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년 노벨물리학상은 “얽힌 빛알(광자)을 이용한 실험을 통해 벨 부등식의 위배를 확립하고 양자정보과학 분야를 개척한 공로”로 프랑스의 알랭 아스페(Alain Aspect), 미국의 존 클라우저(John F. Clauser), 오스트리아의 안톤 차일링거(Anton Zeilinger)에게 돌아갔습니다. 최근에는 이를 계기로 양자정보과학 분야가 각광받게 되었는데, 정확히 같은 분야에서 R&E를 진행하고 있는 KSA 물리07팀과의 인터뷰를 통해 작년 노벨물리학상의 주제를 조금이나마 이해해봅시다.
Q. 현재 하고 계시는 연구를 간단하게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A. 저희 랩(lab)에서는 ‘벨 부등식’을 중심에 두고 이를 응용한 여러 가지 주제를 다룹니다. 벨 부등식이라는 것은 간단히 말하면 ‘양자역학이 옳은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서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벨 부등식에는 변수 S가 있어 고전적 이론에 따라 계산하면 S가 부등식을 만족하는 반면, 양자역학을 따라 계산하면 S는 부등식을 위배합니다. 따라서 실험을 통해 벨 부등식의 위배를 보일 수 있다면 우리는 양자역학이 옳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희 랩에서는 이것이 양자정보과학 분야와 만나면 어떻게 되는지 또한 연구하고 있습니다.
저희 연구에서는 광학 장치를 이용한 실험이 필요한데, KSA에서는 실험할 여건이 충분치 않아 현재까지는 이론적 배경을 다지고 있습니다. 1학기 8주차 동안 실험에 필요한 이론을 공부하고, 여름방학에 DGIST를 방문하여 실험을 진행한 뒤, 2학기 동안 실험에서 얻은 데이터를 분석하여 연구를 마무리할 예정입니다. 현재는 1학기 6주차까지의 일정이 진행되었습니다.
Q. 혹시 ‘랩(lab)’이라는 개념이 무엇인가요?
A. ‘랩(Lab)’은 ‘연구실’을 뜻하는 영단어 ‘laboratory’의 약어로, 주로 지도교수님을 중심으로 운영됩니다. 예를 들면, ‘A 교수님 랩’, ‘B 교수님 연구실’과 같은 식으로 지칭하는 것입니다. 제가 있는 곳은 KSA 김재영 선생님의 연구실이고, DGIST의 이기준 교수님께서 공동지도를 해주고 계십니다. 같은 랩에서 2021 R&E 물리05팀(20학번)과 2022 R&E 물리07팀(21학번)의 연구가 진행되기도 했습니다. 2021년의 경우 ‘벨-형태 부등식 위반의 검증과 개선된 부등식의 제안’, 2022년의 경우 ‘혼합 상태의 서술과 구현을 통한 양자 키 분배의 보안성 확인’으로, 선행 연구를 기반으로 주제가 점점 확장되고 있습니다.
Q. 이제 본격적으로 연구 내용에 대한 질문을 해볼 텐데요. 첫 시간에는 어떤 내용을 했는지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A. 1주차에는 양자역학의 기초를 공부했습니다. 양자역학에는 4가지 공리가 있는데, 양자 대상의 ‘상태’에 관한 것, ‘물리량’에 관한 것, ‘확률’에 관한 것, ‘상태의 변화’에 관한 것이 있고, 저희는 그중 앞의 3개를 다루었습니다. 양자역학의 4가지 공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양자 대상의 상태는 ‘켓(열벡터)’으로 표현됩니다.
아래와 같은 기저 벡터가 있으면,
임의의 상태는 θ를 파라미터로 하여 크기가 1인 벡터로 다음과 같이 표현될 수 있습니다. (기저 벡터가 2개인 계, 즉 큐비트에 한하여)
2. 물리량은 그 고유벡터가 정규직교기저를 이룰 수 있는 자기수반 연산자로 표현됩니다.
어떤 연산자의 고유벡터란, 그 연산자에 해당하는 선형 변환을 가했을 때 ‘방향’이 변하지 않는 벡터를 말합니다.
3. 어떤 계의 상태 Ψ를 측정하면, 그 계는 물리량의 고유벡터들 중 하나의 상태로 변하고, 각각의 상태로 변할 확률은 계수의 제곱과 같습니다. (보른 규칙)
보른 규칙은 다음과 같은 수식으로 상태 Ψ에 있는 물리량 A의 기댓값을 계산할 수 있다는 것과 동치입니다.
4. 계의 상태는 시간에 따라 슈뢰딩거 방정식을 따라 변화합니다. (1주차에 다루지 않음)
Q. 한 주차에 다루는 내용이 상당히 많군요. 아무래도 모든 주차에 대해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은 힘들어 보이므로, 특히나 중요한 내용이라고 생각되는 부분만 간단히 짚어주실 수 있나요?
A. 아무래도 저희 랩의 작년 연구에서 핵심적 역할을 했던 ‘혼합 상태(mixed state)’의 개념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전에 양자역학적 계의 상태는 켓(ket)으로 나타낸다고 했는데, 사실 이것은 계가 ‘순수 상태(pure state)’일 때의 경우이고, 계가 ‘혼합 상태’에 있을 때는 ‘밀도행렬(density matrix)’로 계를 서술해야 합니다. 밀도행렬 ρ는, 고유벡터의 사영연산자에 각각의 확률을 곱한 후, 이를 합하여 만들어집니다.
이렇게 혼합 상태에 있는 계를 밀도행렬로써 나타내면, 우리는 이 계의 ‘순도(purity)’를 계산할 수 있습니다.
순도가 1일 때 이 계는 순수 상태에 있고, 순도가 1 미만일 때 이 계는 혼합 상태에 있습니다.
그러면 순수 상태와 혼합 상태를 왜 구분하는 것일까요?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상태의 가짓수는 정해져 있고, 각각의 상태를 관측할 확률도 똑같이 기술되는데 이 둘은 다른 걸까요? 물론 다릅니다. 핵심은 ‘이미 결정되었는지’에 달려있습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한 간단한 예시로, +45° 방향으로 편광된 빛알을 생각해봅시다.

위 그림에서 방해석을 통과하기 전의 빛알은 순수 상태에, 통과한 후(그러나 결과를 확인하기 전)의 빛알은 혼합 상태에 해당합니다. 방해석을 통과하기 전의 빛알은 ‘실제로’ 두 기저 상태가 포개졌다(중첩되었다)고 볼 수 있지만, 방해석을 통과한 뒤의 빛알은 단지 우리가 확인하지 않았을 뿐 이미 기저 상태 중 하나로 결정되었으므로 혼합 상태입니다. 이 둘을 구분하여 참고 자료 [1]과 같이 양자 암호 기술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1주차의 공리 이외에는 혼합 상태 개념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Q. 그렇군요. 상당히 어려운 내용 같아 보이는데, 연구에 차질은 없었나요?
A. 1주차에는 아무래도 첫 진행이다 보니 난이도보다는 시간 분배가 잘 되지 않았던 문제가 있었습니다. 주어진 시간이 많아 보였지만 내용을 꼼꼼히 다루고, 또 참관 중인 23학번 학생들의 질문에도 답하다 보니 결국 모든 내용을 진행하지 못한 채 첫 세미나가 마무리되었습니다. 김재영 선생님께서는 1학년 친구들이 없다 생각하고 그냥 진도를 나가라고 말씀하셨지만 아무래도 소중한 시간을 내어 참관을 와준 학생들에게 설명을 충분히 하지 않고 넘어가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방학 중 세미나에서 이미 다루었던 내용에 많은 시간을 쓴 것 같습니다.
1주차 이후부터는 방학 세미나에서 다루지 않은 생소한 내용이 많이 나왔습니다. 교재로 사용한 책에서 어려운 내용이 상당히 밀도 있게 등장하다 보니, 학기 초에 계획했던 속도로 진도를 나가기가 힘들었고, 조금 더 진도를 여유있게 나가는 방향으로 일정을 수정해야 했습니다.
Q. 어느덧 인터뷰의 막바지에 거의 다다랐습니다. 향후 연구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A.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1학기의 남은 두 주차 동안은 이론을 마저 공부할 예정입니다. 현재까지 제안된 BB84, E91 등 양자 암호 프로토콜을 공부하고, 이 내용을 여태까지 공부한 기초적인 선형대수학과 연결해볼 것 같습니다. 여름방학에는 DGIST에서 광학 기기들로 실험 장치를 구현하여 빛알의 존재성 확인, 벨 부등식 위배 확인 등의 실험을 할 계획입니다. 아래는 BB84 프로토콜 실험 장치를 구현한 예시입니다.

이렇게 얻어진 데이터를 바탕으로 2학기에는 결과를 내어 교내 발표대회에 참가하고, 기회가 된다면 물리학회나 더 큰 대회에서도 연구 결과를 발표하게 될 것 같습니다.
Q.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신현 학생기자 | Physics | 인터뷰
참고자료
[1] 서지완, 유현동, 이상화 (2021). 벨-형태 부등식 위반의 검증과 개선된 부등식의 제안. KAIST 부설 한국과학영재학교 R&E 논문
[2] 이호범, 홍성민, 홍지우 (2022). 혼합 상태의 서술과 구현을 통한 양자 키 분배의 보안성 확인. KAIST 부설 한국과학영재학교 R&E 논문
[3] Lvovsky, A. I. (2018). Quantum Physics: An Introduction Based on Photons. Springer.
[4] Wolf, R. (2021). Quantum Key Distribution: An Introduction with Exercises. Springer.
첨부 이미지 출처
[1] https://www.nobelprize.org/prizes/physics/2022/summary/
[2] Raymer, M. G. (2017). Quantum physics: What everyone needs to know. Oxford University Press.
[3] Bista, A., Sharma, B., & Galvez, E. J. (2021). A demonstration of quantum key distribution with entangled photons for the undergraduate laboratory. American Journal of Physics, 89(1), 111-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