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맨해튼 프로젝트 그날의 이야기 day one

인류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무기인 원자폭탄을 개발한 맨해튼 프로젝트의 시작과 최초의 핵실험 트리니티의 순간을 과학사적 관점에서 조명한다.

편집부 · 2021년 11월 30일 · 읽는 데 4분

사막에서 피어오르는 버섯구름의 흑백 드라마틱한 사진
사막에서 피어오르는 버섯구름의 흑백 드라마틱한 사진

1945년 7월 16일 새벽 5시 29분, 미국 뉴멕시코주 앨라머고도 사막의 어둠을 찢고 인류가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태양보다 밝은 빛이 섬광처럼 번쩍였다. 수십 킬로미터 밖의 산맥까지 대낮처럼 밝히며 솟아오른 거대한 버섯구름은 인간이 자연의 가장 근원적인 힘인 원자핵의 에너지를 해방시킨 최초의 순간이자, 세계 역사의 흐름을 완전히 뒤바꿔 놓은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트리니티(Trinity)'라 명명된 이 인류 최초의 핵실험은 제2차 세계대전의 종식을 앞당기기 위해 극비리에 진행된 '맨해튼 프로젝트(Manhattan Project)'의 결과물이었다. 1930년대 후반 우라늄 원자핵이 쪼개지면서 엄청난 에너지를 방출할 수 있다는 핵분열 현상이 발견된 이후, 물리학자들은 이 힘이 가공할 만한 무기로 변할 수 있음을 직감했다. 나치 독일이 먼저 이 무기를 손에 넣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는 당대 최고의 지성들을 사막의 비밀 연구소로 불러모았다. 우주의 근원을 탐구하던 순수 과학이 파괴적인 살상 무기를 만들어내는 기술로 돌변한 이 극적인 프로젝트는 인류에게 번영과 파멸이라는 두 가지 선택지를 동시에 안겨주었다. 새로운 시대를 연 그날의 이야기와 그 이면에 숨겨진 과학적 원리를 되짚어 본다.

아인슈타인의 편지와 핵분열의 발견

맨해튼 프로젝트의 씨앗은 1938년 독일의 화학자 오토 한과 프리츠 슈트라스만이 우라늄 원자핵의 분열을 실험적으로 증명하면서 뿌려졌다. 우라늄에 중성자를 충돌시키면 원자핵이 둘로 쪼개지면서 아인슈타인의 질량-에너지 등가 원리(E=mc²)에 따라 사라진 질량만큼 막대한 에너지가 방출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이 소식은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레오 실라르드와 엔리코 페르미 같은 물리학자들에게 큰 충격과 공포를 안겼다. 핵분열 과정에서 추가로 튀어나온 중성자들이 다른 우라늄 원자핵을 연쇄적으로 타격한다면 상상을 초월하는 대폭발을 일으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히틀러가 이 연쇄 반응을 이용해 폭탄을 만든다면 전 세계는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맞이할 것이 분명했다. 다급해진 실라르드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을 설득하여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에게 원자폭탄 개발의 필요성을 경고하는 편지를 보내게 했다. 1939년 아인슈타인의 서명이 담긴 이 편지는 미국 정부를 움직였고, 1942년 마침내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비밀 과학 군사 작전인 맨해튼 프로젝트가 공식적으로 출범하게 된다.

로스앨러모스의 천재들과 우라늄 농축

프로젝트의 군사 책임자인 레슬리 그로브스 장군은 폭탄 설계 및 연구 개발의 총책임자로 서른여덟 살의 천재 물리학자 J. 로버트 오펜하이머를 임명했다. 오펜하이머는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뉴멕시코주 로스앨러모스의 황무지에 비밀 연구소를 세우고, 리처드 파인만, 닐스 보어, 한스 베테 등 당대 최고의 과학자들을 불러 모았다. 폭탄을 만들기 위한 가장 큰 난관은 핵분열을 일으키기 쉬운 우라늄-235를 추출하는 일이었다. 자연 상태의 우라늄은 대부분 핵분열이 잘 일어나지 않는 우라늄-238로 이루어져 있으며, 우라늄-235는 단 0.7%에 불과했다. 이 둘은 화학적 성질이 완벽히 똑같아서 화학 반응으로는 분리할 수 없었고, 오직 미세한 질량 차이를 이용한 물리적 분리 방법(기체 확산법, 전자기 분리법)에 의존해야 했다. 오크리지의 거대한 공장 단지에서 수만 명의 인력이 동원되어 수천 톤의 우라늄 광석을 처리한 끝에, 간신히 폭탄 한 개를 만들 수 있는 수십 킬로그램의 고농축 우라늄을 얻을 수 있었다. 한편, 워싱턴주 핸포드에서는 원자로를 가동하여 우라늄-238을 플루토늄-239로 변환하는 또 다른 핵물질 생산 작업이 숨 가쁘게 진행되었다. 플루토늄 역시 폭탄의 훌륭한 원료였다. 두 개로 분열하는 우라늄 원자핵의 추상적 다이어그램

내파 방식과 연쇄 반응의 임계 질량

우라늄 폭탄(리틀 보이)은 긴 포신 구조의 한쪽 끝에 우라늄 덩어리를 두고 화약으로 쏘아 다른 쪽 덩어리와 충돌시켜 순식간에 '임계 질량'을 초과하게 만드는 비교적 단순한 '포신형(Gun-type)' 구조였다. 임계 질량이란 연쇄 반응이 폭발적으로 유지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핵물질 질량을 말한다. 반면 플루토늄 폭탄(팻 맨)은 플루토늄의 특성상 포신형 방식을 쓰면 목표한 지점에 도달하기 전에 너무 일찍 연쇄 반응이 시작되어 폭발력이 분산되는 '조기 폭발'의 위험이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로스앨러모스의 과학자들은 구형의 플루토늄 코어 겉면을 재래식 폭약으로 둘러싸고, 32개의 렌즈형 폭약을 동시에 터뜨려 코어를 안쪽으로 엄청난 압력으로 쥐어짜는 '내파형(Implosion-type)' 구조를 고안했다. 100만 분의 1초의 오차도 없이 폭발 압력을 중앙으로 모아 플루토늄의 밀도를 극한으로 높여 임계 상태에 도달하게 하는 고도의 기술이었다. 이론적으로는 완벽했지만, 실제로 폭약들이 정확한 타이밍에 터져 줄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이 내파형 폭탄의 성공 여부를 검증하기 위해 실시된 것이 바로 트리니티 핵실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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