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생명

페니실린은 어떻게 세균의 벽을 무너뜨리나

페니실린은 세균을 직접 녹이는 독이 아니다. 세균이 자라며 벽을 고쳐 짓는 과정을 방해해, 세균이 스스로 터지게 만든다. 그 작용 원리와 내성이 생기는 과정을 살펴본다.

Antigravity AI · 2023년 1월 20일 · 읽는 데 4분

곰팡이 주변으로 세균이 자라지 않은 투명한 띠가 생긴 배양 접시
곰팡이 주변으로 세균이 자라지 않은 투명한 띠가 생긴 배양 접시

페니실린은 세균이 세포벽을 만드는 과정을 방해해 세균을 죽이는 항생제다. 세균은 자라고 분열할 때마다 세포벽을 새로 짓고 고친다. 페니실린은 이 공사에서 벽의 재료를 서로 단단히 엮는 효소에 달라붙어 일을 못 하게 한다. 벽이 제대로 엮이지 않으면 세균은 안쪽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터진다. 사람의 세포에는 이런 세포벽이 없어서, 페니실린은 세균만 골라 공격할 수 있다.

세균에게 세포벽은 왜 중요한가

세균의 안쪽에는 여러 물질이 진하게 녹아 있어서, 바깥에서 물이 계속 스며들려 한다. 이 삼투압 때문에 세균 내부는 늘 바깥쪽으로 강하게 밀어내는 압력을 받는다. 세포막만으로는 이 압력을 견딜 수 없다. 세균을 감싼 단단한 세포벽이 풍선을 감싼 그물처럼 형태를 지켜 준다.

세포벽의 주재료는 펩티도글리칸이라는 물질이다. 당이 길게 이어진 사슬들을 짧은 아미노산 다리가 가로로 엮어 그물 같은 구조를 만든다. 가로로 엮는 이 다리가 벽의 튼튼함을 결정한다.

당 사슬이 짧은 다리로 엮여 그물을 이룬 세포벽 구조를 그린 도식

페니실린은 어디를 공격하나

당 사슬을 가로로 엮는 일은 세균의 효소가 한다. 이 효소들은 페니실린과 잘 결합한다는 이유로 페니실린 결합 단백질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페니실린 분자에는 베타락탐 고리라는 독특한 네 원자짜리 고리가 있는데, 이 모양이 효소가 원래 다루는 재료와 닮았다. 효소는 페니실린을 재료로 착각해 붙잡고, 그 순간 베타락탐 고리가 열리며 효소와 단단히 결합해 버린다. 효소가 망가지니 벽을 엮는 공사가 멈춘다.

그런데 세균은 자라는 동안 기존 벽을 조금씩 허물며 새 재료를 끼워 넣는다. 허무는 일은 계속되는데 엮는 일만 멈추면 벽 곳곳에 약한 지점이 생긴다. 결국 안쪽의 압력이 그 틈을 터뜨린다. 그래서 페니실린은 활발히 자라고 분열하는 세균에 특히 잘 듣는다.

왜 어떤 세균에는 잘 듣지 않나

세균은 세포벽 구조에 따라 크게 둘로 나뉜다. 그람 양성균은 두꺼운 펩티도글리칸 벽이 바깥에 드러나 있어 페니실린이 쉽게 닿는다. 그람 음성균은 얇은 벽 바깥을 또 하나의 막이 감싸고 있어서, 페니실린 같은 분자가 안으로 들어가기 어렵다. 그래서 원래의 페니실린은 주로 그람 양성균에 잘 듣고, 그람 음성균까지 겨냥하려고 구조를 바꾼 다른 베타락탐 항생제들이 개발되었다.

구분 그람 양성균 그람 음성균
세포벽 두껍고 바깥에 드러남 얇고 바깥막이 감쌈
페니실린 접근 쉬움 어려움
대표적인 예 포도알균, 사슬알균 대장균

연구자가 배양 접시를 들어 빛에 비춰 보는 장면

세균은 어떻게 페니실린을 피하게 되었나

페니실린이 널리 쓰이기 시작하자 곧 내성균이 나타났다. 가장 흔한 방법은 베타락탐 고리를 잘라 버리는 효소, 베타락타마아제를 만드는 것이다. 고리가 잘린 페니실린은 더 이상 효소에 달라붙지 못한다. 어떤 세균은 페니실린이 잘 결합하지 못하는 모양으로 벽을 엮는 효소를 바꾸고, 어떤 세균은 약을 밖으로 퍼내는 펌프를 갖춘다.

이에 맞서 베타락타마아제를 막는 물질을 함께 섞은 약, 효소의 공격을 덜 받도록 구조를 바꾼 약이 개발되었다. 항생제와 세균 사이의 이런 경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메티실린 내성 황색포도알균처럼 여러 항생제에 듣지 않는 세균은 병원 감염의 큰 문제가 되었다.

남은 과제

페니실린 계열은 지금도 가장 많이 쓰이는 항생제 가운데 하나지만, 내성은 쓰면 쓸수록 퍼진다. 꼭 필요할 때만 정해진 기간 동안 항생제를 쓰는 것이 내성을 늦추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다. 새로운 원리로 세균을 공격하는 항생제의 개발은 수십 년 동안 더디게 진행되어 왔고, 경제적으로 보상이 적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세포벽처럼 사람에게는 없고 세균에게만 있는 새로운 표적을 찾는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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