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지구과학

블랙홀을 귀로 들을 수 있다고

시공간의 일렁임인 중력파를 가청 주파수로 변환하여 블랙홀의 충돌을 '소리'로 관측하는 라이고 프로젝트의 원리를 소개한다.

편집부 · 2023년 12월 14일 · 읽는 데 4분

우주에서 두 개의 블랙홀이 융합하며 뿜어져 나오는 추상적인 음파, 빛나는 네온 시각화
우주에서 두 개의 블랙홀이 융합하며 뿜어져 나오는 추상적인 음파, 빛나는 네온 시각화

우주는 진공 상태다. 공기 같은 매질이 없기 때문에 소리가 전달될 수 없으며, 스타워즈 영화에서처럼 우주선이 폭발할 때 굉음이 울려 퍼지는 것은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허구다. 그런데 2016년 2월, 미국 국립과학재단과 '라이고(LIGO)' 연구진은 전 세계를 향해 "우리가 블랙홀이 충돌하는 소리를 들었다"는 믿기 힘든 발표를 했다. 칠흑같이 어둡고 소리 없는 진공의 우주에서 수십억 광년 떨어진 블랙홀의 소리를 어떻게 들었다는 것일까? 과학자들이 스피커를 통해 들려준 소리는 1초도 안 되는 짧은 찰나에 "우-웁" 혹은 새가 지저귀는 듯한 "새액(Chirp)" 하는 기묘하고 낮은 파찰음이었다. 이 소리의 정체는 공기의 떨림(음파)이 아니라, 아인슈타인이 100년 전 일반 상대성이론에서 예언했던 시공간 자체의 떨림, 즉 '중력파(Gravitational Wave)'를 인간이 들을 수 있는 오디오 주파수로 변환한 것이었다. 인류가 망원경이라는 눈 대신 처음으로 우주를 향해 거대한 '귀'를 열었던 중력파 관측의 놀라운 물리학적 메커니즘을 파헤쳐 보자.

우주의 젤리, 시공간이 출렁인다

중력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인슈타인이 생각한 우주의 시공간(Space-time)을 마치 팽팽하게 당겨진 거대한 고무판이나 트램펄린으로 상상해야 한다. 질량을 가진 물체가 고무판 위에 놓이면 고무판이 푹 파이듯 시공간이 휘어지는데, 이것이 바로 중력의 정체다. 만약 아주 무거운 쇠구슬 두 개(예: 블랙홀 두 개)가 이 고무판 위에서 서로의 주위를 미친 듯이 빙글빙글 돈다면 어떻게 될까? 휘어진 고무판이 심하게 출렁거리면서 그 요동침이 마치 연못의 물결처럼 우주 전체로 뻗어나갈 것이다. 질량을 가진 물체가 가속 운동을 할 때 시공간 자체가 왜곡되며 빛의 속도로 퍼져나가는 이 파동을 '중력파'라고 부른다. 블랙홀처럼 압도적인 질량을 가진 천체들이 쾅 하고 충돌할 때, 질량의 일부가 순수한 중력 에너지(E=mc²)로 바뀌어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오며 우주의 젤리를 뒤흔든다. 하지만 이 파동은 지구에 도달할 즈음이면 그 떨림의 크기가 너무나 작아져서, 원자핵 지름의 1만 분의 1(10의 -21승) 수준으로 시공간을 미세하게 늘렸다 줄였다 할 뿐이다. 너무나 미약해서 아인슈타인 본인조차 "인간의 기술로는 영원히 관측하지 못할 것"이라고 절망했던 파동이었다.

4km짜리 간섭계 레이저 자, 라이고(LIGO)

아인슈타인의 예언을 깨고 이 미세한 떨림을 잡아낸 것은 미국의 '고급 레이저 간섭계 중력파 관측소(LIGO)'였다. 라이고의 구조는 기역 자(L자) 모양으로 길게 뻗은 길이가 무려 4km에 달하는 두 개의 거대한 진공 터널이다. 연구진은 터널 모서리에서 강력한 레이저 빔을 쏘아 반투명 거울(빔 스플리터)을 통해 두 갈래로 나눈 뒤, 터널 끝에 있는 거울에 반사시켜 다시 하나로 합쳐지게 만들었다. 평소에는 두 레이저가 4km를 왕복하고 돌아와 완벽하게 겹쳐지면서 서로 빛의 파동을 상쇄시켜(상쇄 간섭) 감지기에는 아무런 빛도 들어오지 않는 깜깜한 상태를 유지한다. 그런데 만약 우주에서 중력파가 지구를 훑고 지나가면 어떻게 될까? 시공간 자체가 늘어났다 줄어들기 때문에, 4km 길이의 터널 중 하나는 미세하게 늘어나고 수직 방향의 다른 터널은 미세하게 줄어드는 기괴한 왜곡이 발생한다. 공간의 길이가 달라지니 두 레이저가 돌아오는 시간에 미세한 차이가 생기고, 상쇄되어 깜깜했던 감지기에 불이 번쩍 들어오게 된다. 라이고는 원자핵 지름의 1만 분의 1만큼 변하는 시공간의 요동을 오직 '빛의 간섭 현상' 하나로 감지해 낸 인류 역사상 가장 정밀한 자(Ruler)이자 우주의 마이크로폰이다. 중력파를 포착하기 위해 사막 풍경을 가로질러 뻗어 있는 라이고(LIGO) 관측소의 긴 레이저 터널

가청 주파수 변환, 새소리(Chirp)의 비밀

라이고가 2015년 최초로 포착한 중력파 신호(GW150914)는 13억 광년 떨어진 곳에서 질량이 태양의 36배, 29배인 두 개의 블랙홀이 서로 충돌하며 병합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었다. 블랙홀 두 개가 서로를 맴돌며 점점 가까워질수록 회전 속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지고, 이에 따라 뿜어져 나오는 중력파의 주파수와 진폭도 급격하게 커진다. 마지막 충돌 직전, 두 블랙홀은 1초에 100바퀴를 도는 미친 속도로 소용돌이치다 하나로 융합되었다. 연구진은 레이저 감지기에 기록된 중력파의 주파수 파형 데이터(약 35Hz에서 250Hz로 솟구치는 파형)가 마침내 인간이 들을 수 있는 가청 주파수(20Hz~20,000Hz) 대역에 절묘하게 들어맞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 파형 데이터를 그대로 스피커의 오디오 신호로 변환하여 재생했다. 그 결과, 주파수가 급격히 올라가며 진폭이 커지는 전형적인 '처프(Chirp, 새가 지저귀는 소리)' 형태의 짧고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우주의 시공간이 찢어지며 낸 비명 소리를, 파동의 수학적 변환을 통해 인류의 귀로 직접 듣게 된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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