 고체에 일정 에너지를 전달해 주어야 합니다. 온도를 높여 어긋나기가 점점 생겨나다 보면 점점 고체는 처음의 정렬된 상태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하지만, 아직 액체가 되지는 못합니다. 고체에서 액체가 되기 위해서는 고체에서 있었던 모든 정렬을 잃어버려야 합니다. 이러한 고체에서의 정렬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되는데 바로 병렬적 정렬(translational order)과 각도적 정렬(orientational order)입니다. [그림 5]의 크리스탈 상에서 보이는 것처럼 모든 원자가 일직선으로 정렬 되어있을 때를 병렬적으로 정렬, 각 원자에서 주변 원자까지의 방향들이 모두 같을 때를 각도적으로 정렬이 되어있다고 봅니다. 이와 반대로 [그림 5]의 액체상은 병렬적으로도 각도적으로도 정렬이 되어있지 않습니다.

그럼 우리는 이제 고체에서 액체로 상전이가 되기 위해서는 병렬적 정렬과 각도적 정렬이 모두 없어져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 어긋나기가 생기게 되면 어떤 정렬이 없어지게 되는지 봅시다. [그림 6]에서처럼 어긋나기가 생기게 되면 빨간색 화살표 방향으로 격자 자체가 뒤틀려(shearing) 병렬적 정렬이 사라지게 됩니다. 하지만, 각도적 정렬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원자 사이를 잇는 검은색 선이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것처럼 아직 주변 원자들 사이의 각도는 많은 원자들에서 같습니다. 이렇게 고체에서 병렬적 정렬은 없어지되 각도적 정렬이 남아 있는 상을 육방상 (hexatic phase) 이라고 부릅니다.

마지막으로 각도적 정렬이 없어지는 과정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고체에서 온도를 조금 높여주면 격자가 한쪽 방향으로 뒤틀리는 어긋나기가 생긴다고 했습니다. 이제 여기서 온도를 더 높여 봅시다. 쌍으로 존재하던 어긋나기가 서로 멀어지더니 혼자 떨어져 있는 어긋나기(single dislocation)가 됩니다.
위에서 어긋나기는 주변 원자들과 서로 다른 개수의 가까운 이웃을 가지고 있다고 언급하였는데 이는 아래 [그림 7]의 삼각 격자에서는 정상적인 6개의 이웃과는 다른 5개, 7개의 이웃을 가진 것을 말합니다. 어긋나기 쌍에서 분리되어 이렇게 고립되어 남들과는 다른 가까운 이웃의 개수를 가지고 있는 것을 전경(disclination) 이라고 부릅니다. 전경이 생기게 되면 원자들 사이의 각도가 뒤틀리게 되므로 각도적 정렬도 사라지게 됩니다. (6개의 이웃을 가질 때에는 사이 각도가 60도였는데 7개, 5개의 이웃을 가질 때에는 뒤틀리게 된다) 이렇게 병렬적 정렬, 각도적 정렬이 모두 사라진 상태를 액체라고 부르게 됩니다.

KTHNY 이론을 요약하자면 2차원 고체에서 액체로 상전이가 일어날 때에는 두 가지 스텝을 따라 일어나며 첫 번째 스텝은 어긋나기의 형성으로 격자가 한쪽 방향으로 뒤틀려 병렬적 정렬이 사라지는 것, 두 번째 스텝은 쌍으로 존재하던 어긋나기가 서로 멀어지면서 주변과 다른 이웃의 수를 가진 전경이 되어 각도적 정렬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또, 이 두 스텝 사이에 존재하는 새로운 상을 육방상이라고 부르게 됩니다.
마무리
오늘은 2차원 격자 고체에서 액체로의 상전이인 KTHNY 이론에 대해서 다뤄보았습니다. 고체에서 액체로 녹는 것처럼 아주 간단한 현상처럼 보일지 몰라도 안의 미시적인 세계 속에서는 어긋나기가 생성하고 멀어지고 전경이 생겨나고 여러 가지 정렬이 파괴되는 등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물리학은 단순해 보이고 직관적인 현상들 안에 미시적 현상들을 규명하고 밝혀내어 인류의 이해를 넓히는 데에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영광의 2016년 노벨 물리학상도 KTHNY 이론을 정립한 세 명의 물리학자에게 수여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참고자료
[1] Phase Transitions in Two-Dimensional Colloidal Systems
(Hans-Hennig von Crunberg, Peter Keim, and Georg Maret)
[2] 위키피디아 KTHNY
[3] 위키피디아 Hexatic phse
첨부 이미지 출처
[1] Phase Transitions in Two-Dimensional Colloidal Systems
(Hans-Hennig von Crunberg, Peter Keim, and Georg Maret)
[2] 위키피디아 Hexatic Phase
KOSMOS PHYSICS 지식더하기
작성자│홍석찬
발행호│2020년 봄호
키워드│#2016노벨물리학상 #KTHNY #상전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