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더하기 엄마 탓 아빠 탓
탈모는 엄마 탓일까, 아빠 탓일까? X염색체와 미토콘드리아 DNA에 얽힌 유전 법칙을 통해 부모가 물려주는 유전적 룰렛의 생물학적 비밀을 파헤친다.
편집부 · 2022년 6월 28일 · 읽는 데 4분
명절에 친척들이 모이면 빠지지 않는 단골 멘트가 있다. "어머, 쟨 누굴 닮아서 저렇게 성질이 고약해?" 그러면 엄마는 "아빠 닮아서 그렇지!"라고 맞받아친다. 우리는 흔히 부모로부터 절반(50%)씩 똑같이 유전자를 물려받는다고 배운다. 하지만 생물학의 세계로 깊숙이 들어가 보면, 유전의 룰렛은 결코 5대 5로 공평하게 돌아가지 않는다. 어떤 질병이나 특징은 억울하게도 오직 '엄마' 쪽에서만 몰빵으로 물려받고, 어떤 치명적인 유전병은 '아빠'가 아들에게만 물려준다. 곱슬머리부터 대머리, 심지어 우리 몸의 에너지 공장까지, 유전자 속에 얽히고설킨 '엄마 탓, 아빠 탓'의 생물학적 진실 공방을 파헤쳐 보자.
X와 Y의 억울한 룰렛, 반성 유전(Sex-linked)
남자는 XY, 여자는 XX 염색체를 가진다. 문제는 Y염색체는 덩치가 콩알만 해서 유전 정보가 텅텅 비어있고, X염색체는 거대해서 아주 중요한 유전자들이 꽉꽉 들어차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남자들의 비극이 시작된다. 남자는 X염색체를 무조건 '엄마'에게서 단 1개만 물려받는다. 만약 엄마가 준 이 X염색체에 '적록 색맹'이나 '혈우병' 같은 불량(열성) 유전자가 묻어있다면? 여자는 아빠가 준 정상 X염색체가 하나 더 있어서 불량품을 덮어(보인자) 버리지만, 남자는 백업해 줄 정상 X염색체가 없어서 곧바로 병에 걸려버린다. 아들의 색맹은 생물학적으로 100% '엄마 탓'인 셈이다.
탈모의 억울한 누명, 외할아버지의 저주
그렇다면 대한민국 남성들의 최대 공포인 '대머리(탈모)'는 누구 탓일까? 아빠가 대머리라고 해서 아들이 무조건 대머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탈모를 일으키는 가장 강력한 유전자(안드로겐 수용체 유전자) 역시 'X염색체'에 딱 붙어있다. 즉, 남자의 탈모 유전자는 친아빠가 아니라 '엄마'를 통해서 내려온다. 더 정확히 말하면 '외할아버지'가 대머리였을 경우, 그 불량 X염색체가 엄마를 거쳐(엄마는 여자라 탈모가 안 옴) 나에게 다이렉트로 꽂힐 확률이 미치도록 높다. 탈모는 친가가 아니라 외가의 두피를 유심히 살펴봐야 하는 과학적 이유다.
아빠에게서 아들로만 가는 귓속털
그렇다면 텅텅 비어있는 Y염색체는 아무것도 물려주지 않을까? Y염색체는 오직 아빠가 아들에게만 릴레이 바통처럼 물려준다(한성 유전). Y염색체에는 생명에 치명적인 유전자는 없지만, 아주 기괴한 특징 하나가 숨어있다. 바로 나이가 들면 귓바퀴에 시커먼 털이 삐죽삐죽 길게 자라나는 '귓속털 과다증'이다. 만약 아빠의 귀에 털이 무성하게 자란다면, 훗날 아들의 귀에도 똑같이 털이 자라날 확률은 100%다. 딸에게는 절대 나타나지 않는 완벽한 '아빠 탓'의 징표다.
절대적인 엄마의 유산, 미토콘드리아 DNA
우리 몸의 세포 속에는 에너지를 만드는 '미토콘드리아'라는 보일러가 들어있다. 그런데 이 보일러는 세포핵과 별개로 자기만의 독자적인 DNA를 가지고 있다. 놀랍게도 우리 몸속에 있는 미토콘드리아는 100% 전부 '엄마'의 것이다. 정자가 난자 속으로 돌진할 때, 정자의 머리(핵)만 난자 속으로 쏙 들어가고 정자의 꼬리 쪽에 붙어있던 아빠의 미토콘드리아는 난자의 입구에서 전부 잘려 나가 쓰레기통에 버려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의 근육이 에너지를 태우는 방식이나 특정 대사 질환들은 철저하게 모계(외할머니-엄마-나)로만 유전되는 절대적인 '엄마 탓'이다.
남은 과제
유전자는 도화지일 뿐, 그림을 완성하는 것은 후천적인 환경(후성유전학)이다. 부모로부터 비만이나 당뇨 유전자를 물려받았더라도, 내가 운동을 하고 식단을 조절하면 그 유전자의 스위치(메틸화)를 강제로 꺼버릴 수 있다는 것이 현대 유전학의 가장 희망적인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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