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끌 모아 태산
큰 덩어리를 깎아내는 무식한 조각가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원자(티끌)들을 레고 블록처럼 쌓아 올려 거대한 기계(태산)를 만드는 나노 기술의 '보텀업(Bottom-up)' 혁명을 다룬다.
편집부 · 2024년 1월 12일 · 읽는 데 4분
인류가 수천 년 동안 물건을 만들어온 방식은 '깎아내기(Top-Down, 하향식)'였다. 커다란 통나무를 도끼로 찍어 의자를 만들고, 거대한 실리콘 덩어리를 깎고 깎아서 손톱만 한 반도체 칩을 만들었다. 하지만 깎아내는 방식은 필연적으로 찌꺼기(쓰레기)가 남고, 깎는 칼날의 굵기보다 더 작게 만들 수 없다는 물리적 한계에 부딪힌다. 이 한계를 비웃으며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Richard Feynman)은 기가 막힌 제안을 던졌다. "왜 굳이 큰 걸 깎아? 그냥 가장 작은 알갱이인 '원자(티끌)'들을 핀셋으로 하나하나 주워다가 레고 블록 조립하듯 쌓아 올려서 덩어리(태산)를 만들면 되잖아?" 티끌을 모아 가장 완벽하고 결점 없는 신소재를 창조해 내는 연금술, 나노 기술의 '보텀업(Bottom-up, 상향식)' 마법을 들여다보자.
원자를 조립하는 신의 핀셋, STM 현미경
원자 하나하나는 너무 작아서 빛(가시광선)으로도 볼 수 없다. 1981년 과학자들은 원자를 보는 것을 넘어, 원자를 툭툭 건드려 굴릴 수 있는 미친 기계인 '주사 터널링 현미경(STM)'을 발명했다. 아주 뾰족한 바늘 끝을 금속 표면에 살짝 띄워놓고 훑고 지나가면, 원자의 올록볼록한 모양을 더듬어 읽어낼 수 있다. 더 나아가 이 바늘 끝에 살짝 전기를 주면, 바닥에 굴러다니던 원자 한 개가 찰싹 달라붙어 핀셋처럼 집어 올려 원하는 위치에 톡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물질의 가장 기본 단위인 '티끌(원자)'을 내 마음대로 배열할 수 있는 신의 조종기를 손에 쥔 것이다.
자기 조립(Self-assembly), 원자들이 춤을 추다
하지만 자동차 한 대를 만들려고 수백경 개의 원자를 핀셋으로 하나하나 옮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자연의 꼼수를 빌려왔다. 우리 몸의 단백질이나 눈송이의 결정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아름다운 모양으로 조립되듯이, 원자들끼리 찰떡같이 엉겨 붙게 만드는 '자기 조립(Self-assembly)' 기술을 쓰는 것이다. 특정한 화학 용액(수프)에 원자 가루를 털어 넣고 온도만 잘 맞춰주면, 원자들의 플러스/마이너스 전기적 성질 때문에 지들끼리 척척척 퍼즐을 맞추며 완벽한 나노 튜브나 그래핀이라는 거대한 구조물(태산)로 스스로 자라나게 된다.
완벽한 배열, 강철보다 100배 강한 거미줄
쇠를 녹여 쇳물로 굳히는(탑다운) 철강 공장에서는 금속 원자들이 엉망진창으로 엉켜 굳기 때문에 내부에 미세한 균열과 빈 공간이 생겨 쉽게 부러진다. 하지만 보텀업 방식으로 탄소 원자를 바닥부터 하나하나 육각형 레고 블록으로 차곡차곡 완벽하게 쌓아 올린 '탄소 나노 튜브'는 내부에 빈틈(결함)이 단 하나도 없다. 그래서 머리카락보다 만 배나 얇은 실이지만 강철보다 100배나 강하고 구리보다 전기를 1,000배나 잘 통하는 기적의 신소재가 탄생한다. 우주 끝까지 끊어지지 않는 우주 엘리베이터의 동아줄을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재료다.
몸속을 헤엄치는 분자 기계(Molecular Machine)
보텀업의 궁극적인 로망은 암세포를 죽이는 나노 로봇이다. 나사못이나 모터를 깎아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화학 분자들을 결합해서 만든 '분자 기계'다. 빛을 쪼여주면 분자의 팔다리가 빙글빙글 회전하며 모터처럼 돌아가고, 이 분자들을 혈관 속에 들이부으면 암세포만 귀신같이 찾아내어 드릴로 암세포의 껍질을 뚫고 들어가 독약을 뿌려버린다. ![단순한 분자 먼지에서 부서지지 않는 방탄 장갑판을 만들어 무작위로 흩어진 빛나는 원료 원자가 완벽하게 정렬된 기하학적 격자에 자동으로 끼워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자기 조립' 프로세스의 개념도](https://image.pollinations.
이어서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