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 시간 이상 기후 그리고 제트 기류
서쪽에서 동쪽으로 부는 거대한 바람 '제트 기류'의 유체역학적 원리와, 기후 온난화로 인해 제트 기류가 붕괴하며 발생하는 이상 기후를 조명한다.
편집부 · 2022년 1월 30일 · 읽는 데 4분
한국 인천공항에서 미국 뉴욕행 비행기를 타면 보통 13시간 반이 걸린다. 그런데 뉴욕에서 일을 마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때는 신기하게도 비행시간이 무려 15시간 반으로, 2시간이나 더 푹 잘 수 있다. 비행기 기종도 똑같고 거리가 늘어난 것도 아닌데 왜 갈 때와 올 때의 비행시간이 이토록 차이가 나는 것일까? 항공사의 조종사들이 미국에 갈 때 엑셀을 밟아 과속을 한 것이 아니다. 이 신비로운 시간 차이의 배후에는 지구 상공 10km 높이의 성층권에서 서쪽에서 동쪽으로 끊임없이 맹렬하게 불어대는 거대한 바람의 강, '제트 기류(Jet Stream)'가 숨어 있다. 미국으로 갈 때는 이 시속 수백 킬로미터의 뒷바람(순풍)을 타고 서핑하듯 미끄러져 가지만, 한국으로 돌아올 때는 거센 맞바람을 뚫고 힘겹게 역주행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비행기의 기름값을 아껴주는 고마운 공중 고속도로 정도로 여겨졌던 이 제트 기류가, 최근 지구 온난화의 직격탄을 맞고 심하게 뱀처럼 구불거리며 전 세계에 끔찍한 한파와 폭염을 쏟아붓는 기후의 파괴자로 돌변하고 있다. 하늘 위의 보이지 않는 뱀, 제트 기류의 유체역학적 원리와 요동치는 이상 기후의 상관관계를 들여다보자.
온도 차이가 낳은 거대한 바람의 강
제트 기류는 왜 생기는 것일까? 그 근본적인 에너지는 태양과 지구의 둥근 모양에서 나온다. 적도 지방은 태양열을 직각으로 받아 일 년 내내 펄펄 끓고, 북극과 남극은 비스듬히 받아 꽁꽁 얼어붙는다. 이 극단적인 온도 차이 때문에 적도의 뜨겁고 가벼운 공기는 위로 솟구쳐 북쪽으로 이동하려 하고, 북극의 차갑고 무거운 공기는 아래로 깔려 남쪽으로 밀려 내려오려 한다. 이렇게 남북으로 공기가 섞이려는 거대한 대류 현상에, 지구가 하루에 한 바퀴씩 맹렬하게 도는 '자전 효과(전향력, 코리올리 힘)'가 개입한다. 남북으로 이동하던 공기 덩어리들이 지구의 자전 때문에 휩쓸리면서 진로가 오른쪽으로 꺾이게 되고, 북위 30도와 60도 부근 상공에서 아예 서쪽에서 동쪽으로 지구 전체를 휘감아 도는 시속 100~500km의 강력한 띠 모양의 돌풍으로 뭉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제트 기류다. 제트 기류는 마치 차가운 북극의 공기가 남쪽으로 내려오지 못하도록 꽉 묶어두는 튼튼한 '허리띠'나 투명한 방파제 같은 역할을 하며 지구의 기후 균형을 아슬아슬하게 유지하고 있다.
뱀처럼 굽이치는 사행(Meandering)의 마술
제트 기류는 팽팽한 고무줄처럼 일직선으로만 부는 것이 아니다. 밑에 있는 히말라야 같은 거대한 산맥에 부딪히거나 바다와 육지의 온도 차이를 만나면, 강물이 굽이쳐 흐르듯 북쪽과 남쪽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뱀처럼 구불구불하게 흐른다(이를 로스비 파동이라고 한다). 이 굽이치는 파동이야말로 중위도 지방(한국, 미국, 유럽 등)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과 매일매일의 날씨 변화를 만들어내는 마술사다. 제트 기류가 북쪽으로 볼록하게 치고 올라가면 그 밑으로 남쪽의 따뜻한 공기가 딸려 올라와 포근한 날씨가 되고, 반대로 남쪽으로 움푹 파고 내려오면 북극의 살을 에는 듯한 시베리아 고기압(찬 공기)이 쏟아져 내려와 매서운 한파가 몰아친다. 제트 기류는 며칠에 한 번씩 이 파동을 계속 동쪽으로 이동시키기 때문에 우리는 삼한사온(3일 춥고 4일 따뜻한)의 규칙적이고 다이나믹한 날씨를 즐길 수 있었다.
풀려버린 북극의 허리띠, 이상 기후의 습격
그런데 최근 이 제트 기류의 팽팽했던 텐션이 헐렁하게 풀려버리는 끔찍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원인은 바로 '북극 온난화'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북극의 얼음이 녹으면서 북극의 온도가 다른 지역보다 2~3배나 더 빠르게 펄펄 끓고 있다(북극 증폭 현상). 제트 기류의 엔진을 돌리는 힘은 적도와 북극의 '온도 차이'에서 나오는데, 북극이 너무 따뜻해져 버리니 온도 차이가 줄어들고 제트 기류의 바람 세기가 뚝 떨어져 버린 것이다. 팽팽하게 돌아가던 팽이가 힘을 잃으면 비틀거리듯, 바람이 약해진 제트 기류는 위아래로 미친 듯이 크고 깊게 출렁이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북극에 얌전히 갇혀 있어야 할 영하 40도의 살인적인 한파 덩어리(폴라 보텍스)가 느슨해진 제트 기류의 틈을 뚫고 텍사스나 스페인 같은 남쪽 지방까지 쏟아져 내려와 수돗물이 얼어붙는 초유의 재난을 일으켰다. 반대로 위로 볼록하게 치솟은 지역(캐나다나 시베리아 툰드라)에는 적도의 찜통더위가 밀려 올라가 영구동토층이 녹아내리고 전례 없는 산불이 맹위를 떨치고 있다.
블로킹 현상, 멈춰버린 하늘의 컨베이어 벨트
더 큰 문제는 뱀처럼 굽이치는 폭이 너무 커지다 못해, 아예 오메가(Ω) 모양으로 기류가 꼬이면서 하늘 한가운데 꽉 멈춰버리는 현상이다. 이를 '블로킹(Blocking)'이라고 부른다. 날씨를 계속 동쪽으로 이동시켜 주던 제트 기류 컨베이어 벨트가 고장 난 채 특정 지역 상공에 거대한 고기압 돔(열돔)이나 저기압을 한 달 내내 가두어 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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