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더하기 장내미생물
인간의 대장 속에 세 들어 살면서 음식을 분해하고 우울증과 면역력까지 조종하는 39조 마리의 외계 생명체, '장내 미생물(마이크로바이옴)'의 생태계를 파헤친다.
편집부 · 2022년 1월 15일 · 읽는 데 4분
인간은 자기 스스로 살아가는 독립적인 생명체라고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당신의 몸을 이루는 인간 세포의 수는 약 30조 개인 반면, 당신의 대장 속에 바글바글 뭉쳐 살고 있는 똥 세균, 즉 '장내 미생물(Gut Microbiome)'의 수는 무려 39조 마리에 달한다. 유전자(DNA) 숫자로 따지면 내 몸속 유전자의 99%는 인간의 것이 아니라 이 미생물들의 것이다. 우리는 그저 거대한 박테리아 군단이 타고 다니는 거대한 뼈와 살덩어리 우주선(숙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매일 먹는 밥을 훔쳐 먹는 불청객인 줄 알았던 이 미생물들이, 사실은 인간의 비만과 면역력, 심지어 우울증까지 완벽하게 조종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공생의 생물학을 들여다보자.
소화의 외주화, 미생물 공장
인간의 위와 소장은 밥이나 고기는 잘 녹이지만, 채소에 들어있는 질긴 '식이섬유(셀룰로스)'는 절대로 소화하지 못한다. 소화되지 않은 식이섬유는 그대로 찌꺼기가 되어 대장으로 밀려 내려가는데, 이곳이 바로 39조 마리의 장내 미생물들이 뷔페를 벌이는 파티장이다. 미생물들은 인간이 소화하지 못한 식이섬유를 게걸스럽게 갉아먹으며 발효시킨다. 그리고 그 보답으로 인간의 장벽을 튼튼하게 코팅해 주고 암을 예방해 주는 마법의 물질(단쇄지방산, SCFA)과 비타민을 똥 속에 콸콸 뿜어내어 인간에게 바친다. 인간과 미생물의 기가 막힌 화학적 물물교환이다.
물만 먹어도 살이 찌는 이유, 뚱보균
"나는 물만 먹어도 살이 쪄"라고 억울해하는 사람들의 변명은 과학적으로 팩트다. 장내 미생물의 생태계가 박살 나면, 유해균(퍼미큐테스)이 득세하며 이른바 '뚱보균'이 대장을 장악한다. 이 뚱보균은 똑같은 사과 한 개를 먹어도 보통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은 칼로리를 미친 듯이 쥐어짜 내서 몸속에 지방으로 차곡차곡 쑤셔 박아 버린다. 반대로 '날씬균(박테로이데테스)'이 많은 사람은 똑같이 피자를 먹어도 남는 칼로리를 똥으로 시원하게 배출해 버린다. 비만은 내 의지력 부족이 아니라, 내 뱃속에 세 들어 사는 미생물들의 식성 문제였던 것이다.
제2의 뇌, 기분과 감정을 조종하다(장-뇌 축)
장내 미생물의 가장 소름 돋는 능력은 뇌를 해킹하는 것이다.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호르몬인 '세로토닌'의 90%는 뇌가 아니라 뱃속의 장내 미생물들이 공장처럼 찍어낸다. 장내 환경이 나빠져서 미생물들이 세로토닌 파업을 선언하면, 인간은 영문도 모른 채 극도의 우울증과 불안 장애에 시달리게 된다. 뱃속의 세균들이 화학 물질을 뿜어내 미주 신경을 타고 뇌의 감정을 물리적으로 조종(장-뇌 축, Gut-Brain Axis)하는 것이다. 우울증 환자에게 정신과 약 대신 유익균 캡슐(마이크로바이옴)을 먹이는 치료법이 연구되는 이유다.
면역력의 70%를 책임지는 훈련소
우리 몸을 병균으로부터 지키는 백혈구(면역 세포)의 70%는 장 점막에 오밀조밀 모여있다. 장내 미생물들은 이 백혈구들과 매일매일 티키타카를 하며 "이건 나쁜 세균이니 공격해!", "이건 내가 먹는 유익균이니 쏘지 마!" 하고 사격 훈련을 시켜준다. 감기에 걸렸을 때 독한 항생제를 냅다 삼켜서 장내 미생물까지 싹 다 몰살시켜 버리면, 백혈구들이 훈련을 받지 못해 알레르기나 자가면역질환에 걸릴 확률이 미치도록 치솟게 된다. ![위장에 있는 빛나는 박테리아가 인간 두뇌의 기분과 감정을 물리적으로 제어하기 위해 미주신경으로 보이지 않는 화학적 신호를 곧장 쏘는 '장-뇌 축'을 보여주는 생물학적 다이어그램](https://image.pollin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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