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양자역학이 태동하고 현대물리학의 기틀이 마련되기 시작하던 그 시기 물리학과 인류의 지성에 있어 큰 획을 그은 수많은 이들이 있었고, 독일의 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역시 그 중 하나일 것이다. 흔히 불확정성 원리로 대표되는 물리학적 업적으로만 기억되는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그의 숨겨진 인간적이고 현실적이었던, 한 인간으로서의 하이젠베르크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그의 자서전이 바로 <부분과 전체>이다.


1901년 독일에서 태어난 하이젠베르크는 당시 혼란하던 독일 사회 속에서 성장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자신 역시 그러한 혼란한 사회에 휩쓸린다. 어릴 적 마을에서 벌어지던 무장 투쟁과 시가전에서 총알을 나르고, 조금 더 커서는 청년 운동에 동참하던 그는 비단 물리학뿐만 아니라 역사와 사회에 대해서도 깊은 견해를 가지게 된다. 또한 이러한 학문적 소양 뿐만 아니라 훌륭한 피아니스트로서 음악과 예술에도 깊은 조예를 가진 사람이 하이젠베르크 였다. 그의 자서전 <부분과 전체>에서는 이러한 그의 삶을 연도별로 나누어 물리학에서부터 정치, 역사, 철학과 종교, 그리고 예술과 인간 인식에 이르기까지 넓은 분야에 걸쳐 그의 삶과 견해를 여실히 드러내준다.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는 독일에서 조머펠트 교수의 아래로 들어가 물리학과 원자 이론을 공부하였으며, 그곳에서 평생의 벗이 될 파울리를 만나게 된다. 이후 조머펠트의 마음에 들게 된 그는 보어와 아인슈타인을 직접 만나게 될 기회를 얻게 되고, 그때부터 점차 유망한 물리학자로 서서히 이름을 알리며 다른 유명한, 또는 유명해질 물리학자들과의 친분을 쌓게 된다.
책의 전반부에서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는 자연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대한 대화 인데, 자연과학과 종교 이 둘이 과거부터,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흔히 서로 대립되는 두 가지 사상 또는 분야로 생각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많은 자연과학자들이 종교를 가지고 있었다거나 많은 종교인들이 자연과학에 있어 큰 진보를 가져다 주었다는 사실이다. 책에서 하이젠베르크를 비롯한 보어, 파울리, 디랙 등 다른 물리학자들의 대화는 이러한 두 사상 종교와 자연과학의 대립에 대해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이를 통해 두 가지를 명확히 함으로써 화해 내지는 서로 모순되는 부분을 줄이고자 한다. 비단 인식론적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도덕적, 윤리적 측면으로까지 이어지는 그들의 대화는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본 이들이라면 그 누구든 꽤 유익한 깨달음과 함께 많은 생각을 불러 일으킬 것이다.
위의 자연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대한 내용에 대해 서술한 문단에서 인식론적 측면에서의 책의 내용을 언급하였는데, 이러한 인식론적 측면 역시 책의 전반, 그리고 하이젠베르크의 사상과 삶 전반에 걸쳐 많은 영향을 준다. 실제로 볼 수 없는 작은 원자와 그보다 더 작은 입자들의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느냐 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고 치명적인 문제일 뿐 더러 비단 물리학에 국한되지 않고 칸트 철학을 비롯한 다른 철학의 영역으로까지 그 문제의 범위를 확대해 나간다.
이러한 인식과 관련해 책에서 또 한가지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는 것은 바로 언어이다. 비트겐슈타인은 그의 논리철학논고에서 언어의 한계가 곧 사고의 한계라며 언어와 사고의 관계에 대해, 그리고 언어의 중요성에 대해 설파하였다. 이러한 비트겐슈타인의 사상은 책 속에서 보어, 또는 다른 물리학자를 통하여 인용되는데, 보어의 말마따나 양자 역학을 비롯한 어떤 새로운 이론 또는 사상을 만들어내고 그에 대해 논하고자 할지라도 기존의 언어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며, 이는 기존의 언어로 새로운 사상을 이해해야 한다는 상당히 자연스러우면서도 치명적인 인식론적 문제를 안겨주기 때문이다.
책 속의 실용주의적 사고방식에 대한 내용 역시 충분히 흥미롭다. 하이젠베르크가 미국에 방문하였을 때 그는 미국 물리학자들의 이론에 대한 실용주의적 사고방식, 즉 이론이 현상을 훌륭히 설명해내기만 한다면 실제 이론의 의미는 중요치 않다는 듯한 사고방식과 태도에 큰 충격을 받고 비판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실용주의적 사고방식은 비단 미국 물리학자들만의 그것은 아니었다. <부분과 전체> 책에서는 언급되지 않지만 아인슈타인 역시 어떤 이론이 얼마나 훌륭하고 알맞은 이론인지는 그 이론이 실험 결과들을 얼마나 훌륭히 설명하고 예측해내느냐가 결정한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나 역시 이러한 실용주의적 사고방식에 대해 어느 정도 긍정적이고 우호적인 입장을 취하는 편인데, 이러한 사고방식이 잘못 연결될 때는 자칫 우리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완벽히 서술해낼 수 없고, 오직 그때 그때 끼워 맞추기 식의 설명만을 만들어 내지 못할 지도 모른다는 허무주의적 태도에 잠식될 수 있다는 생각에 빠질 수 있으니 그 차이를 구분하는 것이 필요하다.
책의 후반부는 당시 혼란스러웠던 독일의 정치적 그리고 사회적 상황을 여실히 반영하여 정치적 파국에서의 개인의 행동이나 과학자의 책임, 그리고 정치적 논쟁과 과학적 논쟁 등에 대해 다루고 있다. 하이젠베르크는 둘 이상의 사상이 서로 충돌하여 갈등을 빚을 때, 어느 사상이 옳은지 판단하기 위하여 적절한 방법은 그 사상이 자신이 옳음을 관철시키기 위해 어떤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지 확인하라고 하였다. 이러한 그의 물리학적 고찰에서 벗어난 사회적, 정치적, 그리고 윤리적 사상과 의식은 그가 눈을 감은지 불과 50년도 채 되지 않은 21세기의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큰 교훈을 남긴다.
<부분과 전체>에서 우리가 또 한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은, 그리고 어쩌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물리학자였던 하이젠베르크의 삶이 단순히 물리, 또는 과학이라는 것 만으로 규명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는 그저 하이젠베르크에 한정되는 이야기도 아니다. 책에서 등장하는 다른 수많은 과학자들 역시 과학만으로는 절대 규정지어 질 수 없는 삶을 살아갔다. 영재학교라는 환경에서 3년간 지내며 과학자를 꿈꾸는 학생들을 무수히 보았으며, 그 중 오직 과학만을 바라보며 꿈을 키워가는 학생들 역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과연 우리가 살아가기에, 그리고 과학자가 되기 위해 ‘과학’만으로 충분한 것일까?
많은 이들이 흔히 간과하는 사실이지만, 과학은 끊임없이 사회와 서로 상호작용을 하며, 그 과학이라는 것을 하는 주체가 된다 할 수 있는 과학자들 역시 절대 과학 외적인 사회적 요소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하이젠베르크도 그러하였고, 그 외의 모든 과학자들이 그러하였다. 그러나 이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단순히 과학 한 가지만을 유일하고 충분한 가치로 여기며 과학자를 꿈꾸는 행위는 비록 나쁘다 할 수는 없을지라도 절대 충분하다고 역시 할 수 없을 것이다. 과학자에게, 그리고 과학자를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사회와 과학의 관계, 그리고 그 속에서 과학자의 위치에 대한 고민과 신념을 가지는 것은 선택이 아닌 의무라 감히 말하고 싶다.
참고자료
[1]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부분과 전체, 서커스 (1969)
첨부 이미지 출처
[0] https://de.wikipedia.org/wiki/Der_Teil_und_das_Ganze (표지 사진)
[1] http://www.yes24.com/Product/Goods/30455678
[2] https://en.wikipedia.org/wiki/Werner_Heisenbe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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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유지환
발행호│2020년 여름호
키워드│#베르너하이젠베르크 #부분과전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