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플라스틱의 변신
500년 동안 썩지 않는 석유 플라스틱의 저주를 풀기 위해, 옥수수나 미생물을 이용해 흙 속에서 완벽하게 분해되는 '바이오 플라스틱'의 화학적 원리를 살펴본다.
편집부 · 2021년 8월 20일 · 읽는 데 4분
우리가 오늘 점심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무심코 버린 플라스틱 컵 하나는, 우리가 늙어 죽고 우리 손자의 손자가 죽은 뒤인 500년 후에도 땅속 어딘가에 온전한 모습으로 묻혀있을 것이다. 20세기가 만들어낸 최고의 발명품인 플라스틱은 가볍고 튼튼하다는 장점 때문에 세상을 지배했지만, '절대로 썩지 않는다'는 끔찍한 저주를 함께 가져왔다. 쓰레기 산이 하늘을 찌르고 바다에 미세 플라스틱이 눈처럼 흩날리자, 벼랑 끝에 몰린 화학자들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새로운 플라스틱을 만들기 위한 연금술을 시작했다. 옥수수를 짜내고 미생물에게 밥을 먹여 만들어낸 플라스틱, 땅에 묻으면 흔적도 없이 흙으로 돌아가는 마법의 물질인 '생분해성 바이오 플라스틱'의 화학 공장 속으로 들어가 보자.
왜 석유 플라스틱은 썩지 않는가?
플라스틱이 썩지 않는 이유를 알려면 '썩는다(분해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알아야 한다. 자연에서 사과나 나무가 썩는다는 것은 흙 속에 있는 미생물(박테리아, 곰팡이)들이 그것을 '먹어 치우고(소화시키고)' 똥(물과 이산화탄소)으로 배출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석유를 끓여서 만든 전통적인 플라스틱(PET, PP, PE)은 탄소 입자들이 미치도록 촘촘하고 단단하게 손을 맞잡고 있는(강력한 공유결합) 인공 화합물이다. 흙 속의 굶주린 미생물들이 이 플라스틱을 뜯어 먹으려고 이빨을 들이대 보지만, 화학 결합이 너무 단단해서 이빨이 다 부러져 버린다. 미생물에게 석유 플라스틱은 음식이 아니라 '씹을 수 없는 강철 덩어리'일 뿐이다.
미생물의 이빨이 들어가는 약한 고리, PLA
그렇다면 미생물이 씹어 먹을 수 있는 틈(약한 고리)을 만들어주면 어떨까? 여기서 등장한 것이 옥수수나 사탕수수에서 뽑아낸 녹말(전분)을 발효시켜 만든 'PLA(폴리락트산)' 플라스틱이다. PLA의 분자 사슬 중간중간에는 미생물들이 좋아하는 '에스테르 결합(Ester bond)'이라는 맛있는 고리가 끼어 있다. 이 PLA로 만든 컵을 땅에 묻고 온도와 습도를 적당하게 맞춰주면, 미생물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이 맛있는 약한 고리를 뚝뚝 끊어 먹기 시작한다. 분자 사슬이 뚝뚝 끊어지니 플라스틱은 바스라지며 순식간에 물과 이산화탄소로 완벽하게 분해되어 흙으로 돌아가게 된다.
박테리아의 뱃속에서 꺼낸 플라스틱, PHA
PLA보다 한 차원 더 완벽한 자연의 플라스틱도 있다. 바로 'PHA(폴리히드록시알카노에이트)'다. 사람도 밥을 많이 먹으면 남은 에너지를 뱃속에 '지방(살)'으로 쌓아두듯, 바닷속에 사는 특정 미생물들도 영양분이 풍부해지면 몸속에 하얀색 '고분자 알갱이(PHA)'를 지방처럼 축적한다. 과학자들은 이 미생물들의 배를 갈라 이 하얀 알갱이들을 꺼낸 뒤, 열을 가해 녹여서 플라스틱 빨대나 비닐봉지로 찍어낸다. 이 PHA 플라스틱은 미생물 몸속에 있던 자연 물질 그 자체이기 때문에, 바다에 버려지더라도 동네 미생물들이 "와, 밥이다!" 하고 달려들어 단 몇 달 만에 흔적도 없이 완벽하게 먹어 치워 버린다. 해양 미세 플라스틱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할 수 있는 꿈의 소재다.
비싸고 까다로운 흙의 조건
물론 마법의 바이오 플라스틱에도 치명적인 약점은 있다. PLA 컵은 차가운 아이스커피를 담을 땐 좋지만, 뜨거운 물을 부으면 순식간에 쭈그러들어 녹아버린다(열에 약함). 게다가 PLA는 아무 흙에나 대충 던져놓는다고 썩지 않는다. 섭씨 60도 이상의 뜨거운 열기와 60% 이상의 축축한 습도가 유지되는 전문 '퇴비화 공장'에 들어가야만 미생물들이 활동을 시작해 썩는다. 그냥 동네 뒷산에 버리면 일반 플라스틱처럼 몇 년 동안 썩지 않고 굴러다닌다.
남은 과제
미생물 뱃속에서 꺼내는 PHA 플라스틱은 너무 비싸서 일반 플라스틱보다 가격이 5~10배나 비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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