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질러진 기름 주워 담을 수 없으니 분해하자
바다를 덮친 최악의 원유 유출 사고를 해결하기 위해 기름을 먹고 분해하는 해양 미생물을 투입하는 생물학적 정화(Bioremediation) 기술의 원리를 다룬다.
편집부 · 2022년 7월 17일 · 읽는 데 4분
2010년, 미국 멕시코만에서 시추선 '딥워터 호라이즌'이 폭발하며 7억 7천만 리터의 시커먼 원유가 바다로 쏟아져 나왔다. 바다는 끈적한 죽음의 늪으로 변했고 펠리컨과 거북이들은 기름을 뒤집어쓴 채 질식해 죽어갔다. 인간은 흡착포를 던지고 화학 약품(유화제)을 들이부으며 사투를 벌였지만, 그 광활한 바다에 퍼진 기름을 물리적으로 걷어내는 것은 해변의 모래알을 젓가락으로 줍는 것만큼 불가능했다. 화학 약품 역시 기름을 바다 밑으로 가라앉힐 뿐 또 다른 독성을 낳는 끔찍한 부작용을 일으켰다. 절망에 빠진 인간을 구원한 것은 거대한 기계가 아니라 바닷속에 살고 있던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구원자, '기름 먹는 미생물'들이었다. 인간이 엎지른 시커먼 재앙을 자연의 청소부들이 어떻게 먹어 치워 바다를 정화하는지, '생물학적 정화(Bioremediation)'의 기적 같은 생화학 속으로 들어가 보자.
원유는 지구의 천연 도시락
우리는 원유(석유)를 독극물로 생각하지만, 사실 원유는 지구 깊은 곳에서 죽은 플랑크톤이나 고대 생물들의 사체가 수천만 년 동안 썩어서 압축된 100% 천연 '유기물 덩어리'다. 수억 년 동안 바다 밑바닥 틈새에서는 아주 미세하게 원유가 조금씩 새어 나오고 있었고, 바닷속 미생물들은 이 새어 나오는 원유(탄화수소)를 맛있는 도시락으로 삼아 먹고 자라도록 완벽하게 진화해 왔다. 그중 대표적인 녀석이 바로 '알카니보락스 보르쿠멘시스(Alcanivorax borkumensis)'라는 박테리아다. 평소 바닷속에 쥐죽은 듯 극소수만 숨어 살던 이 녀석들은, 바다에 대규모 기름 유출 사고가 터져 시커먼 원유가 밀려오면 거대한 뷔페가 열린 듯 미친 듯이 번식하며 전체 미생물의 90%를 차지하는 엄청난 군단으로 팽창한다.
효소 가위로 탄소 사슬을 박살 내다
기름을 먹는 미생물의 무기는 몸속에서 뿜어내는 '효소(Enzyme)'다. 원유는 탄소와 수소가 길고 튼튼하게 엮인 복잡한 탄화수소 사슬(고분자)이다. 알카니보락스 박테리아는 기름 덩어리에 달라붙어 끈적끈적한 생물 계면활성제를 뿜어내어 거대한 기름막을 먹기 좋은 작은 물방울 크기로 쪼개어 버린다. 그리고 산소를 빨아들인 뒤 체내의 '산화 효소'를 이용해 길고 질긴 기름의 탄소 사슬을 싹둑싹둑 잘라버린다. 질긴 원유 덩어리를 잘게 부수어 자신의 뱃속(세포)으로 집어넣고 영양분으로 삼아 소화시킨 뒤, 최종적으로는 완벽하게 무해한 '이산화탄소(CO2)'와 '물(H2O)'로 방귀를 뀌듯 바다에 배출해 버린다. 시커먼 유독성 기름이 미생물의 배를 거쳐 완벽하게 깨끗한 물로 리사이클링되는 자연의 마법이다.
비료를 뿌려 미생물의 진격을 돕다
하지만 멕시코만 사고처럼 한꺼번에 너무 많은 기름이 터져 나오면, 미생물들이 아무리 먹어 치워도 속도를 낼 수가 없다. 기름(탄소)이라는 반찬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 이 밥을 씹어 넘기기 위해 꼭 필요한 필수 영양소인 질소와 인(비타민 같은 역할)이 바닷물 속에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인간의 과학이 미생물을 돕기 위해 개입한다. 과학자들은 헬기와 배를 동원해 기름으로 뒤덮인 바다 위에 엄청난 양의 질소와 인 성분의 '인공 비료(영양염류)'를 뿌렸다. 비료를 맞은 기름 먹는 미생물들은 헐크처럼 각성하여 증식 속도가 수백 배로 폭발했고, 수십 년이 걸려도 분해되지 않을 뻔했던 해수면의 원유를 불과 몇 달 만에 흔적도 없이 먹어 치우는 경이로운 대식가의 위력을 보여주었다(생물 자극법, Biostimulation).
슈퍼 버그의 탄생, 실험실의 돌연변이
현대의 유전공학자들은 자연의 미생물에 만족하지 않고 실험실에서 더 끔찍한 먹성을 가진 괴물 미생물(슈퍼 버그)을 조작하고 있다. 여러 미생물이 가진 강력한 기름 분해 유전자(플라스미드) 네 개를 하나의 박테리아 몸속에 강제로 이식하여, 일반 박테리아보다 기름을 분해하는 속도가 수십 배 빠르고 독성 중금속까지 함께 씹어 먹는 합성 미생물을 창조한 것이다. 이 슈퍼 미생물들을 동결 건조하여 가루(파우더)로 만들어 두었다가, 유조선 사고가 터지면 바다에 밀가루를 흩뿌리듯 쏟아부어 순식간에 기름을 지워버리는 첨단 생태 방제 기술이 상용화 단계에 이르렀다. ![생명 공학, 실험실의 과학자가 유성 흑수의 비커에 과충전된 박테리아 한 병을 떨어뜨리자 즉시 투명해지기 시작합니다](https://image.pollin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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