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는 신소재 거미줄의 으스스한 매력
강철보다 강하고 방탄조끼보다 질긴 거미줄의 경이로운 특성과 이를 인공적으로 대량 생산하려는 과학계의 도전을 살펴본다.
편집부 · 2022년 2월 22일 · 읽는 데 4분
아침 이슬을 머금고 숲속에 조용히 매달려 있는 거미줄은 자연이 만들어낸 가장 정교하고 치명적인 함정이다. 그 가느다란 실은 한낱 곤충의 분비물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재료공학자의 눈으로 바라보면 인류가 지금껏 만들어낸 어떤 섬유보다 경이로운 첨단 신소재다. 놀랍게도 거미줄은 같은 무게의 강철보다 5배나 강하고, 방탄조끼를 만드는 케블라(Kevlar) 섬유보다 훨씬 질기다. 고무줄처럼 원래 길이의 수 배까지 늘어날 수 있는 엄청난 신축성까지 갖추고 있다. 이 모든 물리적 특성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무게는 깃털처럼 가볍다. 거미줄을 이용해 연필 굵기의 밧줄을 짠다면 비행 중인 점보제트기를 멈춰 세울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올 정도다. 게다가 거미줄은 단백질로 이루어져 있어 인체에 거부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생체 적합성까지 지니고 있다. 자연은 이미 수억 년 전부터 가장 완벽한 형태의 바이오폴리머를 생산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 으스스하고 매력적인 신소재의 비밀을 밝혀내어 인공적으로 합성하려는 과학자들의 끈질긴 추적과 생체모방 공학의 눈부신 발전상을 들여다보자. 꿈의 신소재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강철보다 강한 단백질의 비밀
거미줄이 그토록 놀라운 강도와 탄성을 동시에 가질 수 있는 비밀은 거미줄을 구성하는 거미줄 단백질(Spidroin, 스피드로인)의 독특한 분자 구조에 숨어 있다. 거미줄 단백질은 크게 두 가지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아미노산들이 단단한 판자 형태로 빽빽하게 뭉쳐 있는 결정질 영역(Crystalline region)이고, 다른 하나는 아미노산들이 스프링처럼 무질서하게 엉켜 있는 비결정질 영역(Amorphous region)이다. 단단한 결정질 영역은 거미줄이 끊어지지 않도록 강철 같은 튼튼함을 제공하고, 유연한 비결정질 영역은 외부에서 충격이 가해졌을 때 에너지를 흡수하며 실이 고무줄처럼 길게 늘어날 수 있도록 탄성을 제공한다. 곤충이 거미줄에 빠른 속도로 날아와 부딪힐 때, 거미줄은 끊어지지 않고 그 충격 에너지를 섬유 전체로 분산시키며 먹이를 안전하게 포획한다. 강도(Strength)와 인성(Toughness)이라는, 서로 공존하기 힘든 두 가지 특성을 완벽하게 조화시킨 이 나노 구조는 인공 섬유 공학이 도달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표라 할 수 있다. 진화가 만들어낸 최고의 걸작인 것이다.
거미를 키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누에고치에서 실크를 얻듯이 거미를 대량으로 사육하여 거미줄을 얻으면 되지 않을까? 안타깝게도 거미 농장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거미는 극도로 영역 의식이 강한 포식자이기 때문에 한 공간에 여러 마리를 모아 놓으면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서로를 잡아먹는 동족포식(Cannibalism) 현상이 일어난다. 2012년 영국의 한 박물관에서는 황금무당거미 100만 마리를 야생에서 직접 채집하여 무려 8년에 걸쳐 사람이 일일이 거미줄을 뽑아낸 끝에 황금빛 망토 하나를 만들어 전시한 적이 있다. 이는 거미줄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을 보여주었지만, 동시에 거미에서 직접 거미줄을 얻는 방식이 얼마나 비효율적이고 상업성이 없는지를 여실히 증명한 사례이기도 하다. 자연에서 거미줄을 직접 채취하는 방법이 막히자, 과학자들은 발상을 전환했다. 거미 없이 거미줄을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다. 유전공학과 합성생물학이 발달하면서 과학자들은 거미의 유전자를 다른 생물에 주입하여 거미줄 단백질을 대신 생산하게 만드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박테리아와 염소가 만드는 인공 거미줄
1990년대부터 거미의 실 잣는 유전자를 대장균에 삽입하여 거미줄 단백질을 배양하려는 시도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거미줄 단백질은 분자량이 너무 크고 구조가 복잡하여 박테리아가 온전한 형태로 생산해 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후 과학자들은 더 복잡한 단백질을 합성할 수 있는 동물로 눈을 돌렸다. 캐나다의 한 생명공학 기업은 거미 유전자를 이식한 형질전환 염소를 탄생시켰다. 이 염소의 젖에는 놀랍게도 거미줄 단백질이 대량으로 섞여 있었고, 젖을 짜서 단백질만 걸러내 실로 뽑아내는 '바이오스틸(BioSteel)' 기술이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염소를 사육하고 단백질을 정제하는 비용이 너무 비싸 상용화에는 실패했다. 최근에는 빵을 만들 때 쓰는 효모(Yeast)나 식물의 유전자를 변형하여 더 저렴하고 효율적으로 거미줄 단백질을 대량 생산하는 기술이 상용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효모를 이용한 발효 공정은 기존 방식보다 환경친화적이며 대규모 배양 탱크에서 안정적으로 단백질 액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배양액을 미세한 노즐을 통해 밀어내며 화학적 처리를 거치면 튼튼한 인공 거미줄 섬유가 탄생한다.
의료기기에서 첨단 의류까지
상용화의 문턱을 넘고 있는 인공 거미줄은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혁명을 예고하고 있다. 인체에 무해하고 거부 반응이 없다는 점을 살려 의료 분야에서의 활용이 가장 먼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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