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지구과학

블랙홀 최신 연구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EHT)이 포착한 인류 최초의 블랙홀 실제 사진과 중력파 관측이 열어젖힌 다중 신호 천문학의 최신 연구 성과를 분석한다.

편집부 · 2022년 11월 11일 · 읽는 데 4분

완벽한 어둠의 공허를 소용돌이치며 둘러싼 뜨거운 가스의 빛나는 주황색 고리, 블랙홀의 첫 번째 사진, 천문학적 경이로움
완벽한 어둠의 공허를 소용돌이치며 둘러싼 뜨거운 가스의 빛나는 주황색 고리, 블랙홀의 첫 번째 사진, 천문학적 경이로움

"블랙홀은 검은색이 아니었다." 2019년 4월, 전 세계 수억 명의 사람들이 인터넷 생중계를 통해 숨죽여 지켜보는 가운데 한 장의 사진이 공개되었다. 캄캄한 우주 배경 위로 주황색 불꽃이 도넛처럼 둥글게 소용돌이치고 있고, 그 한가운데에는 빛조차 빠져나오지 못해 새까맣게 뚫려 있는 거대한 심연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아인슈타인이 일반 상대성이론을 발표하고 수학적 계산(슈바르츠실트 해)으로 블랙홀의 존재를 예측한 지 꼭 100여 년 만에, 인류가 역사상 최초로 블랙홀의 실제 그림자(Shadow)를 눈으로 직접 목격한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그동안 수많은 SF 영화에서 화려한 상상력으로 그려내고, 스티븐 호킹을 비롯한 천재 물리학자들이 평생을 바쳐 칠판 위 수식으로만 증명하려 했던 우주의 가장 신비로운 천체가 드디어 자신의 진짜 얼굴을 드러낸 것이다.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EHT) 프로젝트가 쏘아 올린 사진 한 장과 아인슈타인의 마지막 수수께끼인 '중력파' 관측이 결합하며, 현대 천문학은 '다중 신호 천문학(Multi-messenger Astronomy)'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황금기를 맞이하고 있다. 인류의 우주관을 송두리째 바꾼 최신 블랙홀 연구의 눈부신 성과들을 들여다보자.

지구만 한 망원경을 만들다, EHT 프로젝트

우리가 처음으로 얼굴을 확인한 블랙홀은 지구에서 무려 5,500만 광년이나 떨어진 처녀자리 은하단 'M87' 중심에 있는 초대질량 블랙홀이었다. 질량이 태양의 65억 배에 달하는 거물이지만, 거리가 워낙 멀어 지구에서 보면 달 표면에 놓인 도넛 하나를 맨눈으로 찾는 것만큼이나 터무니없이 작게 보인다. 이를 촬영하려면 지구 크기만 한 어마어마한 전파 망원경이 필요했다. 전 세계 200명이 넘는 과학자들로 구성된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EHT)' 연구팀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다. 남극, 칠레, 하와이, 스페인 등 지구 전역에 흩어져 있는 8대의 거대한 전파 망원경을 원자시계로 완벽하게 동기화하여 하나로 연결시킨 것이다. '초장기선 전파간섭계(VLBI)'라 불리는 이 기술을 통해 8대의 망원경이 동시에 M87을 바라보게 함으로써, 마치 지구만 한 크기의 거대한 가상 렌즈를 가진 초정밀 망원경을 만들어냈다. 이들은 블랙홀이 주변의 가스를 집어삼킬 때 뿜어내는 엄청난 열방사(가스가 마찰하며 내는 빛) 중에서, 은하의 짙은 먼지구름을 뚫고 나올 수 있는 아주 짧은 파장(1.3mm)의 전파만을 골라서 수집했다. 이렇게 모인 5페타바이트(MP3 음악 파일 100만 년 재생 분량)의 방대한 하드디스크 데이터를 슈퍼컴퓨터와 인공지능 알고리즘으로 2년 동안 노이즈를 깎고 다듬어낸 끝에, 비로소 경이로운 도넛 모양의 사진 한 장을 인화해 낼 수 있었다.

사진 속에 숨겨진 상대성이론의 증명

사진 속 빛나는 도넛 모양은 블랙홀 자체가 아니다. 블랙홀은 빛조차 빨아들이므로 우리 눈에 보일 수 없다. 우리가 본 것은 블랙홀의 엄청난 중력에 끌려들어가며 빛의 속도에 가깝게 회전하고 있는 거대한 가스 원반(강착 원반)이 내뿜는 빛과, 그 가스 원반 뒤에서 출발한 빛이 블랙홀의 중력에 의해 휘어져(중력 렌즈 효과) 우리 눈으로 날아온 빛들이 합쳐진 형태다. 그리고 도넛 한가운데의 까만 원형 공간이 바로 빛이 탈출하지 못하는 마지노선,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에 의해 만들어진 블랙홀의 '그림자'다. 놀라운 것은 사진 속 빛의 고리 아래쪽이 위쪽보다 훨씬 더 밝게 빚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는 가스 원반이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면서, 우리(지구) 쪽을 향해 맹렬하게 다가오는 가스의 빛은 도플러 효과(상대론적 빔 효과)에 의해 파장이 짧아지고 에너지가 증폭되어 훨씬 밝게 보이고, 멀어지는 쪽은 어둡게 보이기 때문이다. 사진에 나타난 고리의 크기, 그림자의 모양, 비대칭적인 밝기는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이론이 수식으로 예측했던 극단적인 중력장의 모습과 무서울 정도로 완벽하게 일치했다. 빛나는 빔으로 연결되어 지구 크기의 렌즈를 형성하는 전 세계에 위치한 전파 망원경들

중력파, 귀로 듣는 블랙홀의 충돌

블랙홀을 '눈(전파 사진)'으로 확인하기 불과 몇 년 전, 인류는 이미 블랙홀의 존재를 '귀'로 먼저 들어버린 상태였다. 2015년 미국의 '라이고(LIGO)' 관측소가 우주 공간을 뚫고 날아온 아주 미세한 시공간의 떨림, 즉 '중력파(Gravitational Wave)'를 최초로 검출해 낸 것이다. 이 파동은 지구에서 13억 광년 떨어진 곳에서 각각 태양 질량의 36배, 29배인 두 개의 블랙홀이 맹렬하게 회전하다가 쾅 하고 하나로 병합(충돌)하는 순간 우주 공간의 거죽(시공간) 자체가 출렁이며 퍼져나간 잔물결이었다. 연못에 돌을 던졌을 때 퍼져나가는 물결처럼, 블랙홀이 합쳐질 때 질량의 일부가 엄청난 중력 에너지로 바뀌어 우주를 향해 뻗어나간 것이다. 라이고 연구진은 이 중력파의 파동을 인간이 들을 수 있는 오디오 신호로 변환하여 "새액~ 뽁!" 하는 기묘한 새소리(Chirp)를 대중에게 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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