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지구과학

불규칙적이면서 규칙적인 준결정

이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비주기적이면서도 규칙적인 원자 배열을 가진 '준결정(Quasicrystal)'의 파격적인 발견과 그것이 뒤집은 고체 물리학의 상식을 조명한다.

편집부 · 2021년 11월 18일 · 읽는 데 4분

금속성 무지개색으로 빛나는 준결정 구조의 아름다운 접사 사진, 복잡한 기하학적 패턴
금속성 무지개색으로 빛나는 준결정 구조의 아름다운 접사 사진, 복잡한 기하학적 패턴

세상을 이루는 고체 물질은 오랫동안 물리학자들의 상식 속에서 딱 두 가지로 나뉘어 있었다. 소금이나 다이아몬드처럼 원자들이 아주 규칙적인 패턴으로 끝없이 반복 배열되어 있는 '결정(Crystal)'과, 유리나 고무처럼 원자들이 아무런 규칙 없이 엉망진창으로 뒤섞여 있는 '비정질(Amorphous)' 상태가 그것이다. 자연계에서 이 두 가지가 아닌 어중간한 상태는 화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믿었다. 특히, 원자들이 만들어내는 규칙적인 타일 패턴(대칭성)에는 기하학적으로 절대 허용되지 않는 금기의 숫자들이 있었다. 그런데 1982년, 미국의 표준국 연구소에서 안식년을 보내던 이스라엘의 재료공학자 단 시흐트만(Dan Shechtman)은 전자현미경을 들여다보다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현미경 화면에 찍힌 알루미늄-망간 합금의 원자 배열에서, 자연계에서는 절대 존재할 수 없다고 여겨졌던 오각형(5회전 대칭) 모양의 규칙적인 점무늬가 나타난 것이다. 그것은 분명히 규칙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 패턴이 주기적으로 반복되지는 않는 기괴한 구조였다. 학계의 비웃음과 이단아 취급을 견뎌내고 고체 물리학의 교과서를 완전히 다시 쓰게 만든 기하학의 마술, '준결정(Quasicrystal)'의 경이로운 세계를 파헤쳐 보자.

결정학의 금기, 오각형 타일의 역설

준결정의 발견이 왜 그토록 충격적이었는지를 이해하려면 타일 깔기(Tessellation)의 수학적 원리를 알아야 한다. 욕실 바닥에 빈틈없이 타일을 깔려면 정삼각형, 정사각형, 정육각형 타일만 사용할 수 있다(이를 각각 3회전, 4회전, 6회전 대칭이라고 한다). 만약 정오각형 모양의 타일을 바닥에 깐다면 어떻게 될까? 오각형 3개를 붙이면 중간에 다이아몬드 모양의 틈이 생기고, 이를 억지로 메우려다 보면 타일들이 겹치게 되어 절대 평면을 빈틈없이 채울 수 없다. 이는 2차원 평면뿐만 아니라 3차원 공간에서 원자들을 차곡차곡 쌓을 때도 완벽하게 적용되는 절대적인 기하학 법칙이다. 따라서 수백 년 동안 물리학자들은 자연계의 어떤 광물이나 합금에서도 원자들이 오각형(5회전 대칭)이나 10각형 패턴으로 규칙적으로 배열될 수는 없다고 철석같이 믿어왔다. 결정학 교과서의 첫 페이지에 적힌 불문율이었다. 그런데 시흐트만이 전자현미경으로 쏜 회절 무늬 사진에는, 도무지 빈틈없이 채울 수 없는 그 불가능한 10각형(5회전 대칭) 별 모양의 패턴이 너무나 선명하고 아름답게 찍혀 있었던 것이다.

이단아의 외로운 싸움, 펜로즈 타일링의 현실화

시흐트만이 이 발견을 학계에 보고했을 때, 돌아온 것은 엄청난 조롱과 멸시였다. 당시 노벨상을 두 번이나 받았던 화학계의 거장 라이너스 폴링마저 "준결정 따위는 없다. 준과학자(가짜 과학자)만 있을 뿐이다"라며 그를 공개적으로 모욕했고, 시흐트만은 소속된 연구 그룹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모든 학자들이 시흐트만의 샘플이 그냥 두 개의 평범한 결정이 우연히 겹쳐져(쌍정) 오각형처럼 잘못 보인 것이라며 실험 결과를 부정했다. 하지만 시흐트만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데이터를 묵묵히 다듬어 나갔다. 이때 그의 구원투수로 등장한 것이 수학자 로저 펜로즈(Roger Penrose)가 고안한 '펜로즈 타일링' 개념이었다. 펜로즈는 두 가지 서로 다른 모양의 마름모 타일을 일정한 규칙에 따라 섞어 쓰면, 오각형의 대칭성을 띠면서도 전체 패턴이 결코 똑같이 반복되지 않는(비주기적) 기하학적인 타일 깔기가 가능하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해 둔 상태였다. 물리학자들은 시흐트만이 현미경으로 본 합금의 구조가 바로 펜로즈 타일링이 원자 수준에서 3차원 공간에 물리적으로 구현된 상태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불규칙하면서도 규칙적인, 모순의 결정체가 실재했던 것이다. 무한히 확장되는 불가능한 펜로즈 타일링 패턴, 수학적 기하학 개념 아트

자연이 숨겨놓은 준결정의 발견

시흐트만의 끈질긴 투쟁 덕분에 준결정의 존재가 공식적으로 인정받자, 전 세계 과학자들은 앞다투어 티타늄, 철 등 다양한 금속을 섞어가며 수백 종류의 준결정 합금을 인공적으로 빚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9년에는 러시아의 캄차카반도 코랴크 산맥에서 채굴된 광물 표본 속에서 천연 상태로 만들어진 준결정 광물인 '이코사헤드라이트(Icosahedrite)'가 최초로 발견되며 자연 역시 이미 수십억 년 전부터 준결정을 품고 있었음이 증명되었다. 이 광물은 아주 먼 옛날 우주에서 날아온 운석이 지구에 충돌할 때, 엄청난 열과 압력에 의해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에 합금이 급랭하면서 기적적으로 형성된 것이었다. 시흐트만 역시 실험실에서 알루미늄 합금을 무려 100만 도의 속도로 초급랭시키는 가혹한 조건을 통해 원자들이 엉망으로 굳기 직전의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이 비주기적인 대칭 패턴을 포착했던 것이다. 단 시흐트만은 혼자서 고체 물리학의 패러다임을 바꾼 공로를 인정받아 2011년 노벨 화학상을 단독 수상하며, 자신을 조롱했던 학계에 통쾌한 복수를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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