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생명

기억력을 잃게 되는 것 꼭 필요하다고

잊는 것은 기억의 실패로 여겨져 왔다. 최근 연구는 잊기가 뇌의 능동적인 작업이라고 본다.

편집부 · 2024년 3월 11일 · 읽는 데 2분

모든 것을 기억하는 상태는 유용해 보인다. 그러나 실제 사례를 보면 그렇지 않다.

잊지 못하는 사람들

신경심리학 문헌에는 극단적으로 기억이 좋은 사례들이 기록돼 있다.

한 사례에서는 긴 숫자열을 오래 기억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보고됐다. 그는 기억을 지우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 개별 정보가 너무 생생해 요약하거나 일반화하는 일이 어려웠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자신의 일상을 날짜별로 상세히 기억하는 사례도 보고됐다. 당사자들은 과거의 일이 원할 때가 아닐 때도 떠올라 힘들다고 진술했다.

이런 사례는 기억이 많을수록 좋다는 전제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잊기는 작업이다

기억이 저절로 흐려지는 것이 아니라, 뇌가 적극적으로 지운다는 증거가 쌓이고 있다.

특정 효소가 신경세포 사이의 연결을 약화시키는 데 관여한다는 연구가 있다. 초파리에서 이 경로를 억제하자 기억이 더 오래 유지됐고, 활성화하자 빨리 사라졌다. 잊기를 담당하는 기전이 따로 있다는 뜻이다.

새로 만들어진 신경세포가 기존 기억을 덮어쓴다는 설명도 제시됐다. 해마에서는 성체가 된 뒤에도 신경세포가 새로 생기는데, 이 세포들이 기존 회로에 끼어들며 옛 기억의 인출을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왜 필요한가

잊기가 필요한 이유로 몇 가지가 제시된다.

첫째는 일반화다. 개별 사건을 하나하나 다 기억하면 공통점을 뽑아내기 어렵다. 세부를 버려야 규칙이 남는다. 여러 마리의 개를 본 뒤 개라는 범주를 갖게 되는 과정이 그렇다.

둘째는 갱신이다. 환경이 바뀌면 과거의 정보가 틀린 것이 된다. 주차한 자리를 매일 기억한다면 어제 자리와 오늘 자리가 뒤섞인다. 옛 정보를 지워야 새 정보가 쓰인다.

셋째는 인출 효율이다. 저장된 것이 많을수록 필요한 것을 찾기 어려워진다.

잠과의 관계

잠은 기억을 굳히는 과정으로 알려져 있다. 동시에 지우는 과정이기도 하다는 설명이 제시됐다.

깨어 있는 동안 신경세포 사이의 연결은 전반적으로 강해진다. 이 상태가 계속되면 더 강해질 여지가 없어지고, 유지에 드는 에너지도 늘어난다. 수면 중에 연결이 전반적으로 약화되고, 중요한 것만 상대적으로 남는다는 것이 이 가설의 내용이다.

이 설명은 완전히 확립되지는 않았으며, 다른 기전을 강조하는 견해도 함께 있다.

병적인 경우와의 구분

정상적인 잊기와 질환에 의한 기억 손상은 다르다.

이름이 떠오르지 않다가 나중에 생각나는 것, 최근 일보다 오래된 일을 더 잘 기억하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이다.

같은 질문을 되풀이하는 것, 익숙한 장소에서 길을 잃는 것, 최근에 있었던 일 자체를 통째로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다른 성격이다. 이런 변화가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라면 평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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