칩 위의 뇌 brain on a chip 기술의 소개와 이용
실험쥐의 뇌를 갈라보는 잔혹한 동물 실험 대신, 엄지손가락만 한 플라스틱 칩 위에 살아있는 인간의 뇌세포를 배양해 미니 뇌를 구현하는 '칩 위의 뇌' 기술을 소개한다.
편집부 · 2024년 11월 21일 · 읽는 데 4분
인류를 괴롭히는 치매나 파킨슨병 같은 뇌 질환 신약을 개발하려면, 반드시 살아있는 '뇌'에 약을 뿌려보고 테스트를 해야 한다. 하지만 인간의 뇌를 꺼내서 실험할 수는 없기에, 과학자들은 수십 년 동안 수천만 마리의 쥐와 원숭이의 뇌를 열어젖히는 잔혹한 동물 실험을 반복해 왔다. 문제는 쥐의 뇌와 인간의 뇌가 너무 달라서 쥐에게 효과가 있던 기적의 약이 인간에게는 독약이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는 점이다. 이 딜레마를 끝내기 위해 생명공학자들이 기상천외한 해결책을 내놓았다. 반도체 칩처럼 생긴 엄지손가락만 한 플라스틱 칩 위에 살아있는 인간의 뇌세포를 얹어서 뇌의 기능을 완벽하게 복제해 내는 미니 뇌, 이른바 '칩 위의 뇌(Brain-on-a-chip)' 기술이다. 플라스틱 속에서 숨 쉬고 생각하는 마이크로 뇌신경망의 세계를 엿보자.
플라스틱에 살아있는 뇌세포를 심다
칩 위의 뇌는 투명하고 말랑말랑한 실리콘(PDMS) 덩어리로 만든다. 이 칩의 내부에는 머리카락 굵기보다 얇은 미세한 핏줄(미세유체 채널)들이 미로처럼 뚫려있다. 과학자들은 인간의 줄기세포를 뇌세포(뉴런)로 분화시킨 뒤, 이 칩의 작은 방(챔버) 안에 집어넣는다. 그리고 미세 채널을 통해 뇌세포가 먹고살 영양분과 산소를 쉴 새 없이 펌프질해 준다. 그러면 플라스틱 칩 안에서 뇌세포들이 꼬물꼬물 자라나 서로 신경 줄기(시냅스)를 뻗어 연결하며 인간의 뇌와 똑같은 완벽한 신경망 네트워크를 스스로 구축하게 된다.
철벽 방어선, 뇌혈관 장벽(BBB)의 완벽한 복제
인간의 뇌는 피에 섞인 독이나 세균이 뇌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극강의 보안 시스템인 '뇌혈관 장벽(BBB)'을 가지고 있다. 뇌 약물이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 튼튼한 장벽을 뚫지 못해서다. 칩 위의 뇌는 이 장벽까지 소름 돋게 복제해 냈다. 칩의 위층에는 뇌세포를, 아래층에는 혈관 세포를 깔고 그 사이에 구멍 뚫린 얇은 막을 끼워 넣는다. 이제 아래층(혈관)으로 신약을 흘려보내면, 그 약이 막(장벽)을 뚫고 위층(뇌)으로 무사히 배달되는지 모니터로 완벽하게 관찰할 수 있다. 쥐의 머리를 쪼갤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칩이 생각을 하고 전기를 내뿜다
이 칩은 단순히 죽어있는 세포 고깃덩어리가 아니다. 칩 안에서 얽히고설킨 뇌세포들은 진짜 인간의 뇌처럼 찌릿찌릿 '전기 신호'를 주고받으며 대화를 나눈다. 칩 바닥에 깔아놓은 미세 전극을 통해 이 전기 신호를 훔쳐보면, 치매 약을 투여했을 때 뇌세포들이 얼마나 활발하게 다시 살아나서 신호를 쏘아대는지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다. 말 그대로 플라스틱 통 안에서 살아 숨 쉬고 반응하는 가장 작고 완벽한 뇌의 복제품이다.
환자 맞춤형 아바타 뇌의 탄생
더 무서운 사실은 이 칩이 '환자 맞춤형'으로 제작된다는 것이다. 치매 환자의 피부 세포를 살짝 떼어내어 줄기세포로 만든 뒤, 이것을 칩 위에 올려 뇌세포로 키운다. 그러면 이 칩은 완벽하게 '그 치매 환자의 유전자를 가진 뇌'가 된다. 환자에게 직접 독한 약을 투여하며 임상 시험을 하는 대신, 환자의 아바타인 이 칩 100개에 100가지 약을 동시에 뿌려보고 가장 효과가 좋은 약을 찾아내는 기적의 정밀 의료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남은 과제
현재 칩 위의 뇌는 크기가 너무 작아서 복잡한 기억이나 감정까지 구현하는 전체 뇌를 흉내 내지는 못한다. 궁극의 목표는 심장 칩, 간 칩, 폐 칩을 모두 호스로 연결하여 플라스틱 칩들로 이루어진 완벽한 가상의 인체(Human-on-a-chip) 시스템을 완성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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