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더하기 얼음에 가시가 자란다고
냉동실에 얼려둔 얼음 틀에서 중력을 거스르고 위로 뾰족하게 솟아오르는 얼음 가시(Ice Spike) 현상의 기묘한 물리적 메커니즘을 다룬다.
편집부 · 2021년 3월 26일 · 읽는 데 4분
여름날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려고 냉동실에 얼려둔 얼음 틀을 꺼냈는데, 네모난 얼음 가운데에 마치 뿔처럼 뾰족하고 긴 '얼음 가시'가 하늘을 향해 자라나 있는 기괴한 현상을 본 적이 있는가? 누군가 고드름을 거꾸로 박아놓은 것도 아닌데, 도대체 얼음은 어떻게 중력을 거스르고 위로 솟구쳐 오르는 걸까? 귀신이 한 장난 같지만, 이 현상은 순수한 '증류수'와 물만의 독특한 물리학적 성질(얼면 부피가 늘어나는 성질)이 냉동실 안에서 절묘하게 맞아떨어질 때 발생하는 완벽한 열역학적 예술 작품이다. 집구석 냉동실에서 솟아오르는 신비한 '아이스 스파이크(Ice Spike)'의 원리를 파헤쳐 보자.
세상에서 물만 가진 기괴한 성질, 팽창
우주의 거의 모든 물질은 뜨거우면 부피가 늘어나고, 차갑게 식어서 고체(얼음)가 되면 부피가 확 쪼그라든다. 그런데 유독 '물(H2O)'이라는 녀석만은 이 우주의 룰을 위반한다. 물 분자는 온도가 내려가 0도가 되어 얼음(고체)으로 변할 때, 수소 결합이라는 특이한 힘 때문에 분자들이 벌집처럼 육각형으로 널찍널찍하게 손을 뻗어 결합한다. 빈 공간이 잔뜩 생기다 보니, 물이 얼음이 되는 순간 오히려 부피가 '10%'나 펑 하고 늘어나게 된다. 겨울철에 베란다에 내놓은 유리 물병이 터져 박살이 나는 이유가 바로 부피를 미친 듯이 팽창시키려는 얼음의 물리적인 힘(팽창 압력) 때문이다.
위에서부터 얼어붙는 지붕
냉동실에 물을 넣으면, 차가운 공기와 맞닿아 있는 물의 맨 윗부분(수면)부터 얇은 얼음 껍질(지붕)이 얼어붙기 시작한다. 윗부분이 얼어붙은 상태에서, 그 아래에 갇혀있던 액체 상태의 물들도 서서히 얼음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아까 말했듯이 물은 얼음이 되면서 부피가 10% 팽창한다. 그런데 위쪽은 이미 단단한 얼음 지붕으로 막혀 있고, 옆과 아래는 플라스틱 얼음 틀로 막혀 있다. 팽창하고 싶은 물의 엄청난 압력은 오도 가도 못하고 얼음 틀 내부를 터뜨릴 듯이 짓누르게 된다.
마지막 숨구멍으로 솟구치는 용암
이때 얼음 지붕 한가운데에 미처 다 얼지 못한 아주 작은 '바늘구멍(숨구멍)' 하나가 남아있다면 마법이 일어난다. 팽창하는 밑바닥의 압력을 견디지 못한 갇혀있던 물들이, 화산에서 용암이 뿜어져 나오듯 유일한 출구인 그 바늘구멍을 뚫고 찔끔찔끔 하늘 위로 솟구쳐 올라오기 시작한다. 위로 삐져나온 물방울은 냉동실의 영하 공기와 만나 순식간에 꽁꽁 얼어붙어 얇은 튜브(빨대) 모양의 기둥을 형성한다. 이 빨대 속으로 밑에 갇힌 물들이 압력에 밀려 계속 솟구쳐 오르면서, 얼고 솟구치고 얼고 솟구치는 과정을 수십 분 동안 반복하며 길고 뾰족한 '얼음 가시(Ice Spike)'를 위로 쭉쭉 쌓아 올리는 것이다.
수돗물에서는 안 생기는 이유
그런데 왜 집에서는 이 뿔을 보기가 힘들까? 수돗물이나 미네랄워터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미네랄(불순물) 가루들이 엄청나게 녹아있다. 이 가루들은 물이 얼 때 얼음 결정이 엉성하게 뭉치도록 방해해서, 얼음 지붕 전체를 흐물흐물하게 만들어 구멍을 사방팔방으로 뚫어버린다. 압력이 분산되니 물이 솟구치지 못하는 것이다. 완벽한 얼음 가시를 보려면 미네랄이 하나도 없는 순수한 '증류수(정수기 물)'를 얼음 틀에 넣고 냉동실에 조용히 넣어두어야만 이 극적인 화산 폭발을 관찰할 수 있다.
남은 과제
아이스 스파이크는 냉동실의 온도와 얼음 틀의 모양, 물결의 흔들림 등 조건이 아주 예민하게 맞아떨어져야만 형성된다. 특히 냉동실 팬이 돌아가며 바람(성에)을 불어대면 솟아오르던 가시가 금방 부러지거나 얼어붙어 멈춰버리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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