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의 멸종 인간이 만든 순환고리에 갇히다
전 세계인이 즐겨 먹는 바나나인 캐번디시 품종이 단일 경작의 한계로 인해 파나마병에 휩쓸려 멸종 위기에 처한 생물학적 비극을 다룬다.
편집부 · 2023년 2월 13일 · 읽는 데 4분
우리가 대형 마트나 편의점에서 너무나 싸고 흔하게 사 먹는 노란색 과일, 바나나. 껍질을 벗기기 쉽고 씨가 없어 부드럽고 달콤한 바나나는 현대인에게 가장 완벽하고 대중적인 간식이다. 그런데 이 친숙한 바나나가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 식탁에서 완전히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우울한 경고가 농학자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단순히 수확량이 줄어드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종 자체가 절멸할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바나나 멸종설의 근본적인 원인은 기후 변화나 자연재해가 아니다. 그것은 오로지 인간이 자본주의적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고 선택한 끔찍한 생물학적 도박, 즉 '단일 경작(Monoculture)'과 '클론 번식'이 불러온 필연적인 재앙이다. 우리가 먹고 있는 바나나가 실은 전 세계 수십억 그루가 똑같은 유전자를 가진 단 하나의 복제 나무에서 떨어져 나온 돌연변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맛과 편리함만을 좇아 생물 다양성을 짓밟아버린 끔찍한 대가가 식물 전염병이라는 치명적인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는 현실을 파헤쳐 보자.
그로 미셸의 비극, 첫 번째 멸종
바나나 멸종의 위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전 세계 사람들이 먹던 바나나는 지금 우리가 먹는 바나나와 전혀 다른 종이었다. '그로 미셸(Gros Michel)'이라는 이 품종은 껍질이 두꺼워 장거리 운송에 유리했고, 지금의 바나나보다 훨씬 달콤하고 향기가 진했다. 하지만 1950년대 중반, 곰팡이 균이 일으키는 식물 전염병인 '파나마병(Panama disease)'이 중남미 농장을 강타했다. 푸사리움(Fusarium)이라는 토양 곰팡이가 뿌리를 통해 물관으로 침투하여 식물을 시커멓게 말라 죽이는 끔찍한 병이었다. 살균제로도 막을 수 없었고 곰팡이 포자가 땅속에서 수십 년간 살아남아 전파력이 상상을 초월했다. 그로 미셸 품종은 파나마병에 대한 저항성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불과 몇 년 만에 전 세계의 바나나 농장은 초토화되었고 그로 미셸은 상업적 멸종 선고를 받았다. 다국적 과일 기업들은 파산 직전에 내몰렸고, 그들은 서둘러 그로 미셸을 대체할 새로운 품종을 찾아 정글을 헤매야만 했다.
캐번디시, 위태로운 구원자의 등장
과일 기업들의 구원자로 등장한 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 '캐번디시(Cavendish)' 품종이다. 캐번디시는 그로 미셸보다 맛과 향은 떨어지고 껍질이 얇아 멍이 잘 든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1950년대의 파나마병(TR1) 곰팡이를 이겨내는 훌륭한 면역력을 가지고 있었다. 기업들은 전 세계의 바나나 농장을 갈아엎고 그 자리에 캐번디시를 심기 시작했다. 여기서 중요한 생물학적 비극이 시작된다. 우리가 먹는 상업용 바나나는 씨앗이 없도록 인위적으로 개량된 돌연변이 종이다. 씨가 없기 때문에 교배를 통해 번식할 수 없고, 농부들이 나무의 밑동을 잘라 꺾꽂이(영양 번식) 방식으로 다른 밭에 옮겨 심어 복제하는 식으로 농사를 짓는다. 즉, 현재 전 세계에서 재배되는 1,000억 개가 넘는 캐번디시 바나나는 유전적으로 100% 완벽하게 똑같은 일란성 쌍둥이, 즉 '클론(Clone)'이다. 드넓은 열대우림을 베어내고 오직 캐번디시라는 단일 유전자만을 끝없이 심어놓은 이 거대한 단일 경작 시스템은, 자본의 입장에서는 크기와 모양을 통일하여 이윤을 극대화하는 최고의 선택이었지만, 생태계의 관점에서는 완벽하게 밥상이 차려진 세균 배양 접시나 다름없었다.
변종 파나마병(TR4)의 역습
유전적 다양성이 전혀 없다는 것은, 그 유전자의 약점을 파고드는 단 하나의 병원균만 등장해도 종 전체가 몰살당한다는 뜻이다. 자연 상태의 식물들은 유성 생식을 통해 유전자를 섞어 다양한 돌연변이를 만들어냄으로써 새로운 질병에 살아남는 개체를 진화시킨다. 하지만 모두가 똑같은 복제인간인 캐번디시에게 진화는 불가능했다.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1990년대 대만에서 과거 그로 미셸을 멸종시켰던 파나마병의 독성 변종인 '신종 파나마병(Tropical Race 4, TR4)'이 출현한 것이다. 이 변종 곰팡이는 캐번디시의 면역력을 너무나 쉽게 뚫고 들어갔다. TR4 곰팡이는 오염된 흙이나 물, 농부의 신발 밑창에 묻어 전 세계로 맹렬하게 퍼져나갔다. 아시아와 호주를 거쳐, 최근에는 전 세계 바나나 수출의 80%를 담당하는 중남미 지역(콜롬비아, 페루 등)에까지 상륙하여 국가 비상사태가 선포되기에 이르렀다. 그로 미셸이 겪었던 학살의 역사가 캐번디시에게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자연의 경고, 종 다양성의 중요성
상황은 매우 절망적이다. 현재 TR4 곰팡이를 퇴치할 수 있는 농약이나 방제법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유일한 해결책은 과거처럼 캐번디시를 대체할 야생의 새로운 바나나 품종을 찾는 것이지만, 오랫동안 돈이 되는 캐번디시 재배에만 몰두하느라 야생 바나나의 서식지를 마구 파괴해 버려 대체할 만한 품종의 씨가 마른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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