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는 말이 많다
침묵하는 시신에 꼬여든 파리와 구더기의 성장 속도를 역산하여 살인 사건의 정확한 사망 시간을 밝혀내는 기괴하고 완벽한 '법의곤충학'의 세계를 파헤친다.
편집부 · 2023년 8월 11일 · 읽는 데 4분
깊은 산속에서 부패가 심하게 진행된 백골 상태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살인 사건을 파헤치는 형사들에게 가장 중요한 첫 번째 미션은 단연코 '사망 시간(Post-Mortem Interval, PMI)'을 밝혀내는 것이다. 사람이 언제 죽었는지 알아야 알리바이를 맞추어 범인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법의학자들은 시신의 체온이 떨어지는 속도나 시체 굳음(사후 경직)을 보고 시간을 추정한다. 하지만 죽은 지 며칠, 혹은 몇 달이 지나 부패가 너무 심해 체온조차 남지 않은 뼈와 살점 앞에서는 첨단 법의학도 속수무책이 된다. 이때 침묵하는 시신을 대신하여 살인 사건의 시간을 완벽하게 불어버리는 소름 돋는 목격자들이 있다. 바로 시신에 들끓는 '파리와 구더기'들이다. 구역질 나는 벌레들을 현미경으로 쪼개어 살인의 진실을 재구성하는 기괴한 과학, '법의곤충학(Forensic Entomology)'의 수사 현장 속으로 들어가 보자.
가장 먼저 도착하는 목격자, 검정파리
사람이 죽어 숨이 멎고 피가 차갑게 식는 순간, 시신은 주변 환경으로 미세한 부패 가스(아미노산 분해 물질 등)를 뿜어내기 시작한다. 인간의 코로는 절대 맡을 수 없는 이 죽음의 냄새를 1km 밖에서도 귀신같이 맡고 날아오는 최초의 불청객이 있다. 바로 반짝이는 금속성 녹색 빛을 띠는 '검정파리(Blowfly)'다. 검정파리는 사람이 죽은 지 불과 10분에서 몇 시간 안에 시신의 눈, 코, 입이나 피가 흐르는 상처 부위에 정확하게 내려앉아 수백 개의 쌀알 같은 알을 낳고 도망간다. 법의학자들은 시신에서 구더기를 채집할 때, 이 파리가 '사망 직후'에 알을 낳았다는 확고한 생물학적 전제를 바탕으로 수학적 계산을 시작한다.
구더기의 길이로 달력을 거꾸로 돌리다
파리의 알은 며칠이 지나면 알에서 깨어나 구더기(유충)가 되고, 이 구더기들은 시신의 살점을 파먹으며 1령, 2령, 3령으로 번데기가 될 때까지 미친 듯이 껍질을 벗으며 덩치를 키운다. 곤충은 사람과 달리 주변 온도에 따라 자라는 속도가 수학 공식처럼 100% 일정하게 정해져 있는 '변온 동물'이다. 법의곤충학자는 핀셋으로 시신에서 가장 크고 뚱뚱한(가장 먼저 태어난) 구더기를 집어 현미경 아래에 놓고, 그 길이를 밀리미터 단위로 정확히 측정한다. 그리고 시신이 발견된 지역의 과거 일주일 치 기상청 날씨(온도) 데이터를 컴퓨터에 넣고, 이 구더기가 지금의 길이가 되려면 며칠이 걸리는지 달력을 거꾸로 돌려 역산한다. "이 12밀리미터짜리 구더기가 현재 온도에서 자라려면 정확히 7일 14시간이 필요하다!" 즉, 사망 시간은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7일 14시간 전이라는 완벽한 알리바이가 완성된다.
시신을 장악하는 곤충들의 교대식(천이)
파리와 구더기가 살점을 다 파먹고 떠나면 시신은 바싹 말라 가죽과 뼈만 남게 된다. 그러면 이때를 노리고 두 번째 손님들이 찾아온다. 바싹 마른 피부와 머리카락을 갉아 먹기 좋아하는 수시렁이나 송장벌레 같은 딱딱한 딱정벌레 떼다. 곤충들은 아무렇게나 몰려드는 것이 아니라, 시신이 썩어가는 단계(초기 부패, 팽창, 흑색 부패 등)에 따라 파리 떼 -> 딱정벌레 떼 -> 나방 떼의 순서로 아주 규칙적인 '교대식(천이, Succession)'을 갖는다. 과학자들은 시신에 파리가 없고 딱정벌레만 남아있는 것을 보고, "이 시신은 최소한 죽은 지 3개월이 넘었다"고 달(Month) 단위의 장기 사망 시간을 오차 없이 짚어낸다.
벌레가 폭로하는 범인의 거짓말
곤충은 시간뿐만 아니라 장소까지 폭로한다. 숲속에서 시신이 발견되었는데 시신에 들끓는 구더기가 숲이 아니라 '도시 하수구'에서만 사는 파리의 종류라면? 범인이 도시에서 사람을 죽여놓고 시신을 숲으로 옮겨 유기했다는 빼박 증거가 된다. 심지어 구더기를 믹서기에 갈아서 혈액 검사를 하면, 시신이 죽기 전에 마약이나 독극물을 먹었는지까지 구더기의 몸속에서 검출해 낼 수 있다. ![왼쪽에는 빛나는 곤충이 떼지어 모여 있는 더운 여름 숲속의 시신을, 오른쪽에는 곤충이 없는 겨울 눈보라 속의 얼어붙은 시신을 보여주는 분할 화면](https://image.pollin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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