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의 족보 햅맵 프로젝트 이브를 논하다
전 세계 인류의 유전적 차이를 지도화한 햅맵 프로젝트와 미토콘드리아 DNA를 통해 인류의 어머니 '미토콘드리아 이브'를 추적하는 진화생물학의 성과를 살펴본다.
편집부 · 2022년 4월 23일 · 읽는 데 4분
지하철에 앉아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자. 피부색도, 머리카락 모양도, 코의 높이도 모두 제각각이다. 우리는 서로 너무나 달라서 가끔은 인종의 벽을 세우고 차별과 혐오를 쏟아내기도 한다. 하지만 누군가 우리의 피를 뽑아 DNA를 해독해 본다면 끔찍할 정도로 충격적인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당신 옆에 앉은 낯선 사람과 당신의 유전자 서열은 무려 99.9%가 완벽하게 똑같기 때문이다. 흑인이든 백인이든 아시아인이든, 전 세계 80억 인류를 다르게 만드는 유전적 차이는 고작 0.1%의 미세한 오타(변이)에 불과하다. 생물학자들은 이 0.1%의 차이가 어떻게 질병의 감수성을 결정하고 민족의 특성을 만들어냈는지 파헤치기 위해, 전 세계 인구의 유전자 변이 지도를 그리는 '국제 햅맵 프로젝트(HapMap Project)'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 미세한 유전자의 꼬리표를 시간을 거슬러 추적해 올라간 끝에, 마침내 아프리카 초원에 살았던 단 한 명의 공통 여성 조상, '미토콘드리아 이브(Mitochondrial Eve)'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0.1%의 DNA가 들려주는 인류의 장대한 이동 역사와 생물학적 족보를 펼쳐보자.
0.1%의 마법, 단일염기다형성(SNP)
인간의 DNA는 30억 개의 염기(A, C, G, T)로 이루어져 있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인류의 '표준 지도'를 완성했다면, 햅맵(HapMap) 프로젝트는 그 표준 지도에서 사람마다 미세하게 글자가 틀린 '오타의 위치'를 찾아내는 작업이다. 이 오타를 전문 용어로 '단일염기다형성(SNP, 스닙)'이라고 부른다. 30억 개의 글자 중 대략 1,000자마다 하나꼴로, 나는 A를 가지고 있는데 흑인 친구는 G를 가지고 있는 식이다. 과학자들은 흩어진 이 스닙들이 완전히 무작위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몇 개의 스닙들이 덩어리(일배체형, Haplotype)를 이루어 부모로부터 통째로 유전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햅맵 프로젝트는 전 세계 다양한 인종의 혈액을 채취해 이 덩어리 패턴들을 완벽한 지도로 엮어냈다. 이 지도가 완성되면서 의학은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 특정 스닙 패턴을 가진 사람(예: 한국인 특정 유전자군)이 당뇨병이나 특정 암에 훨씬 취약하다는 것을 통계적으로 찾아내어, 맞춤형 신약 개발과 질병 예측의 강력한 무기를 얻게 된 것이다.
Y 염색체와 미토콘드리아의 비밀
햅맵 프로젝트가 현대인의 질병을 연구한다면, 진화생물학자들은 이 유전적 변이를 거꾸로 추적해 인류의 기원을 찾는 '분자 인류학'에 몰두했다. 우리가 물려받은 DNA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유전자가 절반씩 뒤섞이기 때문에 수백 세대 전의 조상을 추적하기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예외가 딱 두 개 있다. 아버지가 오직 아들에게만 물려주는 'Y 염색체'와, 오직 어머니가 모든 자녀에게 물려주는 '미토콘드리아 DNA(mtDNA)'다. 특히 세포의 발전소인 미토콘드리아 안에는 아주 작고 독립적인 DNA가 들어 있는데, 정자의 미토콘드리아는 수정될 때 꼬리와 함께 떨어져 나가기 때문에 우리는 100% 어머니의 미토콘드리아 DNA만을 물려받는다. 이 미토콘드리아 DNA도 아주 오랜 시간(수천 년)이 지나면 우연히 미세한 돌연변이(오타)가 쌓이게 된다. 학자들은 전 세계 여성들의 미토콘드리아 DNA 오타율(분자 시계)을 거꾸로 역산하며 인류의 거대한 가계도를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아프리카의 어머니, 미토콘드리아 이브
1987년, 레베카 칸과 앨런 윌슨 연구팀은 전 세계 대륙에서 온 사람들의 미토콘드리아 DNA를 분석하여 충격적인 논문을 네이처에 발표했다. 가계도를 거슬러 올라가 보니 모든 가지가 결국 단 하나의 뿌리로 합쳐졌고, 그 기원은 약 15만 년 전~20만 년 전 '아프리카'에 살았던 단 한 명의 여성이라는 결론이 나온 것이다. 언론은 그녀를 성경의 이름을 따 '미토콘드리아 이브'라고 불렀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당시에 이브 혼자만 살았다는 뜻이 아니다. 수많은 여성이 있었지만, 다른 여성들의 후손은 딸을 낳지 못해 미토콘드리아 대가 끊어졌고, 오직 이브의 후손만이 살아남아 현생 인류(호모 사피엔스)의 모든 어머니가 되었다는 통계적 수렴의 결과다. 남성의 Y 염색체를 추적한 결과 역시 마찬가지로 약 10만 년 전 아프리카에 살았던 'Y 염색체 아담'으로 수렴되었다. 이는 전 세계 인류가 각자 다른 지역의 원인(베이징 원인 등)에서 따로따로 진화했다는 '다지역 기원설'을 완전히 박살 내고, 우리 모두가 아프리카에서 출발한 한 핏줄이라는 '아프리카 기원설(Out of Africa)'을 과학적으로 확정 짓는 결정적 증거가 되었다.
네안데르탈인과의 은밀한 교잡
유전자 족보 추적은 더 충격적인 인류의 불륜 스토리를 폭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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