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지구과학

블랙홀의 모든 것 시간과 공간

빛조차 빠져나오지 못하는 블랙홀 주변에서 일어나는 시공간의 극단적인 왜곡 현상과, 사건의 지평선 너머 특이점의 미스터리를 분석한다.

편집부 · 2022년 10월 28일 · 읽는 데 4분

물리학 시각화, 빛나는 시공간의 격자를 구부리고 비트는 거대한 블랙홀
물리학 시각화, 빛나는 시공간의 격자를 구부리고 비트는 거대한 블랙홀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주인공 쿠퍼 일행은 거대한 블랙홀 '가르강튀아' 근처에 있는 물의 행성(밀러 행성)에 잠시 착륙한다. 행성에서 불과 몇 시간 동안 위기를 겪고 우주선으로 돌아왔지만, 우주선에서 기다리던 동료는 이미 수십 년의 세월을 훌쩍 넘긴 백발의 노인이 되어 있었다. 영화 속의 과장된 연출 같지만, 이것은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이론이 증명한 소름 끼치도록 정확한 물리학적 팩트다. 우주에서 가장 극단적이고 신비로운 천체인 '블랙홀(Black Hole)'은 단순히 주변의 별이나 가스를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이는 구멍이 아니다. 그 압도적인 질량과 중력은 자신이 위치한 주변의 3차원 공간을 심하게 찢어버릴 듯 짓누르고, 심지어 4차원의 축인 '시간'의 흐름마저 엿가락처럼 길게 늘어뜨려 멈추게 만든다. 밖에서 바라보는 우주의 상식과 블랙홀 안으로 떨어지는 자가 겪는 시공간의 법칙이 완벽하게 엇갈리는 곳, 빛조차 굴복하는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과 특이점(Singularity)이 빚어내는 기괴한 시공간의 왜곡 현상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질량이 시공간을 구부린다, 중력 우물

블랙홀이 만드는 기괴한 현상을 이해하려면 먼저 아인슈타인이 정의한 '중력'의 본질을 깨달아야 한다. 뉴턴은 중력을 서로 잡아당기는 자석 같은 보이지 않는 '힘'이라고 생각했지만, 아인슈타인은 질량을 가진 물체가 그물망 같은 4차원의 시공간(Space-time) 거죽을 아래로 짓눌러 움푹 파이게 만드는 '기하학적인 굴곡'이라고 설명했다. 블랙홀은 태양보다 수십에서 수십억 배 무거운 질량이 바늘 끝보다 작은 점(특이점) 하나에 무한대의 밀도로 뭉쳐 있는 덩어리다. 따라서 블랙홀 주변의 시공간은 얕게 파인 수준이 아니라, 바닥을 알 수 없는 깊고 끝없는 우물(중력 우물)처럼 극단적으로 길게 늘어나게 된다. 이 깊은 우물 근처로 빛이나 물질이 지나가면, 똑바로 직진하지 못하고 심하게 구부러진 시공간의 굴곡(미끄럼틀)을 따라 안으로 미끄러져 굴러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블랙홀이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원리다. 심지어 우주에서 가장 빠른 빛조차 이 가파른 시공간의 계곡을 기어올라 탈출하지 못하고 안으로 갇혀버리게 된다.

시간이 멈추는 마지노선, 사건의 지평선

이 끝없는 시공간의 미끄럼틀을 내려가다 보면 돌아올 수 없는 루비콘강을 건너게 되는데, 이 경계선을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이라고 부른다. 빛의 속도(초속 30만 km)로 도망쳐도 블랙홀의 탈출 속도가 이를 넘어서버려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는 절대적인 '포인트 오브 노 리턴(Point of no return)'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경계선 근처에서 벌어지는 '시간의 상대성'이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에 따르면, 중력이 강할수록(시공간이 심하게 휘어질수록) 그곳을 흐르는 시간의 속도는 느려진다(중력적 시간 지연). 만약 친구가 블랙홀을 향해 떨어지고 있고 내가 멀리 우주선에서 망원경으로 그를 지켜본다면, 친구가 사건의 지평선에 다가갈수록 그의 움직임은 슬로우 모션처럼 점점 느려지게 보일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사건의 지평선에 닿는 순간, 친구의 시간은 나의 시계에 비해 완전히 멈춰버린 것처럼 정지한 상태로 영원히 굳어버리게 된다. 밖에서 보는 우주의 관찰자에게, 블랙홀 안으로 떨어지는 물체는 영원히 지평선 겉면에 얼어붙어 있는 유령처럼 보일 뿐이다. 영화 같은 SF 장면, 시간 지연을 경험하며 블랙홀을 향해 천천히 떨어지는 우주 비행사

스파게티화 현상, 스파게티피케이션

그렇다면 실제로 블랙홀 안으로 떨어지는 당사자(친구)의 입장에서는 어떨까? 친구 본인은 자신의 시계가 멈추거나 느려졌다는 사실을 전혀 자각하지 못한 채 눈 깜짝할 사이에 사건의 지평선을 통과해 버린다. 그러나 그의 몸은 끔찍한 물리적 시련을 겪게 된다. 이른바 '스파게티화(Spaghettification)' 현상이다. 블랙홀의 중력은 중심부로 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강해진다. 만약 다리부터 블랙홀로 떨어진다면, 다리를 잡아당기는 중력이 머리를 잡아당기는 중력보다 어마어마하게 세기 때문에 몸 전체가 위아래로 엿가락처럼 길게 늘어나고 양옆으로는 국수 가닥처럼 압축되며 찢어져 버린다. 아무리 강철로 만든 우주선이라 하더라도 사건의 지평선을 넘어서 특이점으로 빨려 들어가는 동안 무자비한 중력의 차이(기조력)에 의해 원자 단위의 가느다란 스파게티 면발처럼 박살 나게 되는 것이다. 일반 상대성이론이 예측하는 블랙홀 내부로의 여정은 낭만적인 시간 여행이 아니라 끔찍한 분쇄기를 통과하는 죽음의 다이빙이다.

모든 물리 법칙의 무덤, 특이점(Singularity)

스파게티로 찢어진 물질들이 끝없이 떨어져 마침내 도착하는 블랙홀의 정중앙, 그곳이 바로 '특이점(Singularity)'이다. 특이점은 부피가 '0'이고 밀도와 중력은 '무한대'인 수식상의 에러 같은 지점이다. 이곳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물리학 법칙, 공간의 3차원 개념이나 시간의 인과율이 완전히 산산조각 나며 붕괴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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