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균이 물을 깨끗하게 만들어준다고
인류가 버린 엄청난 오폐수를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들이 화학적으로 분해하고 정화하는 하수 처리장의 생물학적 메커니즘을 살펴본다.
편집부 · 2021년 12월 8일 · 읽는 데 4분
우리가 매일 아침 샤워를 하고, 화장실에서 변기 물을 내리고, 싱크대에서 기름 묻은 프라이팬을 닦아낼 때마다 쏟아져 나오는 엄청난 양의 더러운 하수는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 전국의 수백만 가구에서 쏟아내는 그 끔찍한 오폐수를 만약 기계로 끓이고 화학 약품을 타서 억지로 깨끗하게 만들려고 한다면, 아마 지구상의 모든 전기를 다 끌어써도 모자랄 것이다. 인류가 물의 재앙에 빠지지 않고 매일 쾌적한 도시 생활을 누릴 수 있는 이유는, 하수 처리장 지하의 거대한 콘크리트 수조 속에서 수조 마리의 보이지 않는 작은 영웅들이 매일 엄청난 먹방을 찍으며 유기물을 먹어 치워주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미생물(세균)'들이다. 세균이라면 병을 옮기는 끔찍한 존재로만 생각하기 쉽지만, 이들은 지저분한 배설물과 음식물 찌꺼기를 가장 완벽하고 친환경적으로 분해하는 지구상 최고의 '생화학 분해 공장'이다. 하수 처리장에서 벌어지는 미생물들의 위대한 식사 시간과 똥물이 1급수로 변신하는 생물학적 마법의 과정을 들여다보자.
미생물의 뷔페식당, 폭기조
우리가 버린 하수가 하수 처리장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거대한 쇠창살(스크린)을 통과하며 물티슈나 덩어리진 쓰레기, 흙모래가 걸러진다. 하지만 진짜 골칫거리는 물속에 눈에 보이지 않게 녹아있는 엄청난 양의 유기물(배설물, 단백질, 지방)이다. 이 더러운 물은 하수 처리의 심장부인 거대한 풀장, '폭기조(Aeration tank)'로 들어간다. 이 수조 안에는 똥물을 주식으로 삼는 수백 종의 미생물(박테리아, 원생동물)들이 득실득실 살고 있다. 이 미생물 무리를 뭉뚱그려 '활성 슬러지(Active Sludge)'라고 부른다. 미생물들이 유기물을 미친 듯이 갉아먹게 하려면 필수 조건이 하나 있다. 바로 '산소'다. 수조 바닥에 설치된 거대한 파이프에서 공기 펌프를 쌩쌩 돌려 엄청난 양의 공기 방울을 뽀글뽀글 뿜어 올려주면, 미생물들은 산소를 들이마시며(호기성 미생물) 에너지 효율을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이들은 물속에 녹아있는 더러운 오염 물질들을 모조리 잡아먹어 물과 이산화탄소로 분해해 버린다. 오폐수가 미생물들의 뷔페식당인 셈이다.
더러운 것을 뭉쳐서 가라앉히다, 응집 현상
배불리 먹방을 마친 미생물들은 유기물을 먹어 치운 만큼 자신의 몸집을 불리고 세포 분열을 하여 엄청나게 숫자가 늘어난다. 그런데 이 미생물들은 아주 기특한 화학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끈적끈적한 점액질 물질(EPS)을 분비하여 자기들끼리 엉겨 붙어 커다란 솜뭉치(플록, Floc)를 만드는 것이다. 물속에 떠다니던 눈에 안 보이는 미생물과 미세한 오염 찌꺼기들이 자기들끼리 뭉쳐서 제법 무거운 진흙 덩어리가 된다. 폭기조에서 이 덩어리들이 둥둥 떠 있는 물을 옆에 있는 '침전조'로 넘긴 뒤 조용히 놔두면, 무거운 미생물 덩어리들(슬러지)은 중력에 의해 수조 바닥으로 까맣게 가라앉고, 위쪽에는 놀랍도록 투명하고 맑은 물만 찰랑거리게 된다. 미생물이 더러운 오염 물질을 자기 몸으로 빨아들인 뒤 바닥으로 자폭하며 가라앉아 물과 오염물을 완벽하게 분리해 내는 자연의 필터링이다.
질소와 인의 조용한 암살자들
유기물 찌꺼기는 산소로 해결했지만, 샴푸나 세제, 오줌 속에 듬뿍 들어있는 '질소(N)'와 '인(P)'은 다른 방법으로 처리해야 한다. 이 성분들이 그대로 강으로 흘러 들어가면, 강물에 영양분이 너무 많아져(부영양화) 녹조라떼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이를 잡기 위해 과학자들은 미생물의 호흡 방식을 교묘하게 훈련시킨다. 산소가 듬뿍 있는 수조(호기조)와 산소를 콱 막아버린 수조(무산소조/혐기조)를 번갈아 통과시키는 것이다. 무산소조에 들어간 미생물(탈질 세균)들은 숨을 쉴 산소가 없자, 살기 위해 오염 물질인 질산(NO3) 덩어리에서 억지로 산소(O)를 뜯어먹고 숨을 쉰다. 그 결과 독성 질소 화합물은 무해한 질소 가스(N2)가 되어 공기 중으로 날아가 버린다. 똥물을 맑게 하는 것을 넘어 눈에 보이지 않는 화학 원소까지 미생물의 숨통을 조였다 풀었다 하며 조종하는 정밀한 생화학 공학의 정수다.
쓰레기에서 에너지를 캐다, 바이오가스
침전조 바닥에 듬뿍 가라앉은 까만 미생물 시체와 진흙 덩어리(슬러지)들은 그냥 버려지는 것이 아니다. 이 찌꺼기들을 공기가 완벽하게 차단된 거대한 소화조 보일러에 집어넣는다. 이곳에는 산소를 극도로 싫어하는 혐기성 미생물(메탄 생성균)들이 살고 있다. 이 녀석들이 뜨뜻한 환경에서 슬러지 찌꺼기를 천천히 부패시키면(소화), 여기서 엄청난 양의 메탄(CH4) 가스가 뿜어져 나온다. 바로 도시가스와 똑같은 '바이오가스(Biogas)'다. 최첨단 하수 처리장들은 똥물에서 뽑아낸 이 바이오가스를 태워 전기를 생산하고, 그 전기로 하수 처리장 기계들을 돌리는 완벽한 '에너지 자립' 기적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쓰레기가 지구를 살리는 황금 연료로 변신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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