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어린이날 헬륨 풍선 모두 어디로 갔을까
어린이날 놓친 헬륨 풍선이 우주로 탈출하는 대기 역학적 원리와, 지구상에서 고갈되어 가는 헬륨 가스의 뼈아픈 자원 위기를 경고한다.
편집부 · 2022년 5월 5일 · 읽는 데 4분
어린이날 놀이공원에서 부모님 졸라 산 은박 헬륨 풍선. 아이가 실수로 손잡이 끈을 놓치는 순간, 풍선은 까마득히 높은 하늘 위로 둥둥 떠올라 순식간에 점이 되어 사라져 버린다. 울음을 터뜨린 아이에게 부모는 "풍선이 구름 위로 놀러 갔어"라고 달래지만, 물리학자의 눈으로 볼 때 이 풍선의 운명은 구름 위가 아니라 '우주 끝까지 쫓겨나는' 비극적인 결말을 향해 달려간다. 풍선 속에 가득 찬 '헬륨(Helium)' 가스는 우리가 아는 평범한 기체가 아니다. 지구의 강력한 중력조차 붙잡아 두지 못할 정도로 깃털처럼 가볍고 차가운, 우주에서 날아온 이방인이다. 놀이공원의 웃음소리를 만드는 데 쓰이던 헬륨 가스가 지금 전 세계 첨단 산업 현장과 병원에서 심각한 품귀 현상을 빚으며 금값보다 비싸게 거래되고 있다. 우리가 흔하게 낭비했던 헬륨이 왜 지구에서 씨가 말라가고 있는지, 그리고 놓쳐버린 풍선 속의 헬륨 가스 분자는 도대체 어디로 날아가 버리는 것인지 대기 역학의 눈으로 쫓아가 보자.
지구의 중력을 뚫고 나가는 분자들
풍선을 하늘 높이 띄우는 원리는 물 위에 스티로폼이 뜨는 것과 같은 '부력(Buoyancy)'이다. 헬륨은 수소 다음으로 가벼운 원소로, 공기(질소와 산소의 혼합물)보다 훨씬 밀도가 낮다. 그래서 헬륨 풍선은 주변의 무거운 공기들을 밀어내며 위로 치솟는다. 풍선이 하늘로 올라갈수록 기압이 낮아지기 때문에, 풍선은 견디지 못하고 터져버리거나 고무 틈새로 헬륨 가스 분자들이 모두 빠져나가게 된다. 뿔뿔이 흩어진 헬륨 분자들은 그때부터 본격적인 탈출 비행을 시작한다. 기체의 온도는 분자들이 얼마나 활발하게 움직이는지(속도)를 나타내는데, 헬륨 분자는 워낙 가볍기 때문에 같은 온도에서도 산소 분자보다 훨씬 더 미친 듯이 빠른 속도로 날아다닌다. 고도 수백 km의 열권 상층부(외기권)에 도달하면, 태양의 뜨거운 열기를 받은 헬륨 분자들의 속도는 초속 11km(지구 탈출 속도)를 넘어서게 된다. 묵직한 산소나 질소 분자는 중력에 끌려 다시 바닥으로 떨어지지만, 헬륨은 지구의 인력이라는 보이지 않는 밧줄을 툭 끊어버리고 차가운 심우주로 영원히 증발해 버리는 것이다.
지구에서 헬륨이 태어나는 유일한 방법
그렇다면 지구에 있는 헬륨은 애초에 어디서 온 것일까? 우주 전체를 놓고 보면 헬륨은 수소 다음으로 흔한 물질(태양 질량의 4분의 1이 헬륨)이지만, 지구 대기에는 방금 말했듯 우주로 다 날아가 버려서 거의 남아있지 않다. 우리가 쓰는 헬륨은 공기 중에서 포집하는 것이 아니라, 깊은 '지하 땅속'에서 캐낸다. 수십억 년 전 지구 내부에 갇힌 우라늄이나 토륨 같은 방사성 원소들이 붕괴할 때 알파(α) 붕괴를 일으키는데, 이 알파 입자가 바로 헬륨 원자핵이다. 땅속에서 방사능 붕괴로 아주 천천히 만들어진 헬륨 가스들이 지각의 암석 틈새를 타고 올라오다가, 돔 형태의 단단한 천연가스전 지층에 가스 형태로 수억 년 동안 갇히게 된다. 인류가 천연가스를 뽑아 올릴 때, 운 좋게 이 헬륨이 섞여 있는 가스전(주로 미국 텍사스와 카타르)에서 극저온으로 얼려 헬륨만 쏙 분리해 내는 것이다. 헬륨은 인공적으로 합성할 수도 없고(핵융합 발전이 완성되지 않는 한), 공기 중에서 추출할 수도 없는 철저히 고갈되는 화석 자원이다.
절대 영도의 마법사, 첨단 산업의 피
단순히 풍선이나 띄우고 목소리를 웃기게 바꾸는(도널드 덕 효과) 용도로 낭비하기엔, 헬륨은 현대 과학에서 절대 대체할 수 없는 초특급 귀족 원소다. 헬륨의 가장 위대한 특성은 영하 269도(-269℃, 절대영도에 4도 모자란 온도)라는 극도로 차가운 온도에서만 액체로 변한다는 점이다. 우주에서 가장 끓는점이 낮은 물질이다. 이 '액체 헬륨'은 저항이 완벽하게 0이 되는 초전도(Superconductivity) 현상을 만들기 위한 유일한 냉각제다. 병원에서 암이나 뇌 질환을 진단하는 고해상도 MRI 기계의 강력한 전자석을 차갑게 식혀주는 심장 피 역할을 바로 액체 헬륨이 한다. 또한 입자 가속기(LHC), 양자 컴퓨터의 냉각 시스템, 그리고 반도체를 깎을 때 쓰이는 불순물 없는 방패 가스로도 헬륨이 엄청나게 소비된다. 헬륨이 없으면 전 세계의 반도체 공장이 멈추고, 중증 환자들의 진단이 불가능해지는 치명적인 마비 사태가 벌어진다.
다가오는 헬륨 고갈과 벼랑 끝의 자원 위기
비극은 미국 정부가 냉전 시대에 쌓아두었던 막대한 양의 국립 헬륨 비축 물량(BHA)을 민간에 헐값에 매각해버리며 헬륨의 경제적 가치를 박살 냈다는 점이다. 값이 너무 싸지자, 기업들은 헬륨을 쓰고 난 뒤 굳이 비싼 돈을 들여 회수 장치를 만들지 않고 대기 중으로 그냥 날려버렸다(그리고 이 헬륨은 우주로 영원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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