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식을 위한 식물들의 전략
발이 묶인 식물들이 동물을 유혹하고 바람을 타며 자손을 널리 퍼뜨리기 위해 진화시킨 기상천외한 화학적, 물리적 번식 전략을 탐구한다.
편집부 · 2021년 4월 11일 · 읽는 데 4분
지구상의 동물들은 마음에 드는 짝을 찾기 위해 화려한 깃털을 뽐내며 춤을 추고,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 이동하며, 때로는 피 튀기는 결투를 벌인다. 하지만 땅에 뿌리를 박고 평생을 한자리에서 꼼짝할 수 없는 식물들은 어떻게 짝짓기를 하고 자손을 남길까? 발이 묶인 식물에게 번식(수분과 종자 퍼뜨리기)은 생존을 건 가장 절박하고도 창의적인 도전이다. 그들은 움직일 수 없는 치명적인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화학 공장을 가동하여 매혹적인 향기와 달콤한 꿀을 만들어내고, 곤충과 새를 유혹하는 화려한 시각적 속임수를 쓰며, 심지어 동물의 몸에 씨앗을 몰래 붙여 멀리 떠나보내는 치밀한 물리적 장치까지 발명해 냈다. 아름다운 꽃과 달콤한 열매는 우리 인간을 즐겁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식물들이 억겁의 진화 과정 속에서 철저하게 계산하고 설계한 냉혹한 유혹의 덫이다. 꿀벌을 속이고 바람을 타며 지구 표면을 초록색으로 뒤덮은 식물들의 천재적인 번식 전략을 들여다보자.
화학과 광학의 마술, 매개자 유혹하기
대부분의 속씨식물은 꽃가루를 다른 꽃의 암술머리에 묻혀줄 배달부(수분 매개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가장 흔한 배달부인 꿀벌과 나비를 유혹하기 위해 꽃은 정교한 광학적 신호와 화학적 보상을 제공한다. 식물은 곤충이 가장 좋아하는 꿀(당분)을 꽃 깊숙한 곳에 숨겨놓고, '이곳에 맛있는 밥이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안토시아닌이나 카로티노이드 같은 색소를 합성하여 화려한 꽃잎을 펼친다. 재미있는 것은 꿀벌이 인간과는 달리 '자외선'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인간의 눈에는 평범한 노란 꽃으로 보이지만, 자외선 카메라로 찍어보면 꽃잎 중심부에 벌을 꿀샘으로 유도하는 활주로 모양의 '꿀 표지(Nectar Guide)' 패턴이 선명하게 나타난다. 또한 밤에 활동하는 나방이나 박쥐를 유인해야 하는 꽃들은 어둠 속에서도 잘 보이도록 흰색이나 옅은 노란색 꽃을 피우며, 시각적 정보 대신 멀리서도 냄새를 맡을 수 있도록 휘발성 유기화합물(향기)을 엄청나게 뿜어낸다. 식물의 색과 향기는 매개자의 감각 기관에 완벽하게 맞춰진 맞춤형 타겟 광고인 셈이다.
속임수와 기만의 대가들
하지만 모든 식물이 정직하게 꿀이라는 보상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는 꿀을 만들지 않고도 매개자를 완벽하게 농락하는 기만의 대가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난초류'다. 지중해에 서식하는 벌난초(오프리스)의 꽃은 암컷 벌의 뚱뚱한 엉덩이와 털까지 완벽하게 똑같이 생긴 모양을 하고 있다. 심지어 암컷 벌이 교미할 때 내뿜는 페로몬과 똑같은 화학 물질까지 분비한다. 이 정교한 섹스 어필에 속아 넘어간 수컷 벌이 꽃에 내려앉아 교미를 시도하려 엉덩이를 비비는 순간, 꽃은 수컷의 머리에 노란 꽃가루 주머니를 철썩 붙여버린다. 수컷 벌은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이 꽃 저 꽃을 날아다니며 헛된 교미를 시도하고, 식물은 공짜로 수분을 완성한다. 또한 세계에서 가장 큰 꽃인 '라플레시아'나 '시체꽃'은 파리나 딱정벌레를 유인하기 위해 고기가 썩는 끔찍한 악취(디메틸 트라이설파이드 등의 화합물)를 풍기고 붉은 살코기 같은 색을 띠어, 썩은 고기인 줄 알고 찾아온 곤충들에게 꽃가루를 뒤집어씌우는 엽기적인 사기극을 벌인다.
바람과 물을 타는 물리학의 달인들
곤충이나 동물의 변덕에 의존하기 싫은 식물들은 아예 매개자를 포기하고 물리학의 법칙에 번식을 맡기는 길을 택했다. 소나무, 잣나무 같은 겉씨식물이나 벼, 옥수수 같은 벼과 식물들은 '풍매화(바람에 수분하는 꽃)'다. 이들은 곤충을 부를 필요가 없으니 굳이 에너지를 들여 화려한 꽃잎이나 꿀을 만들지 않는다. 대신 엄청난 양의 작고 가벼운 꽃가루를 만들어 바람에 날려 보낸다. 봄철 자동차 유리를 노랗게 덮는 송화가루가 바로 바람을 타고 짝을 찾아 헤매는 소나무의 정자들이다. 수분이 끝난 뒤 씨앗을 멀리 퍼뜨릴 때도 공기 역학은 빛을 발한다. 단풍나무의 씨앗은 비대칭의 헬리콥터 프로펠러 모양으로 생겨서, 떨어질 때 빙글빙글 돌며 체공 시간을 늘려 바람을 타고 수 킬로미터까지 날아간다. 민들레 씨앗 역시 낙하산(관모) 구조를 통해 상승 기류를 타고 하늘을 둥둥 떠다닌다. 한편, 야자수(코코넛)는 물에 둥둥 뜰 수 있도록 속이 빈 두꺼운 섬유질 껍데기로 씨앗을 감싸 수만 킬로미터의 해류를 타고 다른 대륙의 해변에 뿌리를 내리는 끈질긴 해양 개척자다.
동물의 위장과 배설물을 이용한 밀항
씨앗을 가장 효과적이고 멀리 퍼뜨리는 방법은 활동 반경이 넓은 새나 포유류의 몸을 이용하는 것이다. 우리가 샐러드로 먹는 토마토, 포도, 딸기 같은 열매들은 식물이 동물을 유혹하기 위해 제공하는 달콤한 뇌물이다. 열매가 덜 익었을 때는 씨앗도 아직 미성숙한 상태이므로 떫은맛(탄닌)을 내고 초록색(보호색)을 띠어 동물들이 먹지 못하게 방어한다. 그러나 씨앗이 단단히 영글고 나면, 산을 분해해 단맛을 끌어올리고 눈에 잘 띄는 붉은색이나 노란색으로 변신하여 "나를 먹어달라"고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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