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생명

전자레인지에 플라스틱을 넣으면 안 된다

플라스틱 용기를 전자레인지에 돌릴 때 쏟아져 나오는 '환경호르몬(내분비교란물질)'이 우리 몸속의 호르몬 스위치를 어떻게 고장 내는지 화학적으로 고발한다.

편집부 · 2022년 4월 14일 · 읽는 데 4분

건강 위험, 작동 중인 전자레인지 내부의 빛나는 플라스틱 용기에서 보이지 않는 독성 화학 물질(BPA)이 녹아 뜨거운 음식으로 스며드는 극적이고 미세한 시각화
건강 위험, 작동 중인 전자레인지 내부의 빛나는 플라스틱 용기에서 보이지 않는 독성 화학 물질(BPA)이 녹아 뜨거운 음식으로 스며드는 극적이고 미세한 시각화

바쁜 아침, 편의점에서 산 플라스틱 도시락을 그대로 전자레인지에 넣고 버튼을 누른다. 윙 하는 소리와 함께 음식이 따뜻하게 데워지고 우리는 맛있게 밥을 먹는다. 눈으로 보기엔 플라스틱 용기가 찌그러지지도 않았고 녹아내리지도 않았으니 완벽하게 안전해 보인다. 하지만 화학자들의 눈에는 이 흔한 일상 풍경이 끔찍한 독극물(환경호르몬)을 음식에 듬뿍 짜 넣는 무서운 독살 과정으로 비친다. 플라스틱은 단순한 딱딱한 덩어리가 아니라, 수많은 화학 물질을 본드로 얼기설기 붙여놓은 거대한 분자들의 감옥이다. 전자레인지의 뜨거운 마이크로파가 이 화학의 감옥을 때릴 때, 갇혀있던 가짜 호르몬들이 어떻게 국물 속으로 풀려나와 우리 몸을 은밀하게 망가뜨리는지 '내분비교란물질'의 소름 돋는 화학적 스파이 작전을 파헤쳐 보자.

말랑말랑한 플라스틱의 끔찍한 비밀, 가소제

플라스틱의 주재료(폴리머 사슬) 자체는 사실 독성이 없다. 문제는 플라스틱을 우리가 쓰기 편하게 가공하기 위해 들이붓는 엄청난 양의 '화학 첨가물'들이다. 딱딱하고 바스라지는 플라스틱을 고무처럼 말랑말랑하고 유연하게 만들기 위해 '가소제(프탈레이트 등)'라는 기름을 잔뜩 부어 넣고, 투명하고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비스페놀A(BPA)' 같은 접착제를 들이붓는다. 이 화학 첨가물들은 플라스틱 분자와 튼튼하게 결합(공유결합)된 것이 아니라, 그냥 분자 사슬들 틈바구니에 기름때처럼 엉성하게 스며들어(물리적 섞임) 있을 뿐이다. 그래서 용기에 흠집이 나거나 열이 가해지면, 이 첨가물들은 언제든지 플라스틱을 빠져나와 도망칠 준비가 되어 있다.

전자레인지의 열탕 속으로 쏟아지는 화학물질

이 상태에서 배달 음식 용기나 편의점 도시락(일반 플라스틱)을 전자레인지에 돌려보자. 전자레인지의 마이크로파는 음식물 속의 물 분자를 1초에 24억 번 진동시켜 엄청난 열을 만들어낸다. 뜨거운 음식물과 닿은 플라스틱 용기는 비록 녹아웃되어 찌그러지진 않더라도, 그 내부의 분자 사슬들은 열을 받아 흐물흐물하게 느슨해진다. 바로 이때, 틈바구니에 대충 갇혀있던 프탈레이트나 BPA 같은 독성 첨가물들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플라스틱 밖으로 줄줄 새어 나와, 뜨겁고 기름진 찌개 국물이나 고기반찬 속으로 완벽하게 녹아 들어간다. 눈에 보이지 않을 뿐, 당신은 방금 가소제와 비스페놀이 듬뿍 우러난 화학 국물을 마신 것이다. 왼쪽에는 세포 수용체에 완벽하게 고정되는 정상적인 인간 에스트로겐 호르몬을 보여주고, 오른쪽에는 같은 수용체를 납치하고 부수는 가짜 플라스틱 화학 물질(BPA)을 보여주는 분할 화면

우리 몸을 속이는 가짜 호르몬, 스파이의 침투

이 화학 물질들이 무서운 이유는, 우리 몸속에 들어와서 엉뚱하게도 '여성 호르몬(에스트로겐)' 행세를 하기 때문이다. 이를 '환경호르몬(내분비교란물질)'이라고 부른다. 우리 몸의 세포에는 호르몬이라는 열쇠가 딱 들어맞아야 열리는 자물쇠(수용체)가 있다. 그런데 플라스틱에서 튀어나온 BPA의 분자 모양이 기가 막히게도 인간의 에스트로겐 분자 모양과 소름 돋게 비슷하게 생겼다. 그래서 BPA가 세포의 자물쇠에 철컥 꽂히면, 세포는 가짜 열쇠인 줄도 모르고 "호르몬 명령이 떨어졌다!"라고 착각하며 몸의 스위치를 엉망진창으로 켜고 꺼버린다. 진짜 호르몬의 통신망이 완벽하게 박살(교란) 나는 것이다.

정자 수 감소와 성조숙증의 원흉

환경호르몬의 스파이 짓이 반복되면 몸의 균형이 무너진다. 남성의 몸에 가짜 여성 호르몬 신호가 폭격하면 정자의 숫자가 줄어들고 생식기 기형이 발생한다. 반대로 어린아이들에게 폭격하면 몸이 다 자라지도 않았는데 초경을 시작하는 성조숙증을 앓게 되고, 면역 체계가 무너져 극심한 아토피와 천식에 시달린다. 수십 년에 걸쳐 몸속에 쌓이며 서서히 DNA의 스위치를 망가뜨리는 침묵의 살인자인 셈이다. 생물학, 플라스틱 화학 물질이 조용히 건강한 인체의 섬세한 호르몬 균형을 방해함에 따라 거꾸로 째깍거리는 초현실적으로 빛나는 시계

남은 과제

최근 'BPA 프리(Free)'라고 광고하는 안전한 플라스틱 용기(트라이탄, PP 등)가 많아졌다. 하지만 BPA 대신 집어넣은 BPS 같은 대체 물질들 역시 열을 가하면 환경호르몬으로 작용한다는 비판적 연구가 끊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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