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생명

생물뉴스 염기서열 확장판 하치모지 hachimoji

자연계의 4개 염기를 넘어 8개의 염기로 구성된 합성 DNA '하치모지'의 개발이 가져온 생물학적 혁명과 외계 생명체 탐사의 새로운 기준을 조명한다.

편집부 · 2025년 12월 7일 · 읽는 데 4분

합성 생물학 개념, 4개가 아닌 8개의 뚜렷하게 다른 빛나는 염기쌍을 가진 빛나는 3D DNA 이중 나선
합성 생물학 개념, 4개가 아닌 8개의 뚜렷하게 다른 빛나는 염기쌍을 가진 빛나는 3D DNA 이중 나선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박테리아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단 하나의 공통된 언어를 사용한다. 바로 DNA다. 그리고 이 DNA라는 거대한 책은 아데닌(A), 구아닌(G), 시토신(C), 티민(T)이라는 오직 4개의 알파벳(염기)으로만 쓰여 있다. 수십억 년의 진화 역사 속에서 자연은 이 4개의 글자만을 고집하며 생명의 모든 다양성을 빚어냈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오랫동안 불경한 의문을 품어왔다. "왜 하필 4개일까? 생명을 구성하는 알파벳을 우리가 인공적으로 더 만들어 넣으면 어떻게 될까?" 2019년, 미국 응용분자진화재단의 스티븐 베너 박사 연구팀은 이 금기에 도전하여 마침내 4개의 자연 염기에 4개의 인공 염기(Z, P, S, B)를 추가한, 무려 8개의 알파벳으로 이루어진 합성 DNA를 창조해 내는 데 성공했다. 일본어로 숫자 8을 뜻하는 '하치(Hachi)'와 문자를 뜻하는 '모지(Moji)'를 합쳐 '하치모지(Hachimoji) DNA'라 명명된 이 기괴하고도 경이로운 분자는 생명의 정의를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다. 신의 언어를 확장한 합성 생물학의 쾌거와 이것이 열어젖힌 미래를 파헤쳐 보자.

자연의 4글자를 넘어선 화학의 기적

DNA 이중나선 구조의 가장 아름다운 특징은 염기들이 서로 완벽한 짝을 이룬다는 것이다. A는 무조건 T와, G는 무조건 C와 수소 결합을 맺으며 두 가닥의 밧줄을 튼튼하게 연결한다. 연구팀은 이 자연의 규칙을 흉내 내어, 새로운 4개의 화학 물질을 합성해 냈다. Z와 P가 짝을 이루고, S와 B가 짝을 이루도록 정교하게 화학적 구조(수소 결합의 각도와 거리)를 깎고 다듬은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실험실에서 글자를 만들어냈다고 끝이 아니다. 진짜 생명의 설계도로 작동하려면, 기존의 DNA처럼 나선 모양으로 꼬였을 때 구조가 무너지지 않아야 하고, 무엇보다 이 설계도를 읽어서 단백질(RNA)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놀랍게도 하치모지 DNA는 이 모든 테스트를 완벽하게 통과했다. 8개의 글자가 섞여 있는 이중나선은 자연의 DNA처럼 안정적인 형태를 유지했고, 돌연변이 효소(T7 RNA 중합효소)를 사용하자 이 8글자의 암호를 읽어내어 완벽하게 작동하는 하치모지 RNA를 성공적으로 찍어냈다. 생명의 문법이 인간에 의해 완전히 새롭게 쓰인 것이다.

단백질 설계의 무한한 가능성

알파벳이 4개에서 8개로 늘어나면 도대체 무엇이 좋아지는 것일까? 자연 상태의 4가지 염기는 3개씩 짝을 지어(코돈) 딱 20가지의 아미노산(단백질의 재료)만을 지정할 수 있다. 하지만 8가지의 염기를 조합하면 수학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아미노산의 종류가 기하급수적으로 폭발하게 된다. 즉, 자연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전혀 새로운 형태와 기능을 가진 '슈퍼 단백질'을 우리가 마음대로 설계하고 생산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를 이용하면 암세포만 귀신같이 찾아내어 파괴하는 부작용 없는 표적 항암제, 플라스틱을 순식간에 분해해 버리는 초강력 친환경 효소, 혹은 어떤 바이러스에도 감염되지 않는 무적의 백신을 만들어낼 수 있다. 하치모지 DNA는 인간이 자연이 준 재료로 요리하는 것을 넘어, 아예 새로운 식재료 자체를 창조해 낸 생화학적 연금술이다. 합성 하치모지 DNA를 나타내는, 외계인처럼 빛나는 액체가 들어 있는 시험관을 보는 과학자

외계 생명체를 찾는 새로운 기준

하치모지 DNA의 성공은 의학을 넘어 우주를 향한 천문학자들의 시선까지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그동안 NASA를 비롯한 우주 생물학자들은 화성이나 유로파(목성의 위성)에서 외계 생명체를 찾을 때, 당연히 지구처럼 A, T, G, C 4개의 염기를 가진 생명체일 것이라 가정하고 탐사 장비를 세팅했다. 하지만 지구의 4글자 DNA는 생명의 필수 조건이 아니라, 단지 수많은 우연 중 지구 환경에 맞게 진화한 '하나의 옵션'일 뿐이라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어쩌면 외계 생명체는 하치모지처럼 8개, 혹은 12개의 염기로 이루어진 전혀 다른 유전 암호를 사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NASA가 하치모지 프로젝트를 전폭적으로 지원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우리가 외계 생명체의 징후를 놓치지 않으려면 생명의 기준을 훨씬 더 넓고 유연하게 확장해야만 한다.

합성 생명의 탄생과 생물 보안의 위협

물론 이 경이로운 기술 뒤에는 섬뜩한 그림자도 존재한다. 하치모지 DNA를 가진 인공 미생물이 만약 실험실 밖으로 빠져나가 자연계로 유출된다면 어떻게 될까? 자연 생태계에는 이 8글자의 암호를 해독하거나 파괴할 수 있는 천적이나 방어 시스템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이 인공 박테리아가 치명적인 독성을 품고 돌연변이를 일으킨다면 인류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끔찍한 생물학적 재앙(바이오 테러)이 될 수 있다. 다행히 현재 하치모지 DNA는 실험실에서 연구자들이 인공적으로 합성한 4개의 특수 염기를 계속 먹여주지 않으면 스스로 증식할 수 없도록 '안전 스위치'가 걸려 있다. 실험실 밖을 나가는 순간 영양분이 없어 굶어 죽도록 설계된 것이다.

이어서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