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이 휘어진다고
단단하고 부서지기 쉬운 얼음이 머리카락보다 얇아질 때 유리섬유처럼 완벽하게 휘어지는 '마이크로 탄성 얼음'의 결정학적 원리와 광학적 활용을 탐구한다.
편집부 · 2022년 2월 24일 · 읽는 데 4분
냉동실에서 꺼낸 얼음을 양손으로 잡고 구부리면 어떻게 될까? 힘을 주자마자 '우지직' 소리를 내며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 우리 상식 속에 얼음은 세상에서 가장 딱딱하고 부서지기 쉬운(취성) 물질의 대명사다. 유리나 도자기처럼 굽히는 힘에 전혀 저항하지 못하고 깨져버리는 것이 얼음의 완벽한 물리적 숙명이다. 그런데 2021년, 중국의 과학자들이 이 견고한 상식을 박살 내는 충격적인 영상을 발표했다. 영상 속의 얼음은 마치 머리카락이나 얇은 플라스틱 실처럼 둥글게 원형으로 구부러지고, 심지어 매듭을 묶어도 깨지거나 부러지지 않는 기괴한 '탄성(Elasticity)'을 띠고 있었다. 영하 50도에서 휘어지는 마법의 얼음줄기는 조작된 CG가 아니라 극한의 미시 세계에서 벌어지는 결정학(Crystallography)의 기적이었다. 딱딱한 얼음을 고무줄처럼 휘어지게 만든 마이크로 얼음의 놀라운 물리학 속으로 들어가 보자.
얼음이 깨지는 진짜 이유, 결정의 결함
왜 큰 얼음은 구부러지지 않고 깨질까? 물(H2O) 분자가 얼어붙으면 분자들이 육각형 모양으로 촘촘하게 손을 맞잡고 아름다운 '얼음 결정' 구조를 만든다. 완벽하게 얼어붙은 얼음은 분자와 분자 사이의 결합(수소 결합)이 팽팽한 스프링처럼 연결되어 있어서, 구부리면 원래대로 돌아가려는 탄성(용수철)을 가져야 정상이다. 그런데 우리가 일상에서 얼리는 얼음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얼음이 어는 과정에서 물속에 녹아있던 공기 방울이 갇히거나, 물 분자들이 제자리를 찾지 못해 육각형 구조가 살짝 어긋나는 '미세한 틈(구조적 결함, Defect)'이 수만 개씩 생겨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얼음에 힘을 주면, 이 미세한 틈과 균열(크랙)들로 힘이 확 쏠리면서 순식간에 도미노처럼 와장창 부서져 내리고 만다. 결국 얼음이 깨지는 것은 얼음 자체가 약해서가 아니라, 얼음 속에 숨어있는 불순물과 흠집 때문이었다.
완벽한 결정을 기르다, 마이크로 얼음 관
과학자들은 아이디어를 냈다. "만약 불순물과 미세 균열이 단 하나도 없는, 분자들이 100% 완벽하게 육각형으로 정렬된 얼음을 만든다면 어떻게 될까?" 그들은 영하 50도의 극저온 실험실에서 텅스텐 바늘에 강력한 전기장(수천 볼트)을 걸어놓고, 공기 중의 수증기를 아주 미세하게 바늘 끝에 끌어당겼다. 수증기 분자들은 전기력에 이끌려 아주 천천히, 마치 테트리스 블록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춰지듯 바늘 끝에 차곡차곡 쌓여 얼어붙었다. 그 결과 인간의 머리카락 두께보다 10배나 더 얇은(수 마이크로미터), 세상에서 가장 순수하고 투명한 '마이크로 얼음 실(Ice microfiber)'이 자라났다. 이 얼음 실 내부에는 균열이나 빈 공간이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 완벽한 단일 결정(Single crystal) 구조가 완성되었다.
최대 11%의 탄성, 얼음이 활처럼 휘다
연구진이 이 미세한 얼음 실의 양 끝을 잡고 구부리자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얼음이 깨지지 않고 둥근 활(아치)처럼 완벽하게 휘어진 것이다! 내부에 흠집이 없기 때문에, 힘을 주어도 균열이 퍼져나갈 틈이 없었다. 물 분자들의 강력한 수소 결합은 끊어지지 않은 채 고무줄처럼 길게 늘어나 버텼고, 힘을 풀면 용수철처럼 '띠용' 하고 다시 원래의 꼿꼿한 일자 모양으로 되돌아갔다(탄성 회복). 일반적인 얼음은 0.1%만 휘어져도 바스라지지만, 이 완벽한 마이크로 얼음은 자그마치 10.9%라는 엄청난 휨(변형률)을 견뎌내며 사실상 유리섬유나 첨단 플라스틱보다 더 유연한 슈퍼 소재의 능력을 뽐냈다.
자연이 만든 가장 깨끗한 광섬유
휘어지는 얼음은 단순히 신기한 마술로 끝나지 않는다. 이 얼음 실은 완벽하게 투명하고 표면이 극도로 매끄러워서 빛을 통과시키면 밖으로 빛이 새어 나가지 않고 끝까지 도달한다. 즉, 첨단 통신 장비에 쓰이는 값비싼 '유리 광섬유'를 얼음이 완벽하게 대체할 수 있다는 뜻이다. 과학자들은 이 유연한 얼음 광섬유를 극저온 센서나 화학 물질을 감지하는 오염 탐지기에 묶어서 활용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다 쓰고 나면 툭 부러뜨려 녹여버리면 그만인, 세상에서 가장 친환경적이고 깨끗한 자연의 광섬유가 탄생한 것이다. ![과학자가 극한의 탄성을 보여주기 위해 작고 빛나는 미세한 얼음 실에 매듭을 묶기 위해 아주 작은 매니퓰레이터를 사용하는 모습](https://image.pollin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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