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지구과학

얽힌 입자로는 왜 빛보다 빠른 통신을 할 수 없나

얽힌 두 입자는 아무리 멀리 떨어져도 측정 결과가 맞아떨어진다. 그런데도 이것으로 메시지를 순식간에 보낼 수 없는 이유는 결과가 무작위라는 데 있다.

Antigravity AI · 2023년 1월 20일 · 읽는 데 4분

어두운 공간을 사이에 두고 희미한 선으로 이어진 빛나는 두 입자
어두운 공간을 사이에 두고 희미한 선으로 이어진 빛나는 두 입자

양자 얽힘은 두 입자의 상태가 하나로 묶여 있어서, 한쪽을 측정하면 멀리 떨어진 다른 쪽의 측정 결과가 곧바로 정해지는 현상이다. 이 때문에 얽힘을 이용하면 빛보다 빠르게 정보를 보낼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는 없다. 각자가 얻는 측정 결과가 완전히 무작위여서, 누구도 상대에게 원하는 내용을 실어 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원리를 신호 불가 정리라고 부른다.

측정 결과가 맞아떨어진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얽힌 전자 두 개를 만들어 하나는 서울에, 하나는 부산에 두었다고 하자. 두 전자는 회전 방향, 곧 스핀이 늘 반대가 되도록 얽혀 있다. 서울에서 스핀을 측정해 '위'가 나오면, 부산의 전자는 측정하는 순간 반드시 '아래'가 나온다. 거리가 우주 끝만큼 멀어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다. 서울에서 측정하기 전에는 '위'가 나올지 '아래'가 나올지 아무도 모른다. 결과는 반반의 확률로 정해진다. 서울의 실험자는 결과를 고를 수 없고, 그저 나온 결과를 받아 적을 뿐이다. 부산의 실험자도 마찬가지로 반반의 결과를 얻는다.

멀리 떨어진 두 실험실에서 동시에 측정 장치를 들여다보는 장면

왜 그 상관관계로 메시지를 보낼 수 없나

메시지를 보내려면 보내는 쪽이 무언가를 '선택'해야 한다. 예를 들어 '위'는 예, '아래'는 아니오로 정하고 싶다. 그런데 서울의 실험자는 측정 결과를 고를 수 없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결과는 무작위로 나온다. 그러니 서울에서 어떤 결과를 받든, 그것은 서울 실험자의 뜻이 아니다.

부산 쪽에서 보면 더 분명하다. 부산의 실험자가 받아 적는 결과는 서울에서 측정을 했든 안 했든, 어떤 방향으로 측정했든 똑같이 반반의 무작위 수열로 보인다. 부산의 기록만 들여다봐서는 서울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방법이 없다. 상관관계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것이 드러나는 것은 두 사람이 나중에 서로의 기록을 비교할 때뿐이다.

그리고 기록을 비교하려면 전화나 인터넷 같은 평범한 통신이 필요하다. 이 통신은 빛보다 빠를 수 없다. 결국 얽힘이 만드는 상관관계는 빛의 속도라는 제한을 뚫지 못한다.

상황 서울이 아는 것 부산이 아는 것
측정 직후 자기 결과(무작위) 자기 결과(무작위)
기록을 비교하기 전 부산의 결과를 짐작 가능 서울에서 무엇을 했는지 모름
기록을 비교한 뒤 상관관계 확인 상관관계 확인

양자 순간이동은 왜 순간이 아닌가

양자 순간이동이라는 이름은 오해를 부르기 쉽다. 이것은 얽힘을 이용해 한 입자의 양자 상태를 멀리 있는 다른 입자로 옮기는 기술이다. 물질이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상태라는 정보가 옮겨 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도 평범한 통신이 꼭 필요하다. 보내는 쪽이 측정한 결과를 받는 쪽에 알려 주어야, 받는 쪽이 자기 입자를 알맞게 조정해 원래 상태를 되살릴 수 있다. 측정 결과를 알기 전까지 받는 쪽의 입자는 무작위 상태처럼 보일 뿐이다. 그래서 양자 순간이동도 빛보다 빠르게 정보를 옮기지 못한다.

광섬유 케이블 끝에서 빛이 나오는 장면

그렇다면 얽힘은 어디에 쓰이나

빛보다 빠른 통신은 안 되지만, 얽힘은 다른 쓸모가 크다. 대표적인 것이 양자 암호 통신이다. 얽힌 입자 쌍을 나눠 가진 두 사람은 측정 결과로 똑같은 무작위 열쇠를 얻을 수 있다. 누군가 중간에서 엿보려고 입자를 건드리면 얽힘이 흐트러지고, 두 사람은 기록을 비교하는 과정에서 도청 사실을 알아챌 수 있다. 무작위성이라는 약점이 보안에서는 장점이 되는 셈이다. 양자 컴퓨터에서도 얽힘은 계산 능력의 핵심 재료로 쓰인다.

아직 남은 질문

얽힘이 빛보다 빠른 통신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점은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이 충돌하지 않는다는 안심을 준다. 그러나 측정하는 순간 멀리 떨어진 입자의 결과가 어떻게 '정해지는지'에 대한 설명은 여전히 해석에 따라 갈린다. 실제로 무언가가 전달되는 것인지, 처음부터 그렇게 정해진 관계를 우리가 확인할 뿐인지에 대해 물리학자들 사이에서도 합의된 그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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